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나쁜 새끼들은 살려두면 안돼”
  • 장일호 기자
  • 호수 168
  • 승인 2010.12.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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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검사 출신 금태섭 변호사가 쓴 평을 보고 류승완 감독이 흥미를 보였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이참이다 싶어 기자가 류 감독에게 만남을 청했다. 제작 뒷이야기 등 솔직 대담.
선악은 무의미하다. 매 순간 권력 구도는 바뀌고 주인공은 서로 물고 물린다. 이들이 내몰린 멀미나는 세상에는 입구도 출구도 없다. 그렇게 영화 <부당거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도움 주신 분’ 여러 이름 중에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보인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류승완 감독과 주 기자는 여러 차례 만났다. 술을 즐기지 않는 동갑내기 두 남자가 주로 만난 곳은 커피숍 혹은 사무실. 주로 대본 모니터를 위해서였다.

<부당거래>의 대본을 처음 본 주 기자의 첫마디는 “재미있다, 이건 말이 된다”였다. 류 감독은 주 기자의 말을 듣고 영화에 대해 ‘약간의 확신’을 가졌다. 지난 10여 년간 검찰을 취재한 주 기자의 조언은 영화가 단순히 영화로 머무르지 않도록 ‘현실감’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시사IN 백승기
“최철기가 죽을 때 부하 경찰이 묻는다.‘왜 그러셨냐’ 하고. 나에게는 그게 굉장히중요한 질문이었다”.영화감독 류승완

조언이 통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주 기자는 최철기(황정민)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최철기라는 인물에 ‘나’를 투영해 바라본 많은 사람의 바람이기도 했다. 주 기자는 “철기 죽이지 말라고 부탁할 때 끄덕끄덕하더니, 영화 보니까 죽여버렸더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류 감독은 “영화를 보는 여러 시선이 있을 수 있고, <시사IN>의 금태섭 변호사 영화평(제167호)도 그중 하나로 봤다”라고 말했다. 반면 주 기자는 “주양 같은 검사는 없다”라는 금 변호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두 시간여 이어졌다.

주진우(주):영화가 끝날 시점을 지나서 더 달린 거 같다. 영화가 ‘뒤끝’이 있어(웃음).

류승완(류):내가 쿨한 사람이 아니다. 영화적으로 깔끔하게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 끝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덜 끝나는 느낌이었다. 뭔가 완전히 ‘끝장’을 내야 하는 게 내 취향인가보다(웃음). 최철기의 죽음에서 나라는 사람의 도덕성이 가동되는 거 같다. ‘나쁜 새끼들은 살려두면 안 돼’라는(웃음). 최철기가 죽을 때 부하 경찰이 묻는다. “왜 그러셨냐”라고. 나에게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었다. 원래 대본에는 없던 대사다. 현장에서 만든 말이다. 그 장면이 촬영 마지막에 찍은 거였는데, 영화를 쭉 찍으면서 보니까 ‘왜 이 짓을 한 거지?’가 굉장히 중요하더라.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질문을 늘 제대로 못하고 넘어간다.

“영화감독은 노동자의 손발 갖고 있어야”

:영화 속 죽음이 참 쓸쓸하다.

:희생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거 같다. 나는 너무 어려서 죽음을 봤다. 중1, 중2 때 부모님이 병으로 연달아 돌아가셨다. 누군가에게는 우주보다 큰 존재가 사라졌는데, 그러고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더라. 지금 시대가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 별로 아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것들이 내 무의식에 남아 있는 거겠지.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부당거래> 리뷰 쓰면서 지적한 부분이 있는데, 나도 공감한다. 이를테면 내가 다루는 영화 속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장르영화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갖는 위엄을 갖추고 있지 않다. <영웅본색>의 소마(저우룬파)나, <칼리토>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나, 이런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악당이지만 멋있다. 관객이 그 인물을 바라볼 때 최소한의 존경심을 갖게 만드는 장치들이 있는 거다. 그런데 내 영화는 그냥 길에서 개가 죽듯 인간이 죽으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내가 스스로에 대한 존엄성이 없어서 그렇기도 한 거 같다. 내가 나를 별로 존중하지 못하니까 사람을 볼 때 진심으로 누군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결여돼 있었던 것 같고. 그런데 인간은 변하잖나? 이제는 존중받는 인간에 대해 다루고 싶은 생각이 있다.

:영화를 대하는 철학은 뭔가?

