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부러 들국화(구절초)를 캐러 다닌 적이 있다. 가을볕에 말려서 약초방에 팔면 적지 않은 돈이 되었다. 소복처럼 흰 꽃들은 벼를 베고 난 메마른 논둑에, 김장 배추를 뽑고 난 텅 빈 배추밭 가에 오롯이 피어 있곤 했다. 때로는  찬 이슬을 뒤집어쓴 채…. 그때는 구절초를 참 쓸쓸하고 외로운 꽃이라 여겼다. 쌀쌀한 날씨도 그런 감상을 더해주었으리라.

그런데 정읍구절초축제(구절초축제) 자료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소나무 밑에 눈처럼, 거위 털처럼 피어난 구절초들이 볼을 비비고 싶을 만큼 따뜻하게 보여서였다. 확대해 찍어놓은 구절초의 빛깔도 과거 내가 본 서늘한 소복 색이 아니었다. 연분홍 빛깔이 삼삼히 스며들어 더없이 고운 색. 구절초축제 주최 측이 왜 축제 현장을 ‘지상 최고의 가을 풍경’이라고 하는지 얼핏 알 것 같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

섬진강 상류,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산과 구릉 사이에 펼쳐진 옥정호는 드넓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출사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구절초축제는 그 상류 야트막한 언덕바지에서 열린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비스듬한 산에 구절초를 심어 가을이면 사탕보다 더 향긋하고 구름보다 더 부드러운 꽃들이 만발하는 것이다. 올해 축제는 꽃빛이 더없이 새뜻할 10월2~10일에 열린다.    

축제는 ‘산중 음악회’로 시작한다. 솔밭 그늘과 고원전망대 일대에서 현악기와 관악기 그리고 해금과 오카리나의 선율이 꽃밭을 뒤덮는다. 하늘에서는 꽃비도 내린다. 꽃처럼 특수 제작한 글라이더가 하늘을 날며 하루 두 번씩 ‘꽃가루’를 뿌리는 것. 숲속 대나무장난감 공작소에서는 대나무로 직접 피리나 바람개비, 물총 등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사랑의 우체통’은 ‘구절초 엽서’에 사연을 적어 잊고 지냈던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행사.

설렁설렁 오가며 볼 수 있는 구절초 사진 전시회, 대나무숲 곤충 전시회, 야생화 전시회, 분재 전시회 등은 보너스. 구절초 목로주점과 구절초 꽃밭 야외카페에서 은은한 구절초 향을 맡으며 걸치는 막걸리와 차도 놓치지 마시라.  

봄가을 전국 각지에서 장미꽃·연꽃·국화꽃·코스모스·메밀꽃·벚꽃·개나리·진달래꽃·철쭉꽃·목련꽃·매화꽃 축제 등이 열리지만, 구절초 축제만큼 향긋한 축제는 없을 듯하다. 구절초는 작지만 그 청량한 향기가 어찌나 강한지 머릿속까지 스며든다. 인근에서 하루쯤 묵으며 더 여행할 시간이 있다면  옥정호의 가을 물빛에 홀려봐도 좋을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이른 아침 운암대교와 섬진강댐에서 옥정호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도 있다. 문의 www.gujulcho.co. kr 063-539-6171~3.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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