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서울신문 기자였던 김을한(사진)은 도쿄 특파원 발령을 받았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을 찾아갔다. 인질로 잡혀갔던 영친왕은 나라가 해방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견제로 입국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고립무원이던 영친왕은 그를 반겼다.

1970년 영친왕이 서거할 때까지 김을한은 20년 동안 망국의 충신처럼 헌신했다. 그러나 냉정한 기자의 시선을 잃지 않았다. 일본 황실로부터 귀족 대우를 받으며 제1항공군사령관(육군 중장) 지위에까지 오르며 물질적으로는 일본 방계 황족보다 풍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했던 영친왕의 삶을 그는 ‘끝없는 한,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 묘사했다. 

저자는 영친왕을 중심으로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와 여동생 덕혜 옹주 그리고 이들의 구술을 통해 고종·순종·명성황후·의친왕 등 황실의 마지막 사람들을 들여다보았다. 이방자 여사는 저자에 대해 “김을한씨의 서술은 대체로 정확하며, 아주 어려운 시기에 왕 전하의 잘못된 국적을 다시 고치고 가여운 덕혜 옹주를 본국으로 모셔오게 해주었다. 그 노고를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1971년 발간된 책이 국권 찬탈 100년을 맞이해 39년 만에 복간되었다.

1971년 초간 당시 운보 김기창이 책의 장정을 그렸고 일중 김충현이 제자(題字)를 썼고 작가 김팔봉은 추천사를, 월탄 박종화는 ‘영친왕을 위해 곡하다’라는 시를 헌정했다. 박종화는 영친왕을 원나라의 볼모로 가서 노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했지만 귀국 후 고토를 회복한 공민왕에 비유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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