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중국 등에서 탈북자(새터민) 문제를 취재해온 조천현 프리랜서 PD는 탈북자를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 우여곡절 끝에 중국 등지로 탈북했으나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족애’가 매우 강해서 늘 다시 북으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한다. 이들은 결코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 둘째, 중국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이다. 여성이 대다수이고 중국인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지만 북한에도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아 제3자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안쓰럽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가려는 탈북자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상을 한 덕에 ‘나라 밖 정보’에 밝은 이가 많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으로 가고자 한다. ‘더 나은 삶’이란 단순히 배고픔을 벗어난 삶을 말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윤택하게 살려는 욕망이다. 이들은 맹렬하게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 탈북자들은 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입국한다. 사진은 2002년 한 탈북자 가족이 중국 내 제3국 대사관으로 진입하는 모습.
탈북자 지원단체인 ‘새조위(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신미녀 대표의 말도 비슷하다. 신 대표는 “탈북자들이 중국 내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과 전화 통화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요즘 북한에서 남한 소식을 쉽게 접한다. 남한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는지 꽤 많이들 알고 온다”라고 말했다. 요즘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국에 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탈북자 2만명 시대’의 주인공이다.

이로 인해 탈북자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생겨났다. 일하기 싫은 ‘룸펜’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나랏돈만 지원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실제로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무척 낮다. 지난해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이탈 주민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64세 탈북자 599명 중 48.6%만 경제활동인구이고 51.4%는 비경제활동인구였다. 경제활동인구 중 13.7%가 실업 상태로, 한국 전체 실업률 3.2%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일각에서는 탈북자들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4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일자리만 골라다니며 ‘얌체짓’을 한다고 보기도 한다. 

정부 정책도 낮은 취업률에 따라 변했다. 정착 초기 3000여 만원씩 탈북자에게 직접 지급했던 정착 지원금을 대폭 줄이고 취업 햇수에 따라 매년 600여 만원씩 ‘취업 장려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올 3월 공표된 관련 법률도 탈북자 채용 우수업체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기업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탈북자 정책이 바뀌었다.

 
하지만 신미녀 대표는 이런 정책이 속사정을 모르고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탈북자가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벽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넘어온 ‘빨갱이’ 취급을 하거나, 뭔가 비정상인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신 대표는 말한다. 자연스럽게 일자리는 숙박음식업·제조업·건설업 등에 국한된다. 또 다른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도 “탈북자의 업무 능력은 남한 사람보다 떨어진다. 시민단체만 해도 남한 사람 두 명이면 할 일을 탈북자 세 명이 쩔쩔맨다. 하물며 일반 기업이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을 고용하려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탈북자 중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현실도 한몫한다. 탈북자에게 개방적인 일자리가 3D 업종 등 여성이 일하기 힘든 곳인 탓에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저소득층 모자 가정의 경우 정부에서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탈북자로서는 사회복지 대상자로 남는 게 더 유리한 면도 있다.

당연히 대다수 탈북자의 삶은 극빈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가구의 월소득은 ‘50만~100만원’이 34.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100만~150만원’(20.7%)이었다. ‘5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도 19.3%나 되었다.

공공기관 채용 탈북자 전국에 12명뿐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그들에게 공공기관 일자리를 많이 주는 게 해답이라고 지적한다. 공공기관에서 탈북자 업무를 맡아 기업 등과 접촉하다보면 생활도 안정되고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탈북자는 전국을 통틀어 12명이다. 그중 11명이 경기도 내 각 지자체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주무 부서인 통일부가 고용한 탈북자는 겨우 1명이다. 지난해 3명에서 2명이 줄었다.

 
이런 정부 행태를 바라보는 탈북자 상당수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 크게 강화되리라 기대했던 이들의 실망이 크다. 실리 외교를 내세우며 대북 지원을 중단한 것에 비판 여론도 차츰 높아가는 분위기다. 

북한 주민의 참상을 이야기한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펴낸 탈북자 시인 장진성씨는 지난달 보수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에 ‘이럴 테면 햇볕정책이나 해라’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장씨는 “탈북자를 돕든가, 아니면 햇볕정책처럼 북한 정권을 도와주든가 정부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라며 이명박 정부의 탈북자 정책과 대북 정책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 정부가 보수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천안함 사태 때 ‘인간 어뢰설’까지 주장했던 장씨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글이었다. 실제로 한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요즘 들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탈북자가 늘고 있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처우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과거 정부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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