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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일자리’로 전락한 인턴제

인턴은 이제 ‘88만원 세대’의 필수 코스다. 그러나 그 인턴제가 오히려 취업 준비생들의 발목을 잡는다. 정규직 전환도 적고, 정규직 취업문을 좁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인턴제를 확대한다고 한다.

성세희·양정민 인턴 기자 2010년 09월 17일 금요일 제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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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전25패.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박 아무개씨(26)의 2010년 상반기 ‘인턴’ 지원 성적이다. 졸업 후 계속해서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박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명색이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자인데 다 떨어질 줄 몰랐다. 요새는 인턴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힘겹다.”

취업문이 좁아진 것은 경기침체 탓만은 아니다. 경제성장률 5.8%(2010년 6월 기준)에 힘입어 일자리가 28만3000개 생겼는데, 청년층 일자리는 도리어 3만4000개가 줄었다. 기업이 청년층을 채용해 교육시키는 것보다 이미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 노동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청년 일자리가 줄면서 ‘인턴 입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뉴시스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8월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인턴의 사전적 정의는 직업을 미리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수련생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기 임시직 성격이 강하다. 2008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당장 2009년에 ‘청년 인턴제’를 도입해 중소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인턴제가 청년 취업 시장의 새로운 고용 패턴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에까지 청년인턴제가 확산되면서 신입사원 공채를 대신하고 있다. 상반기 대기업 인턴 경쟁률은 낮게는 15대1에서 높게는 111대1까지 치솟았다. 인턴 입사도 이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인턴 과정을 무사히 마쳐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적다. 그럼 다시 실업자 신세다.

“너희가 잘하면 뽑겠다”

KT 네트워크 부서에서 인턴을 했던 이민규씨(가명·28)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인턴 생활 짬짬이 서류 접수와 면접을 통해 인턴 종료 한 달 전 다른 회사의 정규직으로 안착했다. 올해 1월 인턴에 지원할 당시만 해도 KT 측은 정규직 전환 비율을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다. “연수 때 ‘300명 중에서 최소 100명 이상은 뽑을 거다. 너희가 잘하면 다 뽑겠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애들이 혹해서 ‘다 같이 정규직 들어가자’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씨와 같은 부서에 있던 인턴 30명 중 정규직에 채용된 인턴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인턴 기간에 주어진 업무도 전공과 무관한 단순 잡무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씨는 6개월 내내 인터넷 전화 설치와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만 했다.

‘실적’을 올려야 하는 KT 영업직 인턴들은 더 참담했다. 이씨는 “원래 수당 외에 인터넷 전화 가입 실적을 올리면 전화 한 대당 인턴들이 받는 수당이 있다. 그런데 못 받은 친구들이 꽤 있다. 어떤 인턴들은 자기 실적을 정규직 직원들 실적으로 올리기도 했다”라고 말한다.

인턴에게 영업을 요구하는 회사는 비단 KT만이 아니다. 취업 전문 커뮤니티 ‘취업뽀개기’에는 은행 인턴에게 영업을 시켰다는 고발이 줄을 이었다. 2009년 하반기 ◦◦은행 인턴십에 참여했던 한 구직자는 “◦◦은행 인턴은 소문만 거창하고 지점에서 카드해라, 청약해라 압박만 줬는데 구직자 입장에서 혹시나 희망을 갖고 온갖 지인들 동원해서 영업했더니…. 이렇게 인턴을 등쳐먹고 이용만 하는 집단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하고 개탄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실낱만큼이라도 있는 인턴은 그나마 낫다. 정규직 전환과 무관한 ‘인턴’은 단기·저임금 노동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런 ‘저질 일자리’를 앞장서서 만든 것은 정부였다. 대표 사례가 2008년 말 도입한 행정인턴 제도이다. 청년들의 취업 역량을 높이겠다는 목표와는 달리 잡무 위주의 ‘복사 인턴’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정부는 올해 들어 관련 예산을 3분의 1로 줄이고 근무시간과 급여를 줄였다. 행정인턴 등 8개 인턴 폐지를 포함해 전면 재검토하겠다지만, 다른 보완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경기가 회복되면 민간 부문의 일자리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라며 민간 부문의 고용 확대를 기대할 뿐, 사실상 손을 놓은 셈이다.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오히려 인턴을 늘렸다. 교과부가 지난해 도입한 ‘학습보조 인턴교사’ 제도가 그 예다. 인턴교사는 정교사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방과 후 보충수업을 담당한다. 올해 상반기에 이미 7000명을 모집한 데 이어 하반기에 300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인턴교사 제도가 도입 당시 청년실업 해소책으로 급히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용고사 준비생들에게도 장래의 직업을 미리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작 임용고사 준비생의 반응은 싸늘하다. 황선명씨(교원대 초등교육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광복 이후 처음으로 정교사 정원이 동결됐다. 교사가 더 필요 없다면서 인턴교사를 뽑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정부가 공무원 정원 동결 방침을 발표한 뒤 정교사는 명예퇴직 등으로 생긴 빈자리만을 충원하는 상태다. 반면 인턴교사는 내년에도 1만명 규모를 유지할 계획이다.

