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중앙대 문과대학 겸임교수.문화평론가)
유감스럽게도 2002년 대선에 비해 모든 것이 퇴행했다. 그것은 예년과 다른 선거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당 받고 동원된 선거운동원들이 길거리에서 열심히 율동을 해도, 그 열기는 지자체장 선거의 그것을 넘지 못했다. 특별한 계기도 없이 한꺼번에 투표율이 10% 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여기에는 모종의 자포자기가 있다.

어느 외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번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 이후 가장 더러운 선거”였다.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덕성의 진흙 바닥을 헤매는 미꾸라지에 똥물을 퍼붓는 양상으로 치러졌다. 고질병이라고 하는 지역주의는 어떤가? 호남에서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 조금 올랐다 하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고, 두 보수 후보의 표를 합하면 영남에서 지역주의가 대폭 강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급격한 투표율 하락은 모종의 자포자기

정당 문화는 어떤가? 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웃지 못할 이름의 급조한 선거용 정당으로 전락하고, 민주노동당은 주사파에 발목이 잡혀 과거로 퇴행하다가 자멸해버렸다. ‘고려 연방제’ 구호를 ‘철천지 원수 미제’의 언어로 ‘코리아 연방제’라 위장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혁신의 최대치다. 그나마 변신에 성공한 것은 한나라당이다. 그들은 ‘이념적’ 보수에서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경제적’ 보수로 모습을 바꾸었다.

인터넷 문화 역시 퇴행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자발성의 소멸’이다. 선거 기간 중에 제작된 UCC의 80%가 정당에서 만든 것이라 한다. 선관위의 지나친 간섭도 네티즌의 자발적 참여를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른바 ‘박영선 비디오’를 다운로드한 네티즌까지 싸잡아 고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2년처럼 활발한 인터넷 정치 문화는 기대할 수 없다.

2002년에 인터넷은 얼마간 기존 정치질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 혁명 주체들은 곧 열린우리당을 열렬히 지지하며 그 안에 그대로 포섭되고 만다. 인터넷 정치 참여가 간단히 ‘재영토화’해버린 셈이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이 모여 만든  ‘서프라이즈’와 같은 사이트를 가보라. 왜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합리성의 소멸’이다. 인터넷에서 합리적 의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화적 의식이 들어서고 있다. 원래 신화는 영웅 이야기고, 영웅은 선악의 피안에 있는 존재이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에 더 이상 ‘합리성’이 필요 없고, 심형래 사태는 영화에 더 이상 ‘미학성’이 필요 없고, 이명박 당선은 경제에 ‘도덕성’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중은 돈 벌어주는 신비한 능력을 타고난 영웅을 바란다.

ⓒ난 나 그림
황우석과 심형래 사태 때 여야 지지자가 대체로 동일한 태도를 취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몸속에 습속으로 깔린 이 공통 지반이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낳았고, 또한 이명박 정권 탄생을 낳았다. 과학과 영화의 영웅에 대한 열광은 당연히 정치와 경제의 신화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정권이야 원래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는 법. 다수 국민이 신화를 선택했다. 이제 그들은 그 선택이 맞았는지 몸으로 겪게 될 것이다. 이번에 선택한 세상은 부디 지난번 것보다 견디기가 낫기를. 그래도 5년 동안이나 들어앉아 있어야 할 지옥이 아닌가. 국민 여러분, 부디 안녕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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