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 정 아무개씨는 지난해 말 일을 그만두었다. 원장 때문이었다. 원장은 아이들 식비를 지나치게 아꼈다. 값싼 정부 비축미를 구해다 밥을 짓거나, 정체불명의 수입산 고기를 사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더러 있었다. 몇 번인가 이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딱히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 몇몇이 아이들 음식에 신경을 써달라는 요구를 어린이집 측에 전해왔다. 원장은 즉시 정씨를 의심했다. 정씨가 학부모에게 이 일을 까발린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씨는 부인했지만, 그 뒤 원장은 갖은 방법으로 정씨를 괴롭혔다. 구입해야 할 교구를 직접 만들라고 하거나, 갑자기 초과근무를 지시하는 식이었다. 100만원 남짓한 급여도 유독 정씨에게만 하루이틀 늦게 주는 일도 생겼다. 견디다 못한 정씨는 결국 스스로 일을 그만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 날 원장이 동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다 된 과일·채소 등을 떨이로 구입하는 걸 한 학부모가 목격했고, 이 이야기가 학부모 사이에 돈 것이었다. 정씨는 억울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어린이집마다 급여와 근무 환경이 비슷하므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보육교사 월평균 급여 126만원

그러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 자기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을 옮기려는 부모에게 다른 어린이집 원장이 ‘원래 어린이집으로 가라’며 권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교사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하는지 몰랐다. 그 후 정씨는 더 이상 어린이집 교사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불행히도 정씨의 사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 보육교사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언제 어린이집을 그만둘지 모르는 형편에 놓여 있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의제로 떠오르며 그 어느 때보다 보육 문제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지만, 보육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중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통계를 들여다보자. 보육교사의 월급 수준은 열악하기로 소문났다. 실제 월급액수를 확인하면 꽤 충격적이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와 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보육시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보육교사의 ‘평균’ 급여는 126만원이었다.

그나마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의 월평균 급여가 155만원이었다(국공립 교사의 경우 정부가 정한 ‘호봉제’에 따라 받게 된다. 1년차 135만원, 10년차 182만원). 민간은 더욱 열악하다. 민간이 118만8000원, 가정형(정원 20명 이하)은 102만원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마저도 ‘평균’ 월급이어서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초임으로 100만원을 훨씬 밑도는 급여를 받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직률이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이직한 교사 수가 보육시설 한 곳당 평균 2.1명으로 나타났다. 보육시설 한 곳당 평균 4.2명의 보육교사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이집마다 매년 보육교사 절반이 들고 나는 셈이다. 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조 심선혜 보육분과장은 “보육교사 이직률의 특징은 아예 업종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격증 취득 후 현장에 나갔다 실망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가는 이들이 상당수다. 처우가 열악한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그 부침이 더욱 심하다”라고 말했다.

민간 어린이집 비율 90%에 달해

실제로 민간 어린이집은 ‘괜찮은’ 교사 수급에 애를 먹는다. 서울의 한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를 구하다보면 과거에 잠깐 어린이집 교사를 하다 출산과 육아로 10년 가까이 공백이 생긴 아줌마 교사나, 시설장(원장)이 되는 경력 기간(3년)을 채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다 그만두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심선혜 분과장도 “민간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평균 근속 연수가 2~3년에 불과하다. 이는 곧 보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민간 어린이집이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대세’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보육시설 중 민간·가정형 보육시설이 90%에 달한다. 반면 국공립은 5.4%, 직장 보육시설은 1%에 불과하다. 출퇴근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직장 보육시설이나 정부 지원으로 쾌적한 보육 환경을 갖춘 국공립 어린이집이 좋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대기자 수가 평균 78.27명에 이르는 국공립 시설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보육교사 자격증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보육 선진국’이다.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국보육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지난 5년 동안 1·2·3급을 합쳐 보육교사 자격증이 무려 48만1854개나 발급되었다. 지난해 3급 신규 자격증 발급만 1만2029건이었다. 현재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교사가 총 15만명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장롱면허’가 발급된 셈이다.

