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웬 민란인가 싶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에서 느물거리는 교수를 연기하던 배우 문성근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민란을 선동 중이라니, 뜬금없었다. 그것도 야 5당(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이 모두 모여 한 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재·보궐 선거 연합도 힘든 야당들에게 무리한 요구 같았다. 문씨가 아니었다면 이미 수많은 목소리 중 하나로 사그라진 외침이었을 테다.

그런데 문성근이다. ‘뜨거운 논리’로 무장한 문씨의 힘은 2002년 대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바보 노무현의 눈물’을 이끌어내며 지지율 1.5%에서 출발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후, 자기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정치판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문씨가 8년 만에 다시 ‘플레이어’로 돌아왔으니 세간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시사IN 백승기문성근씨(위)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라도 민란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국을 돌며 2012년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야권 단일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1월13일에는 충청남도 공주 우금치에서 콘서트를 연다.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서명 2만명 돌파 기념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최대 격전지였던 우금치를 넘어 민란의 들불이 전국에 번지도록 하겠다는 그를 11월3일 서강대에서 만났다. 무엇이 그를 다시 뜨겁게 만든 걸까.


‘무보수 노가다’에 나서는 까닭이 궁금하다.
민란 활동이 7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거의 쉬어본 적이 없다. 역사가 이렇게 가고 있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어서 나섰다.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2012년에도 야권은 진다. 6·2 지방선거 이후부터 2012년 정권 교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단일 정당 아래 야권이 다 모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지지율이 50% 넘게 나온다.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여론조사는 응답률을 봐야 한다. 10%도 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수치다. 그것보다 현장을 다녀보면 느껴진다. 민란 운동 서명지에 주민등록번호 칸이 있다. 거기에 자기 번호 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일례로, 지방의 한 고등학생이 민란 운동에 가입하고 간 지 30분 만에 얼굴이 빨개져서 다시 돌아왔다. 그 학생은 ‘경찰대 시험 치려고 하는데 불이익은 없는 거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국민은 자기 마음을 솔직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을 느낀다. 민주주의의 엄청난 후퇴이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 염두에 둔 야권의 인물이 있나? 여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박근혜씨에 대해서는 별 걱정 안 한다. 그 양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30~35% 지지율에 머무른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대선 후보가 아니다. 2012년 선거에서 총선(4월)이 대선(12월)보다 먼저 있다. 총선을 이기면 대선 후보는 누가 되든 상관없다.


문씨는 ‘이회창 대세론’의 무망함을 겪은 사람으로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친김에 하나 더 물었다. 박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문씨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어떻게든 박 전 대표에 대한 문씨의 생각이 궁금했던 기자가 ‘SBS 드라마 〈대물〉은 보느냐’라고 물어도 보고, ‘동문에게 너무 박한 게 아니냐’라는 농도 건넸지만 그는 “드라마 볼 시간이 없고, 한나라당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야권에 쏠려 있었다.

사실 기자가 문씨에게 박 전 대표에 대해 끈질기게 물었던 이유는 두 사람에게 적잖은 공통점이 있어서다. 서강대를 비슷한 시기에 다닌 두 사람은(박 전 대표는 전자공학과 70학번, 문씨는 무역학과 72학번이다) 유명인 아버지를 두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라는 두 사람의 아버지는 둘의 정치적 행보를 읽는 키워드 중 하나다. 문씨의 야권 단일정당 운동이 힘을 얻는다면, 박 전 대통령과 문 목사의 대립이 대를 이어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범상치 않은 인연이다. 그러나 문씨는 대선보다 총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언론의 경마식 보도 태도를 꼬집었다. 주제를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사IN 조남진문성근씨가 8월30일 서울 강남역에서 민란 제안서를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야권 단일 정당 주장은 소수 야당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들은 “정책과 이념에 따라 결사의 자유가 있다”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수세적으로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안에도 진보 블록이 있다. 연합 정당은 강제적 당론을 채택하지 않는다. 한 당 안에서 정파 경쟁을 하면 된다. 오히려 진보 정당의 매력적인 정책을 알리고, 자기 세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이다. 미국 민주당은 연합 정당이다. 브라질의 룰라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도 연합 정당으로 집권했다. 야권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는 수만 가지이겠지만, 같이해야 할 이유는 딱 하나이다.

야권 단일 정당이 좇는 가치는 뭔가. 2012년 집권을 위해 뭉치자는 것은 정치 공학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유·정의·복지·생태 등이다. 민란의 임무는 민주·진보 집권을 위한 틀거리를 만드는 것이고, 국가 전체 비전이나 가치 등은 틀거리 안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야권 단일 정당이 가능하느냐 하는 얘기가 여전히 나온다. 혹자는 ‘문성근은 돈키호테’라고 말한다.
결과를 두고 보자. 2012년 승리에 민란보다 더 괜찮은 방법이 있으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겠다. 그런데 민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넉 달 동안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을 한번도 못 만났다. 그리고 나에 대한 평가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비판만 하지 말고, 어떤 대안이든 내놓고 움직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다.


문씨의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은 존 레넌의 〈이매진〉이다. 이 노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CF 배경음악이었다. 〈이매진〉을 좋아한다는 ‘드리머(Dreamer)’ 문씨의 꿈이 2012년에도 통할지 궁금해졌다.


※ 인터뷰 전문은 〈시사IN〉 온라인판에 게재합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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