민간 영역에서는 ‘인턴’이라는 명분으로 고학력 구직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턴 큐레이터가 대표적이다.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한 경력(1~3년)을 채우려는 이들이 몰리다보니 문턱이 높다. 4년제 대학 미술 관련 학과 출신만을 뽑는 것은 기본이고, 외국어·컴퓨터 능력이나 지도교수 추천서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고(高) 스펙’이 무색하게도 인턴 큐레이터의 업무에는 전화 받기, 차 대접, 심부름 따위 잡무도 포함된다. 급여 역시 무급 혹은 월 30만~60만원 정도를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3000원 남짓. 최저 시급(411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AP통신, 임시직 인턴 뽑으며 ‘고 스펙’ 요구

고학력 구직자들이 몰리는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다. AP통신사는 정규직 전환과 무관한 무급 인턴을 모집하면서 △주 4일 이상, 3개월 이상 근무 △완벽에 가까운 영어 실력 △장시간 외부 취재 가능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언론사 지망생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아랑’에서는 “기본적인 보수를 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때 갖춰야 할 기본 자세다” “자기소개서에 어쭙잖은 경험이라도 한 줄 더 쓰려고 허덕이는 청년들을 경험이라는 미끼로 부리려는 것 아니냐”라는 등 구직자들의 거센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20대 구직자에게 이제 인턴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정규직 취업을 위한 통과의례가 되었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지난 7월 대학 4학년생 7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인턴 지원 목적 1위는 ‘정규직 전환 확률이 높을 것 같아서’(53.4%)로 나타났다. 이는 3년 전 동일한 설문에서 ‘희망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경력을 쌓으려고’(70.8%)라는 응답이 1위였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 나누기’를 강조하자, 삼성·현대차·SK 등 자산규모 상위 5개 대기업들은 전년도보다 5배 늘어난
1만명 ‘인턴 채용’으로 화답했다. 지난해는 채용과 무관했다면, 올해는 인턴 수를 4000명으로 줄이는 대신 정규직 연계형으로 채용 방식을 바꿨다. 인턴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구직자들이 체감하는 취업 경쟁률은 훨씬 높아진 셈이다. 실제로 취업 포털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 정규직 채용은 2009년 40% 감소했다가 올해 겨우 10%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눈높이 낮춰 해외로 가라?

그런데도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4월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인턴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어떻게 하면 내가 (정규직으로) 발탁될 수 있을까 하는 문화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어서 인턴십 문화는 좋은 제도로 정착될 것이다”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인턴제가 근본적인 청년실업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씨는 “인턴제는 고용시장에 대한 근본적 대책 대신 내놓은 조삼모사 처방에 불과하다. 인턴은 원래 졸업 전 기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다. 졸업 후 취업제도를 인턴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하윤성 청년유니온 법률자문위원(노무사)은 “인턴이 실제로 일을 하고, 그로 인한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다면 근로자로 보고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이 약속한 정규직 전환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허위 광고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라는 정부에 이어, 최근에는 기업과 언론도 ‘글로벌 보헤미안’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며 청년들에게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라고 권한다. 인턴 전형에 지원했다가 ‘25전25패’의 성적표를 받아든 박씨는 현재 공기업 행정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10월까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박씨는 다시 실업자가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인턴만 전전하지 않을까 두렵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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