:말장난을 좀 하자면,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표현을 쓴다. 영화감독한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NG와 OK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그 결정의 순간에 나의 철학과 윤리관이나 모든 게 동원된다. 감독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영화감독이 가져야 할 공통의 철학 혹은 윤리학이 있다면 돈에 대한 책임인 것 같다. 산업적 측면에서 굳이 따지자면 영화는 3차 산업이다. 없어도 되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이 누군가는 감히 구경할 수 없는 돈을 갖고 한다는 거다. 돈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건 일정 부분 노동자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예술가의 심장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손발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기자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영화감독을 계속하고 싶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다니면서 무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도장을 다녔는데, 내가 참 재능이 없더라. 사람을 때릴 때 촉감이 너무 싫어서. 나는 평화주의자다(웃음). 그러면 내가 영화 속 영웅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등학교 때 주간반에 떨어져서 2부(오후반)를 다녔는데, 어쩌다보니 영화 좋아하는 애들이 주변에 모였다. 애들하고 같이 놀면서 영화 잡지를 보게 됐다. 그때 <스크린>이었나 하는 잡지에 존 포드의 사진 한 장이 실렸는데, 존 웨인한테 지시를 내리는 장면이었다. 그때 딱 ‘X발, 감독이 멋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지(웃음). 영화 자체에 홀린 건 어느 정도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땐 그냥 ‘간지’가 중요했던 거지. 진짜 영화가 중요해진 건 절대 빈곤의 시기를 살던 때다. 말 그대로 동사무소에서 정부미 받아 먹었다. 영세민 등록돼 있고. 근데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게 주말 동시상영 극장이었다. 하루 종일 그곳에서 영화를 봤다. 내 도피처였지. 그렇게 지난 10년간 영화감독으로 살면서, 매번 영화마다 ‘이게 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내 영화가 ‘과잉’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그런데 한 10년 이렇게 살아보니 영화라는 게 나에게는 절박하지만, 타인에게는 절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나아가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들더라. 영화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내 삶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내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그만둬야지. 그런데 아직 그 시기는 아니다. 사실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위라도 있으면 어디 가서 선생이라도 할 텐데(웃음).

   
ⓒ시사IN 백승기
“최철기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화를 보니까죽여버렸더라”.<시사IN> 주진우 기자
:제빵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잖나.

:약간 판타지가 있는 거다. 의식주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부당거래>가 300만 관객을 앞두고 있다. ‘흥행 감독’이 되면 뭐가 달라지나.

:사람들이 악수할 때 악력이 달라졌다(웃음). 프로듀서랑 그 이야기하면서 좀 서글프더라.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급행열차를 타라!> 끝나고 나서 본의 아니게 안식년을 1년 보냈다. 그때는 사람들이 나를 피했다. 내가 무슨 프로젝트를 들고 다닐 때마다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약속이 많던지. 그때 내 위치를 냉정하게 볼 수 있었다.

:‘류승완표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재미있는 게 <부당거래> 보고 나서 사람들이 ‘류승완 영화 같지 않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묻고 싶다. 대체 류승완표 영화는 뭔가? <부당거래>도 마찬가지다. 관객 100명이 보면 100개의 <부당거래>가 존재하는 거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명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유능한 감독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알려지면, 이름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 그래서 영화 홍보할 때도 내 이름은 최대한 빼달라고 했다. 누군가가 <부당거래>를 나의 최고작이라고 하면 기분은 좋다. 그렇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게, 이게 최고라면 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거 아닌가. 아직도 빈틈이 많다, 나는. 거기서 다음 영화에서는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 거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스스로도 잘 못 지키고 살지. 운전하다가도 욕하고(웃음). 그래도 이건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가장 중요한 교육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콤플렉스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위선 떠는 것도 있긴 하다. 종교적인 관점도 조금 존재하는데, 예수의 기본은 결국 ‘사랑’이잖나. 그런 가치들을 좀 지키면서 살고 싶다.

:영화에서 악인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데는 그런 부분이 작용한 건가.

:악인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존중받는 사람이니까. 세상에 24시간 나쁜 사람이 어디 있고, 24시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나의 현상을 갖고 진실을 알기는 너무 힘들다. 너무 많은 이면이 존재하니까. 홍상수 감독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다. 아는 척하지 말자는 거지. 영화에 대한 자아비판을 해보면 그동안 아는 체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처럼 내 삶의 일부분이 확 들어간 영화는 오히려 시간이 흘러도 당당할 수 있는데, 내가 좀 어설프게 아는 척했던 부분들은 부끄럽다. <피도 눈물도 없이> 같은 영화들. 이런 여성이 등장하면 영화가 재미있을 거야, 이 정도 생각밖에 안 하고 만든 영화라는 게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류승완 감독과 주진우 기자의 첫 만남은 2008년 촛불집회 때였다. ‘<시사IN> 거리편집국’을 차려놓고 청계천에 나가 있던 주 기자는 촛불집회에 나온 류 감독을 발견했다. 일면식도 없었던 류 감독에게 “왜 나왔냐?”라고 주 기자가 물었다.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후반 작업을 하다 뛰쳐나왔다던 류 감독의 답은 이랬다. “나는 그냥 살아도 괜찮은데, 우리 애들 때문에. 애들이 살아야 하는 나라니까.”

3남매의 아버지인 류 감독의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그는 <부당거래>가 시간이 지날수록 ‘후진’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커서 “아빠,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를 만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감독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는 행복할 것 같다.”

대화 중 금연 필터를 끼운 채 담배를 태우곤 하던 류 감독의 요즘 목표는 금연. 최근에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차일드 44> 등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3남매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위)를 누가 나의 최고작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다”라면서도 빈틈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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