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일본 경제사회정책의 실패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장기 침체에 빠진 이후, 일본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은 대개 개입의 적기를 놓쳤거나 근본적으로 잘못 설계된 것으로 혹평을 받았다. 먼저, 개입의 적기를 놓친 대표 사례로는 1990년대 경기침체의 초기부터 구조적 수준의 대폭적인 경제사회정책 패키지를 들이밀지 못하고 장기간에 걸쳐 찔끔찔끔 뒷북치는 경기부양에 끌려갔던 것을 들 수 있다.

더욱 잘못된 것은 경기부양 정책의 대부분이 도로나 댐 건설 따위 토건사업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엄청난 재정적자 누적으로 이어졌다. 현재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80%에 이른다. 다음으로 아예 잘못 설계된 정책 방향의 대표 사례는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들 수 있다. 20년에 걸친 이러한 정책 실패는 결국 자민당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선임된 민주당 간 나오토 총리는 경제성장·재정안정·사회보장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기존 사고를 180°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회보장의 충실화를 첫 단추로 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가 노인 돌봄과 의료 등 사회 서비스 분야의 공공 지출을 크게 늘림으로써 고용창출과 소비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복지성장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 방향이 10년 또는 20년 전에 제시되었더라면! 일본으로서는 만시지탄이라 하겠다. 이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지금 일본의 조세재정정책 여건이 너무나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본의 정책 실패를 그대로 뒤따를 것인가? 반면교사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의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 결과는 이명박 정권 심판이었다. 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부자 감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명백한 국민적 거부였다. 그 결과 민주당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고, 개혁 성향의 40대 시장·도지사와 시·군·구청장이 무수히 탄생했다. 그래서 세대교체와 진보적 민생정책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다. 뭔가 달라지고 우리네 삶의 질이 개선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지방정부 당선자들은 ‘새로운 집권’을 위한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3개월만 지나면 이전 단체장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과거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다. 비상한 각오와 대책이 필요하다

간 나오토 총리가 들고 나온 ‘복지성장 정책’ 기조는 일본에서는 많이 늦었고 최악의 조건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이 적기이자 호기이다. 마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한국에서 재연이라도 하려는 듯, 실패한 자민당의 토건 신자유주의 노선을 답습하는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 정책 방향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지방정부 정책 패키지를 제시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지방정부 정책의 성공 조짐이 초기 성과를 통해 가시화되면, 진보·개혁 진영으로서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역동적 복지국가 노선을 걸고 한판 승부를 겨뤄볼 만하다.

2012년 총선 전에 ‘진보발 정계개편’ 이뤄야

즉, 지금 진보·개혁 진영의 실천적 요체는 지방정부의 ‘복지혁명’이다.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가 교집합을 이루는 영역에서 한두 가지 정책 의제를 조기에 확정해 확고하게 실천하는 것이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복지 수혜자가 되는 것이고, 적극적 복지는 보건의료와 교육 등에 대한 선제적·예방적 투자를 통해 인적 자본의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두 복지 영역의 공통 부분으로는 아동·보육·가족, 교육, 보건의료, 돌봄 등의 사회 서비스를 들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제대로 받들기 위해서는 지방정부 수준에서 추진 가능한 사회 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보편적·적극적 복지 의제를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이에 조응하는 중앙정치권의 ‘복지혁명’ 입법과 정치적 지원 노력이 전략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복지 의제의 정치동학 과정에서 진보·개혁 정치세력이 복지국가 지향적 재편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성격상 ‘신자유주의와 잔여주의 대 복지국가’라는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지형 변동이므로, 이를 ‘진보발 정계개편’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개편은 2012년 총선 수개월 전까지는 완료되어야 한다.

기자명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