반면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된 보육교사 수는 고작 170명이다(국공립·부모협동보육 등 그나마 형편이 나은 어린이집 소속이 대다수다). 조직률이 0.1% 남짓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노동조합 조직률 10.1%보다 턱없이 적다. 이 조직률을 가지고는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보육교사의 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교사는 보육교사와 유치원 교사로 나뉜다. 유치원 교사는 전문대 이상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교사 자격증을 얻는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는 고졸 이상 학력으로 정부 지정 교육시설에서 정규 과정을 이수하면 보육교사 3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전문대 관련학과를 졸업하거나, 3급 교사 중 1년 이상 경력자가 일정 교육을 받으면 2급 교사가 된다. 2급 교사 중 3년 이상 보육업무에 종사한 사람은 시설장(원장) 자격을 얻어 어린이집을 차릴 수 있다. 어린이집 경력 3년이면 ‘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설장 자격이 느슨하다보니 보육자로서 함량이 부족한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질 식료품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겨울철 난방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실내 온도를 지나치게 낮게 유지하는 식이다. 개중에는 시설장 자격증 거래를 통해 몇 군데씩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이도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똘똘 뭉쳐서 국공립 어린이집의 차량 운행을 막은 일도 있었다. 

경기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이 아무개 교사는 얼마 전 원장으로부터 어린이집 인수를 제안받았다. 그런데 원장은 기본 비용 외에도 ‘권리금’ 7000만원을 요구했다. 한 달 순수익이 600만원은 되기 때문에 1년이면 권리금을 뽑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교사는 어린이집에 권리금이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거니와, 원장이 한 달에 벌어들인 돈이 그렇게 많다는 데에 놀랐다. 평소 늘 어린이집 운영이 어렵다며 앓는 소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원장들 중에는 말만 교육자이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도 있다. 이런 이들이 겉보기에는 번듯한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일부 부실 어린이집 대신 ‘괜찮은’ 어린이집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가 실시한 제도가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이다. 서울형 어린이집이 되면 운영비 일부와 어린이집 원장·교사의 인건비 상당액을 지원받는다. 서울형 어린이집의 ‘의무’는 야간 보육시간을 연장하거나, 공휴일에도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다. 서울시가 지정한 회계관리 시스템을 운영해 보육경비의 집행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필수다.  

애당초 상당수 어린이집 원장은 이 제도 시행을 반대했다. 정부 간섭 탓에 운영 자율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시가 연 공청회 자리에 원장 100여 명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참석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학부모는 물론 원장도 좋아하는 제도가 되었다.

보육시간 연장과 함께 주치의 제도 등이 시행되는 만큼 학부모가 반기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원장이 이 제도를 환영하는 까닭은 뭘까. 일각에서는 ‘이중장부’ 문제를 지적한다. 심선혜 보육분과장은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의 조건이 투명한 회계이지만, 적지 않은 어린이집은 회계 프로그램 따로, 실제 장부 따로 작성하고 있다는 말을 교사들로부터 듣는다. ‘유령 교사’를 채용하거나 운영비를 부풀리는 편법이다. 정부 지원은 다 받으면서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 분과장은 “특히 서울시가 어린이 안전을 이유로 CCTV 설치를 종용하면서 보육교사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할 위기에 놓였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결국 원장의 이익만 보장해주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당근’만 주는 어린이집 관리·감독

실제로 서울형 어린이집의 관리·감독은 부실하다는 평가다. 실질적 관리·감독을 수행하는 각 구청의 담당 직원이 1명에 불과한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운영한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 역시 서울형 어린이집처럼 일정한 검증을 통과하면 정부가 각종  비용을 지원했으나 정작 평가에서 탈락한 곳에는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아 ‘부실 평가’ 논란이 일었다. 당근만 주고, ‘채찍’은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도가 정착되는 단계인 만큼 미비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인증 시설 확대보다는 기존 시설에 대한 운영 내실화에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당사자의 개혁 의지도 중요하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한국보육시설연합회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연합회는 전국 국공립·민간 어린이집 원장이 대부분 가입되어 있는 최대 이익단체다. 그런데 이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선거 때만 되면 이런저런 집회를 통해 ‘실력 행사’를 해온 단체의 반응치고는 뜻밖이었다. 며칠 뒤 연락이 닿은 이 단체 간부는 보육교사 처우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보육료를 동결하는 바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며 보육료 인상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들은 애당초 보육교사 처우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별다른 조직도, 힘도 없는 15만 보육교사는 정작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오늘도 하나둘씩 어린이집을 떠나고 있다.

취재 도움·권소영 인턴 기자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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