2009년 어느 날, 김정일 위원장이 장성택을 불렀다. 장성택은 김 위원장의 매제이자 북한 경제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최고 실세. 김 위원장이 물었다. “조선이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성택이 대답했다. “광물자원을 캐서 해외에 수출하는 길밖에 없으나, 전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어렵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 위원장이 말했다. “대책을 강구해보라.”

장성택이 향한 곳은 나진·선봉(나선) 지역이었다. 그곳에 3주간 체류하면서 그는 ‘조선이 잘사는 길’에 대한 ‘대책적 방안’을 강구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가 나선에 주목한 까닭은 이렇다. 광물자원을 캐서 수출하려면 전력과 도로와 항만이 있어야 한다. 나선은 항만은 있으나 도로와 전력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 도로와 전력을 북한 돈을 안 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나선이기도 했다. 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장길도(창지투) 개발선도구 사업에 편승하면 된다. 중국 동북 진흥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장길도 사업은 ‘창춘(장춘)·지린(길림)을 엔진으로, 옌지(연길)·룽징(용정)·투먼(도문·연룡도)을 최전선으로, 훈춘(혼춘)을 창구로’ 두만강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지역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의 성패는 내륙지역 장길도에서 동해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즉 나진항과 청진항 사용권을 북한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AP Photo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11월2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를 보고 있다.

장성택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중국에 나진항 일부 구간 사용권을 주는 대신 나진항 개보수·도로 건설 등 인프라 공사는 중국이 하도록 하고, 그것을 이용해 함흥·단천 지역의 광물자원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최근 중국 여러 지역을 돌며 북·중 경협 실태를 조사한 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장성택이 대풍그룹 박철수를 앞세워 북한 우라늄 광산 사용권을 중국 국유기업에 넘기고, 100억 달러를 유치하는 협상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전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이 외자 유치와 더불어 북한 전역을 계획경제 구역과 시장경제 구역으로 나누는 ‘일국양제(一國兩制)식 개발계획을 수립했다는 얘기도 같이 전했다. 시장경제 구역은 계획경제 구역 바깥에 조성되는데, ‘일구양도(一區兩島;一區는 나진·선봉 구역을 말하고 兩島는 신의주 앞 압록강의 위화도와 황금평 두 섬을 말한다)’가 최선봉이다.

또 다른 북한 전문가가 전해준 북한 내부 동향에 따르면 북한은 일구양도 외에도 지난해 9월 북한 전역의 여덟 군데 지역을 산업단지로 지정하는 ‘8대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산업단지 조성은 개성공단처럼 공장+인프라+인근 도시 정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종합적인 지역개발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태까지 보여준 공업단지 개발과 다르다. 이미 신의주·남포·원산·김책·함흥·사리원 등지가 대상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나진·선봉에서 성과를 거두면 이들 8대 산업단지도 시장경제 특구로 육성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측 관계자들이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며 ‘북한식 시장주의’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김 위원장이 말한 ‘조선의 살길’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AP Photo북한의 농축 우라늄 시설을 돌아본 헤커 교수가 11월13일 베이징 공항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7년 만에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를 향해 해안포 100여 발을 발사해, 군인과 애꿎은 민간인을 살상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보다 며칠 전 북한은 미국 핵 전문가에게 영변의 경수로 발전소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주며 ‘제3차 핵위기’의 포문을 열었다. 2009년 김정일 위원장이 장성택을 불러 조선의 살길을 찾으라 지시하고, 본인 스스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해 12월 나진 방문, 그리고 올해 5월과 8월 중국 접경 지역을 돌며 경제 회생의 길을 찾아 몸부림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이다. 최근 일련의 도발을 후계자 김정은의 ‘군심 장악 프로젝트’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23쪽 상자 기사 참조), 북한 최고 결재권자는 여전히 김 위원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왜 이토록 모순된 행동에 나섰는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한 경제 회생, 미국·일본과 수교에 달려

 2000년대 중반 이후 김 위원장의 동선을 관찰하면 일관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북한 내부에서 후계 문제를 둘러싼 권력 암투가 발생한 2004년 김 위원장이 후계 논의를 중단시키면서 “내 대(代)에서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만들고 국제 환경을 정비한 다음 후계자에게 넘겨도 넘길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김 위원장 머릿속에서 후계 체제 구축과 경제 회생 및 국제 환경 정비(이는 곧 미국·일본과의 수교 및 관계 정상화)는 늘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위 왼쪽은 위성으로 촬영한 북한 무수단리 로켓 발사장. 위 오른쪽은 북한 영변에 있는 핵 시설의 모습이 담긴 위성 사진.

