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안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로) 흠흠. 안녕하시오? 40계단이라고 하오다. ‘40계단이 뭐요’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간단히 내 소개를 하겠수. 나는 부산 중구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계단이라오. 나이는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古稀)쯤 되었으려나(내 나이쯤 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오). 그런데 어째 40계단이냐, 이 말이지. 계단 수가 40개라서 그런 건지, 지번이 40이라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수다. 암튼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날 그렇게 부르더라 이 거지(정 궁금하면 와서 직접 확인해보오다).

내가 말을 튼 까닭은 흘러간 옛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라오. 일단 한국전쟁 때 생각이 나는구려. 그때 내 몰골은 깨지고 갈라져서 말이 아니었더랬지. 그런데도 멀리 북쪽에서 피란 온 사람들은 내 위에 걸터앉아서 달 보고 바다 보고 어찌나 서글프게들 울던지…. 맞소이다. 북에 두고 온 아버지·어머니 생각 때문이었지.

한 작사가가 어느 날 그 슬픈 모습을 보고 악상이 떠올랐는지 곡을 만들었다오. 한 번 들어보겠소?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하게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박재홍 노래 ‘경상도 아가씨’). 어떠우? 외로움과 애처로움이 뚝뚝 묻어나지 않소? 인터네뜨인가 먼가 하는 데 들어가서 노래도 직접 들어보면 좋을 거요. 가락도 꽤 들을 만하니 말이오.

 
물지게 체험 큰 인기

암튼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나를 밟거나 걸터앉은 채 신세타령깨나 늘어놓았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 뭐유. 이명세 감독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 신에 나를 으리번쩍하게 등장시킨 거지. 그 덕에 일약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계단이 되어버린 거지. 허허. 그전에도 부산 중구청에서 나를 잘 정비하고 내 주변에서 주민 화합 윷놀이도 하고 그랬지만, 영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온 거요. 이후 한국전쟁의 애환을 표현한 조각상들과 ‘40계단 테마거리’가 내 주위에 들어서면서 나를 찾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났지 뭐유.

내 주변에서 40계단문화축제라는 행사가 열린 것은 2002년 가을부터라오. 주민들끼리 정을 나누는 민속놀이를 하다가 그해부터 한국전쟁 무렵의 유랑극단 리허설, 물동이 나르기 시연 따위 행사를 하면서 제대로 전쟁의 애환을 경험하는 축제로 바뀐 거지. 요즘은 더 나아가서 주먹밥·망개떡 같은 전쟁 음식 시식과, 이제는 보기 어려운 뻥튀기와 솜사탕 퍼포먼스까지 벌여 남녀노소 누구나 흥겨워한다오. 특히 물지게 지고 계단을 오르는 체험은 서로 해보겠다고 긴 줄을 서는 통에 늘 그 앞이 혼잡하지. 떡메치기와 탁본·염색 체험도 인기로 치면 세 손가락 안에 든다오.

올가을에도 비슷한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것 같은데, 한번 놀러오지 않겠소? 아차차, 혹시 오게 되면 내 근처 중구문화의집에 아예 ‘40계단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으니 거기도 꼭 한번 들러보시오. 내 옛날 사진과 애환이 담긴 유물과 자료가 가득하니 말이외다. 부디 하늘 높은 날 뵙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 문의 40stair.bsjunggu.go.kr 051-600-4542.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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