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정책은 예산으로 통한다. OECD 국가를 재정의 크기순으로 나열하면 보수의 나라와 진보의 나라 스펙트럼이 나온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 ‘진보주의 연구’ 중에서)

재정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대통령이 직접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등 국가재정에 ‘전략’ 개념을 도입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국민에게 재정의 중요성이 체감되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정권 출범과 더불어 진행된 대대적인 부자 감세,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투입된 추가경정예산, 4대강 같은 대형 토목사업,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불붙은 지자체 채무 등 대한민국 나라살림의 회계장부를 놓고 온 국민이 갑론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또 진보 진영이 제기한 무상급식 등 복지 의제가 여론을 타면서 정치의 주변에 있던 국가재정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모셨다. ‘샛별’ 논객으로 떠오른 재정전문가 삼총사. 오건호(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정창수(좋은예산센터 부소장), 홍헌호(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숫자·통계의 달인들이다. ‘정책의 수학’이라는 재정 문제를 요리할 수 있는, 해서 정부의 ‘뻥’을, 관료들의 ‘수치 장난’을 콕 집어낼 수 있는 귀재들이다. 이데올로기보다 정책에 충실한 ‘40대 소장파’. 이들은 숫자가 틀리면 ‘좌고 우고 없다’면서 내부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진보한테도 쫓겨나고 물병 세례를 맞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
이들이 7월28일 〈시사IN〉 회의실에 모였다. 성남시 지불유예 선언을 도화선으로 지자체 부채가 언론을 달구더니 급기야 국가 부채의 뇌관이랄 수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마에 올려진 시점이었다. 이제 ‘억’ 소리도 아니다. 수십조, 수백조원이 쉽게 언급된다(정창수씨에게 1조가 대체 얼마나 되는 돈이냐고 물으니, 서울시 50만 영·유아의 1년 시설보육비를 전액 지원할 수 있는 정도란다). 대체 얼마인가? 국가 부채. 정부 공식 통계로는 400조원이지만 지나친 과소 추계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신 국제 기준을 적용하면 50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정부-공기업 사이의 ‘돌려막기’ ‘순환출자’ 현실을 고려해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1000조원을 훌쩍 넘는다. 홍헌호씨는 가계부채 700조원을 보태 ‘빚 폭탄 1800조원’ 시대를 예감했다. 더 심각한 건 20·30대가 사회 중심축이 되는 20∼30년 뒤에는 경제성장률 1%, 일자리증가율 0%. ‘폐허 세대’라 할 만했다.

정부는 아직 우리나라 부채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며 안심하라고 하지만 문제는 빚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정창수씨는 특히 복지지출이 부채에 누적되어온 선진국과 달리 한국처럼 복지는 시작도 못한 처지를 동등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오건호씨는 보수 진영조차 나라 망하게 생겼다며 ‘부채 공포’를 강조하는 경우의 정치적 효과를 경계했다. 재정건정성에 대한 과도한 경고는 지출 통제로 이어지고 그 유탄이 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 7.6%의 재정 효과에 대해서도 논박이 이뤄졌다. ‘빚으로 경제성장’이라는 시각인 정창수씨는 환율 효과를 대기업, 그중에서도 삼성·LG·현대 3대 그룹이 독식했다는 점을 짚어냈다.

‘위기 관리’에 들어간 정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론이 대서민용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정부는 오건호씨의 제안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자산 300조원을 돌파한 국민연금 활용법. 주식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삼성·포스코·현대차에서는 그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총수와 총수 일가가 가진 평균 자사 지분 4.5%보다 더 많다.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말로만 상생을 주장하지 말고 국민연금 대주주로서 주주권을 행사하면 된다. 중소기업 하청 단가 후려치지 말라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라는 거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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