그도 그럴 것이 누가 후계자가 되건 위기에 처해 있는 경제 상황을 떠안고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김 위원장 자신 대에서 먼저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염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 회생은 바로 미국·일본과의 수교 및 관계 정상화와 직결되어 있다.

문제는 그에게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일부 정보 관계자들은 다각도의 분석을 토대로 ‘김 위원장의 수명이 길어야 1년 남짓 남았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본인 스스로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애초 2012년으로 예상했던 후계자 지명을 올해 9월 당 대표자대회 시기에 맞춰 앞당겼다. 지난해 말부터 북·중 경협을 통해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도 어느 정도 진행해놓았다. 문제는 남한과 미국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남한과 관계를 먼저 풀기 위해 굴욕을 무릅쓰고 ‘싱가포르 합의’에 응하기도 했지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강경한 태도 탓에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전에 협상이 깨지고 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극약처방을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국제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일 것이다. 자신의 판돈을 모두 걸고 최후 도박을 벌이는 셈이다.

김정일, 연환계에 매우 능해

2000년대 초 김 위원장을 분석할 때 ‘시나리오형 인간’이라는 견해가 공감을 얻은 적이 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그의 국제 무대 등장 과정이나 2002년 양빈을 앞세운 신의주 특구 선정, 북·일 수교회담 등의 과정을 보면 치밀한 시나리오에 입각해 몇 개 사안을 동시다발로 추진하는 특성이 있다.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개별 사안을 원인과 결과로 맞물리게 하는 연환계(連環計)에 매우 능한 인물인 것이다. 연환계는 그의 ‘광폭 정치’를 뒷받침하는 외교 수단이지만, 하나만 잘못되어도 전체가 무너지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몇 차례에 걸친 그의 광폭 행보가 실패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Xinhua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앞줄 왼쪽)이 함경북도 나선시 소재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북한은 11월9~13일 미국의 저명한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교수(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와,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북한 담당관을 지낸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 대학 객원연구원을 초청해, 영변에 새로 건설 중인 20~30MW급(헤커 교수 추정) 경수로발전소와 원심분리기 1000여 개가 보관되어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칼린 연구원은 “우리는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라며 “우리가 따르고 있는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보여줬다”라고 회상했다.

북한에는 양질의 천연 우라늄이 많다. 원심분리기란 이 천연 우라늄을 가스 상태의 육불화우라늄(UF6)으로 만든 다음 원통 속에서 세탁기 돌리듯 고속 회전시켜 우라늄 235를 분리해내 농축하는 기계이다(위 그림 참조). 우라늄 235를 3~5% 정도로 저농축하면 경수로 발전소의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고, 이를 90% 이상 고농축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플루토늄을 이용한 기존 핵무기에 비해 좁은 공간에서 제조가 가능해 은닉성이 뛰어나고, 핵실험을 거치지 않고 별도의 기폭장치 없이도 손쉽게 폭발시킬 수 있는 데다, 무게 500㎏ 이하의 소형 핵탄두 제조가 가능해 핵무기 실전 배치뿐 아니라 핵 확산의 주범이기도 하다.

헤커 교수와 칼린 연구원을 초청해 충격을 안겨준 북한은 며칠 뒤인 11월15~18일 리온 시갈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프로젝트 소장을 불러 협상안을 제시했다. 미국이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정신을 존중한다면 △영변의 기존 핵시설 해체 및 사용 후 폐연료봉을 제3국으로 이전하고 △우라늄 농축 중단 및 아무 전제 조건 없이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어디까지나 핵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지 (핵 폐기를 통해) 비핵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는 무엇인가. 2000년 10월9~12일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고 미국 측과 체결한 것으로 △정전협정의 평화보장 체계로의 전환 △상호 적대관계 해소 △경제협력 △미사일 문제 해결 등이 주요 골자다. 국내 언론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 북한 측 요구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더욱더 깊은 내막이 있었다.

이는 부시 정권 8년간 ‘클린턴 정권 시절 끝났던 지점에서 북·미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북한의 일관된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클린턴 정권 말기인 2000년 10월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그 다음 날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면서 북·미는 미사일 문제를 실무적으로 매듭지었다. 이로써 마지막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북·미 정상회담만을 남겨둔 상태였는데, 미국의 대선으로 이것이 아쉽게 중단되고 만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정권 등장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 외교 일꾼들에게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키라’는 특명을 내렸고, 이는 북한 외교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힐러리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과, 그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을 미국에 요구한 것은 그 연장선이나 다름없다.

