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남남북녀 대표가 상담 예약 일지를 내보였다. 포항, 서울, 대구, 순천, 서산 등 상담을 원하는 남자의 출신이 다양했다. 직업도 자영업, 공무원, 농부, 회사원 등 다채롭다. 모두 탈북여성과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최씨 본인도 하나원 24기, 탈북여성이다. 지금은 남남북녀 커플을 소개하는 결혼정보업체를 운영 중이다. 5년 간 400여 쌍의 인연을 이어주었다. 

2002년 입국한 그녀의 탈북 과정은 듣는 것만으로도 험난했다. 2001년, 딸과 고향을 떠나 도망친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북송을 당했다. 죽은 목숨이라 여겼지만 평양으로 이송되던 길 중간에 간신히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많은 탈북여성이 최씨처럼 떠올리기조차 힘든, 험난한 기억을 안고 있다. 최대표가 2005년부터 남남북녀를 잇는 중매쟁이로 변신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고생해 건너온 여성에게 좋은 배필을 이어주고 싶었다. 최대표 또한 내년 재혼을 앞두고 있다. 10월16일 화곡동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결혼정보업체를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입국해서 처음엔 마트계산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70만원을 벌었다. 정착하기가 쉽지 않겠더라. 큰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포장마차를 2년 정도 하면서 어묵, 호떡을 팔았다. 솜씨가 있었는지 제법 잘 됐다. 주변 인맥이 좋아서 그걸 기반으로 결혼정보업체를 시작했다. 사기를 당해서 홀랑 까먹기도 했고. 아는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업체를 내는 등 뒤통수도 여러번 맞았다. 그래도 한번 시작해서 발 빼기 어렵다. 

남남북녀를 400쌍 중매한 최영희 대표
-결혼정보업체를 찾는 남성들의 연령대와 직업은 어떤가?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이 90%다. 공무원, 회사원, 자영업자 등 직업은 다양하고 주로 도시 사람들이다 국제결혼을 해서 혼혈 아이를 낳고 싶진 않다며 오는 남자도 있다. 한국 여성에게 질렸다는 젊은 층도 꽤 있다. 학벌과 능력 등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는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아직 탈북자에 대한 개념이 없이 북한 여성 소개시켜준다고 하면 북한에서 데려오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돈만 주면 다 되는 줄 알고 직업이 없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문의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거절한다. 나도 탈북 과정을 겪었고, 간신히 왔는데 또 고생스러운 길을 권할 수는 없다.

-남남북녀가 왜 서로를 찾을까. 남쪽 여성들이 너무 까다롭게 고르는 데 비해 북한 여성은 학벌이나 연봉 따지는 걸 잘 안 한다. 가끔 남자 쪽에서 지나치게 고를 때도 있다. 외모 고르고 키 보고. 북쪽 여자가 예쁘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북한 여성은 북한 남자들이 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어서 자상한 남자를 좋아한다. 탈북과정에서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라 안정을 찾고 싶어한다.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데 아무래도 도움이 된다.  

-기억에 남는 힘든 고객이 있나. 온지 한 달도 안 된 여자에게 결혼하자며 하루 잠자리를 가진 뒤 마음에 안든다고 다른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고객이 있었다. 궁합이 맞아야 한다고 선을 보기도 전에 퇴짜를 놓는 경우도 있는데 북한에선 없던 풍경이라 낯설다. 가끔 물건 파는 장사가 맘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이라 마음이 다치거나 상할 때가 있다. 한번 발 들여놓으니 인연이 생겨 쉽게 그만 둘 수도 없다. 그래도 결혼식장에서 활짝 웃는 부부를 보면 풀린다. 

-직업적으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식장에서 싱글벙글하는 신랑을 보면 마음이 참 좋다. 아이를 낳거나 이사를 할 때마다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을 잘 꾸리고 정착해 사는 모습을 볼 때 좋다.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 때문에 발을 못 빼고 있다.  -헤어지는 커플도 있을 것 같다. 400쌍 중 3쌍 정도다. 남자 쪽 술버릇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한 커플은 남자가 술 마시고 폭력을 행사해 아이가 유산되고 다신 안 보겠다고 헤어졌는데 얼마 뒤에 보니 또 정으로 함께 살더라. 안타깝다.

-왜 북한남성과 남쪽 여성은 주선하지 않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북한 남성이 적은 편이고 남한 여자들이 잘 모른다.  수요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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