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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맞는 ‘모닝 신화’의 주인공들

양정민 인턴기자 2010년 07월 29일 목요일 제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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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다.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그것이다. 

여기 노조를 만들었다 해고당한 원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개중에는 노조가 생겼다고 근무하던 회사 자체가 폐업을 당한 이도 있다. 지난 7월12일부터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보름 넘게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보았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 한쪽에는 “불법 집단 이기주의 근절”이라는 현수막이, 맞은편에는 “정몽구가 나서라”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곳에서는 요즘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7월 27일 낮, 눈을 뜨기조차 어려운 뙤약볕 아래서 현대기아차 직원 두 명이 어깨띠를 두르고 손팻말을 든 채 서 있었다. 현대기아차가 시작한 ‘질서유지 캠페인’ 때문이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기아차 ‘모닝’을 위탁생산하는 동희오토 협력업체 해고자 7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해고자들의 본사 진입을 우려해 사옥 정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형 버스로 가로막혀 있었다. 대형 버스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용역 직원이 두세 명씩 조를 이루어 사옥 주변 곳곳에 배치되어 삼엄한 분위기였다.  

   
ⓒ시사IN 양정민 인턴기자
기아차 ‘모닝’을 위탁생산하는 동희오토 협력업체 해고자 7명이 현대 기아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수상한 ‘한 장소 두 집회’의 시작은 지난 7월 12일부터였다. 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해고 노동자들은 이 날부터 현대기아차 사옥 앞에서 무기한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가 직접 나서 해고자 9명을 복직시키고 민주적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다.

농성자들이 일했던 동희오토는 2008년 29억의 순이익을 내며 ‘모닝 대박’ 신화를 썼다. 동희오토는 생산직 노동자 850명 모두가 산하 하청업체 17곳에 소속돼 있다. 기아차-동희오토-중소하청업체로 구성된 하청-재하청 구조의 맨 아래에 이들이 자리한 셈이다. 

비정규직인 이들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2010년 현재 4110원)을 받는다.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사무장(32)은 “노동강도를 나타내는 수치 중에 편성률이란 게 있다. 쉽게 얘기해서 자동차 1대당 작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비율이다. 다른 공장은 편성률이 50~60%인데, 동희오토는 80~90% 수준이다. 숙련공이 아니면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얘기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다보니 노조 활동에도 제약이 걸렸다. 2005년 생산직 노동자 250여 명이 노조를 결성하자 동희오토 측은 하청업체(대광기업)를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노조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동자 50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2008년에는 기존 어용위원장 대신 새 노조위원장을 뽑은 하청업체(대왕기업)가 선거 후 이틀 만에 폐업을 당하기도 했다. 2005년~2009년 6월 노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장 건강상의 문제’ ‘회사 내부 비리’ 등을 이유로 총 4번의 폐업이 있었다. 

하청업체가 폐업되면 소속 노동자는 전원 해고된다. 하지만 다음 달에 새 하청업체가 들어오면 노조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자는 재고용되고, 노조에 참여한 노동자는 배제된다. 이런 방식으로 2005년~2008년 말 해고된 노동자가 100여 명. 해고 노동자들은 실직 상태가 이어지자 대부분 다른 직장을 찾아 흩어지고 2009년 초가 되자 9명만이 남아 복직투쟁을 이어갔다. 

이들은 동희오토가 위치한 충남 서산에서 2009년 3월부터 7개월간 천막농성을 벌이며 복직을 요구했다. 서산시청은 해고 노동자들의 간담회 요청을 거부했다. 동희오토 역시 간접 고용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대화를 피했다. 노동위원회는 이미 해당 업체가 폐업되어 “규제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구제 신청을 각하했다. 이들 중 7명은 결국 현대기아차가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며 지난 7월 12일 상경했다.  

   
ⓒ시사IN 양정민 인턴기자
농성자들이 처음에 자리를 잡았던 본사 건물 외벽 앞은 지난 17일부터 화단 보수공사를 이유로 접근이 차단됐다.
농성 첫날 밤 12시, 건물 외벽 물청소를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회사 측은 두 시간 반에 걸쳐 건물 외벽에 물대포를 쏘았다. 농성자들이 가져온 쌀과 가재도구도 모두 물에 젖었다. 두 시간 반에 걸친 ‘물청소’가 끝나자, 이번에는 자동차 두 대가 농성자들을 향해 헤드라이트를 비췄다. 용역 직원들은 휴대용 확성기를 이용해 사이렌을 울리기도 했다. 새벽 5시 20분께 ‘물청소’는 다시 시작됐다.  

농성자들이 처음에 자리를 잡았던 본사 건물 외벽 앞은 지난 17일부터 화단 보수공사를 이유로 접근이 차단됐다. 보도블럭을 들어냈다가 다시 끼우는 작업이 반복되는 한편으로는, “불법 무질서 행위 퇴출” 같은 문구의 현수막이 줄지어 걸렸다. 농성자들은 현재 자리를 옮겨 인도 위에서 은박 돗자리를 깔고 생활한다. 이들이 등을 기대고 있는 안전펜스 바로 너머는 왕복 4차선 도로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매연이 농성자들이 있는 곳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이들의 농성을 ‘생떼 시위’로 보도했다. 농성자들이 정문을 막아 본사를 찾은 외국인 바이어에게 나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최진일 사무장은 이에 대해 “버스로 입구를 막은 것은 사측이다. 본사 건물에 진입을 시도했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 현장에 오지도 않고 마치 우리를 만나고 온 것처럼 지어내서 기사를 쓰는 매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의 대화 국면이 열릴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농성 열흘째를 맞던 지난 7월 22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행정부는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이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에 대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원청회사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최진일 사무장은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본다. 동희오토 역시 사실상 결정권은 현대기아차가 갖고 있기 때문에, 현대기아차가 해고자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판결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용을 검토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동희오토 해고자들의 직접교섭 요구에 대해 “기아차는 해당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원청이 기아차라는 것은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고용주는 해당 하청업체들이고, 굳이 원청을 따진다면 동희오토 아니겠는가. 노조 문제도 해당 하청업체와 해결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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