미국 정부가 여기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24~25쪽 딸린 기사 참조). 이 경우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11월18일자 평양발 〈조선신보〉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조선신보〉는 지난해 4월 ‘인공위성’ 발사 후 국제사회가 이를 ‘미싸일 실험이라 락인 찍으며’ 제재를 가한 이후, 북한이 자위적 핵 억제력 강화와 우라늄 농축 기술에 기초한 경수로발전소(주체 경수로) 건설이라는 ‘두 개의 통로’를 마련해왔다며 “미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리용을 끝내 방해하고 조선에 압박을 가하는 길을 택한다면 ‘두 통로’의 다른 한쪽, 즉 핵억제력강화로선(핵실험과 폐연료봉에서 나온 플루토늄 전량 무기화)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조선을 떠밀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우라늄 농축을 강제로 못하게 할 경우 추가 핵실험을 비롯한 핵 위기 강화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북한은 연환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평도에 대한 무력 도발을 덧붙여 효과를 증폭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를 타협안으로 내놓음으로써 긴장 증폭의 폐쇄회로와 출구를 동시에 제시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무력 도발 더 일어나면 한·미, 대화 나설밖에”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북한이 이번에 이슈화한 농축 우라늄 시설 공개와 연평도 무력 도발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두 사안 모두 한·미 당국이 흥분할 수는 있지만, 국제 제재로 몰고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북한이 경수로발전소를 지으면서 같은 세트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구축한 것은 ‘이란 모델’을 참고한 것 같다. 이란 역시 부셰르 원전 가동과 우라늄 농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미국과 서방을 곤혹스럽게 했다. 더구나 최근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진 중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란 제재 동참을 거부한 중국이 북한 제재에 응할 리 없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해군의 정례적 사격훈련에 대해 “조선 영해를 침범했다”라며 해안포 도발을 감행한 배경에는 바로 남측 북방한계선(NLL)과 북측의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존재한다(26~28쪽 딸린 기사 참조). 북방한계선의 경우 1953년 8월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남측 해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선’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은 이에 맞서 1999년 9월2일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제시한 이래 자위권 행사를 천명해왔다.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나름 융통성을 발휘하던 북한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를 실질적 해상 경계선으로 굳혀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출신인 브루스 벡톨 교수(앤젤로 주립대학)는 “북한군 총참모장을 맡던 김격식 대장이 (2009년 2월) 황해도 일대를 담당하는 4군단장으로 옮긴 뒤 4군단 보유 포대 상당수를 NLL 쪽 해안으로 옮겼고, NLL 인근에 대한 TOT(Time on Target·여러 곳에 분산된 포병대의 포격이 일정 지점에 탄착군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떨어지도록 하는 일제 사격식의 포격법) 방식의 훈련을 계속해왔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평도 무력 도발 역시 이 TOT 방식으로 이뤄져 피해가 컸다. 농축 우라늄 시설과 마찬가지로 연평도 무력 도발 역시 국제사회로 논란이 번질 경우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오랫동안 치밀하게 도발을 준비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핵과 재래식 양쪽에서 한·미 양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이 선에서 물러설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제2, 제3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국내의 한 안보 전문가는 “이번 사태는 김정일이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고 시작한 것이다. 목적이 달성되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이 지금 당장 태도를 바꿔 협상을 시도한다면 문제가 쉽게 풀리겠지만, 이 경우 한·미 양국의 보수 세력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 김 위원장으로서도 판을 더 키울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즉 보수 세력들조차도 ‘이렇게 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전쟁 일보 직전까지 상황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번에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다음 연평도 무력 도발로 이어졌지만, 다음에는 무력 도발을 먼저 감행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뒤 3차 핵실험으로 상황을 몰고 갈지 모른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충돌이 한 번 더 벌어지면 결국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북 간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서 국지적 충돌이 곧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앞서의 안보 전문가는 말했다.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 앞에서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우리가 따르고 있는 정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보여줬다”라고 회고했듯이, 더 이상 ‘전략적 인내’니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니 하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발상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가 최근 북한을 ‘성난 짐승’이라고 표현했듯이,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 외에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을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그 괴물은 지금 바깥세계로 나갈 출구를 원한다. 북한의 국제화와 정상국가화야말로 21세기 동북아와 한반도의 최대 과제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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