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있었기 때문인지 가끔 후배들에게 훌륭한 검사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편견 없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따위 말을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면 무엇보다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법률적 견해가 다르거나 결론에 차이가 나는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사건 배경이나 당사자의 주장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의뢰인들이 가장 억울해할 때도 자기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통만 치는 판검사를 만날 때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보면서, 머리가 전부는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와 경찰관은 멍청한 쪽과는 거리가 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절대 잊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배후 인물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는다.

〈부당거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 목적은 출세다. 경찰관 최철기(황정민·오른쪽)는 승진을 위해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의 범인을 조작한다.
조폭 출신 사업가 장석기(유해진)와 공생 관계에 있는 경찰관 최철기(황정민)는 장석기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힌 상태에서도 수틀리면 매타작을 서슴지 않는다. 스폰서와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청탁한 일이 뜻대로 안 풀린다는 불평을 듣자, 순식간에 안면을 바꾸면서 ‘검사를 뭘로 아는 거냐’는 호통과 함께 자리를 박차는(그러면서도 스폰서가 선물한 명품 시계는 잊지 않고 들고 나가는) 주양 검사(류승범)의 모습은 먼 옛날에나 있었고, 그때도 극히 드물었다는 일부 대한민국 검사들의 기개를 다시 보게 하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스폰서 검사, 대포폰 등 현실적 소재 눈길

그들의 공통 목적은 ‘출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는지 잘 안다. 주양 검사에게 좋은 사건을 맡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장인은 “검사장이랑 장어만 20마리를 먹었다”라고 털어놓는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약점 때문에 번번이 승진에서 탈락하는 최철기는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는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면 승진시켜주겠다는 상사의 약속을 받고는 스스로 범인을 만들어낸다. 마침내 온 나라를 분노에 떨게 한 아동 성폭력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주양 검사의 반응은 범인이 잡혀서 다행이라거나, 어려운 사건이 해결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되는 놈은…” 운운하면서 공을 세운 최철기를 부러워하는 장탄식이다.

주양 검사(류승범·왼쪽)가 기자를 요정에 데려가 언론 플레이를 청탁하고 있다.
주양과 최철기가 살아가는 세계는 피아가 분명하고 철저하게 이익과 손해에 따라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세상을 지배하는 규칙을 알고 있다. 후배 검사에 대해 “호구나 경찰에 잡혀 있다”라고 한탄하는 선배는, 그러나 섣불리 대응했다가 ‘경찰 놈들이 전면전을 하자고 덤비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요정에 기자를 데려가서 술을 사주며 언론 플레이를 부탁하던 주양 검사는 기자가 명품 시계(스폰서로부터 받은 것)를 사양하려고 하자 “나 자꾸 쌍스러운 사람 만들 거야?”라고 짜증을 낸다. 선수들끼리 괜한 짓 하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그 기자는 시계를 받아 챙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똑똑하고 실력 있는 검사와 경찰관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복잡하게 얽힌 이권 다툼에 묻혀서 간과하기 쉽지만(그렇게 만든 것이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주양 검사와 최철기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동 성폭행범 사건이다.

하지만 검사나 경찰관은 체포된 피의자가 진범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다. 경찰이 범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주양 검사의 관심은 오로지 이것을 구실로 어떻게 최철기를 박살낼까에 쏠려 있었다. 억울하게 구속된 피의자의 인권 문제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물론 그 피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아직도 거리에서 배회하면서 순진한 어린이들을 노리고 있을 진짜 성폭행범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들 세계에서 이런 일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체포된 피의자가 진범으로 밝혀지더라도, 그저 ‘잘 풀린’ 일일 뿐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이라지만, 이 영화는 최근 큰 뉴스가 된 스폰서 검사, 대포폰이 등장하는 등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러나 물론 현실 사회의 모습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주양이나 최철기 같은 검사나 경찰관은 없다. 스폰서가 검사에게 술을 사거나, 검사의 장인이 사위의 출세를 위해 로비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허구에 불과하다. 정말이다.

덧붙이는 말:영화에 나오는 검사나 경찰관이 적어도 머리 쓰는 일은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간인 사찰 사건’이 떠올랐다. 국가기관이 권한도 없이 사기업이나 개인을 조사하는 것은 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의 바보 같은 행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공무원들이 모인다는 청와대(청와대는 아닌가?)와 총리실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다.

대포폰을 사들이고, 전문 업체에 부탁해서 하드 디스크를 지우고 했으면 철저히 할 일이지,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서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수사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은 건 있어서 폼만 잡다가 우세를 당한 꼴이다. 민간인 사찰 사건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총리실 직원이 국회에 출석했다가 슬금슬금 도망가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저런 사람을 시켜서 ‘사찰’할 생각을 했는지 한심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역시 최소한의 머리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자명 금태섭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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