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빚더미 수공, 이번엔 해외 투자로 4800억 손실?
  • 김은지 기자
  • 호수 161
  • 승인 2010.10.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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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이 ‘필리핀의 안갓댐’ 운영권을 약 4840억원에 샀다가 현지인들 반발에 휩싸였다. 이미 4대강 사업 등으로 어마어마한 빚에 시달리고 있는 수공은 왜 ‘글로벌 무리수’를 두게 되었을까?
2000년 볼리비아에서 ‘물 폭동’이 일어났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 벡텔(Bechtel)이 수도 이용권을 사들인 뒤 물값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최저임금이 월 70달러 정도인 볼리비아에서 한 달 물값이 20달러가 넘었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벌인 ‘물장난’에 뿔난 민심은 결국 대통령을 하야하게 하고 벡텔을 철수시켰다.

지구 반대편 나라의 살벌했던 ‘물값 추억’을 꺼내는 이유가 있다. 지난 4월 한국수자원공사(K-water·수공)의 행보가 벡텔의 처지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수공은 4억4000만 달러(약 4840억원)를 주고 필리핀 ‘안갓(Angat)댐’의 50년 독점 운영권을 따냈다. 안갓댐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지역의 생활용수 97%를 공급하고, 연간 400GWh(기가와트 아워) 이상의 전력을 공급하는 다목적 댐이다. 수공은 안정적인 외화 획득을 위해 필리핀 댐 민영화 사업에 발을 담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공의 ‘글로벌 보폭’은 걸음을 떼기도 전에 발목이 붙잡혔다. 5월19일 필리핀 4개 시민단체가 필리핀 대법원(The Supreme Court)에 ‘입찰 무효 및 안갓댐 민영화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안갓댐 인수와 관련된 모든 조처는 무기한 정지 상태이다. 필리핀 대법원이 본안 소송에 대한 심리를 진행 중이다.

   
국내 소양댐보다 큰 필리핀의 안갓댐.
판결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필리핀 헌법에는 ‘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현지 분위기도 좋지 않다. “올해에만 전기 민영화로 전기요금이 30% 인상되어 민영화에 대한 국민 여론이 나쁘다”라고 필리핀에 거주하는 환경운동연합의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기획실장은 말했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입수한 수공의 ‘필리핀 안갓 다목적댐 인수업무 관련 현지 출장 결과 보고’에도 비슷한 염려가 실려 있다. 이 보고서에는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와 관련하여 청문회를 진행한 적이 있고(2009년 필리핀 의회는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비크만 조선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17명의 산재 이유에 대해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하원에도 안티코리아(Anti- Korea) 의식이 있으니 업무 처리 시에 항상 감안하시기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사업안보다 500억원 이상 더 지불

사업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수공은 안갓댐을 4억400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입찰가 2위 금액을 써낸 Gen Northern Energy Corp은 3억6500만 달러를 제시했다. 7500만 달러(약 825억원)나 차이가 난다. 수공은 자신들이 처음 써낸 투자 사업안에 비해서도 500억원 이상 비싸게 안갓댐 운영권을 샀다. 825억이면 한 포기에 1만원씩 한다는 ‘금값 김장배추’를 4년 넘게 무상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평년 김장배추 수요량은 180만t이다).

필리핀 전력자산관리공사(PSALM)가 5월까지 매각한 수력발전 현황을 보면 ‘바가지’ 의혹도 생긴다. 필리핀의 민영화 수력발전 20개 중 안갓댐의 단가는 1W에 2.02달러로 가장 높다. 20개 수력발전 단가의 평균은 1W에 0.7달러다. 게다가 안갓댐의 발전기 7기 중 6기는 40년이 넘은 시설이다. 주인 없는 공기업의 ‘묻지 마 투자’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수공 쪽은 “적정한 투자금액을 상정했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수공은 지난 4월 국내 소양댐보다 큰 필리핀의 안갓댐 운영권을 따냈다. 그러나 필리핀 현지의 반발에 부딪혀 인수와 관련된 모든 조처가 중단되었다.
리스크에 대한 고려도 부족해 보인다. 수공은 2010년 상반기 자체 감사에서 안갓댐 관련 지적을 받았다. 인수 결정 전까지 ‘해외사업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편성 지침에 따르면 해외사업을 할 경우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수공은 뒤늦게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이름뿐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회의를 연 적이 없고, 전체 18명 위원 중 15명이 내부 인사이다. 김진애 의원은 “4대강 사업으로 재무 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수공은 규모가 큰 해외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수공의 ‘글로벌 무리수’는 엉망이 된 재정 상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IN〉은 수공의 카지노 건설 계획(제118호 ‘카지노 띄워 4대강 빚 갚겠다는 수공’),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 발의(제155호 ‘4대강 알박기 누가 누가 했나?’)를 보도한 적이 있다. 이번 ‘필리핀 댐 인수’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4대강 사업, 아라뱃길 사업 등으로 부실해진 재정을 메우기 위한 수공의 세 번째 자구책이라는 뜻이다.

수공의 빚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월7일 대전에서 열린 수공 국정감사에서도 부채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수공이 제2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쏟아졌다.

수공은 지금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경인아라뱃길 사업에 각각 약 8조원과 2조2450억원을 투자했다. 10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감당하기 위해 수공은 현재까지 3조3000억원 정도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에 따른 누적 이자(2009~2020년)만 1조원이 넘는다고 김 의원은 추산한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890억원에 불과한 수공이 감당하기에 벅찬 금액이다. 부채비율도 올해 갑자기 뛰었다. 지난해 29%였던 부채비율이 올해 말에는 80%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4대강 사업을 시작한 2009년부터 수공의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과다한 채권 발행이 수공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다는 게 김 의원의 진단이다.

여당 의원의 눈에도 수공의 빚더미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나보다. 10월7일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수공이 4대강 건설사업으로 8조원의 부채를 떠안아 부실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현기환 의원은 수공이 부채 관리를 위해 2012년과 2014년에 5% 정도 수도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밝히기도 했다.

‘4대강을 건강하고 똑똑하게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라는 수공의 다부진 의지가 오히려 자신들을 ‘빚 수몰’로 내몬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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