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집필 중인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SBS에 대한 심경을 내비쳤다. “월드컵에 목숨 건 나라 같다. 집단의식 조종이랄까.” “결방이 너무 슬펐다”라는 팬의 글에 김 작가는 “완전 월드컵에 당하는 테러다”라고 답했다.
 월드컵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로 월드컵 블랙홀은 더욱 힘이 커졌다. 천안함 사태·여권의 인적 쇄신·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 중요 현안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월드컵 기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엉터리였다는 게 분명해졌다. 천안함 국방부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이 내세운 결정적 증거는 거의 무너졌다. 어뢰 설계도가 들어 있다는 북한 무기 소개 책자에 관해 국방부는 애초 카탈로그라고 했다가 CD라고 바꾸더니 지금은 카탈로그와 CD가 모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어뢰 ‘1번’ 글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박선원 박사는 “추진체를 건져 올리는 사진에는 ‘1번’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부분에 알루미늄 호일이 덮여 있었지만 합조단 발표에는 알루미늄 호일은 사라졌고 그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어뢰 추진체가 과연 폭심에서 건져낸 진품인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이 프로펠러와 추진 모터 등에서 발견됐다는 근거에 대해 미국 버지니아 대학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는 오류를 지적했다. 이승헌 교수는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조작이나 실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승헌 교수에 의해 합조단이 북한 어뢰에 의한 버블 제트라고 이야기한 결정적 근거마저 깨지고 말았다.

합조단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령도 초병이 해상에서 높이 100m, 폭 20~30m의 하얀 섬광 기둥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초병이 자필로 그린 그림에도 물기둥은 없으며, 맨 마지막에 “물기둥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진술서를 썼다.

ⓒ청와대6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앞줄 오른쪽)과 함께 2002 한·일 월드컵 터키–한국 경기 사진을 보고 있다.
천안함 보고서를 미국에 전달한 일이 없다던 국방부가 보고서를 미국에 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최근 국회 천안함침몰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리던 기간에 2주간 합숙을 받은 사실도 국방부는 거짓말로 일관하다 탄로났다. 국방부를 ‘국뻥부’로 부르는 누리꾼들도 나타났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사건 발생 시간, TOD 동영상, 물기둥 증언, 흡착물질 등 국방부와 합조단이 발표했거나 제시했던 팩트치고 바뀌지 않은 게 거의 없다. 하지만 국방부와 합조단은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천안함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거의 뒤집혔다. 월드컵이 아니었으면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했다는 주장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 전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경찰의 고문도 월드컵 함성에 묻혀 있다. 경찰은 휴지나 수건으로 피의자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머리를 밟아대고, 수갑을 채운 양팔을 머리 쪽으로 꺾는 ‘날개꺾기’를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기소된 피의자 32명을 인권위가 직접 조사했더니 그중 22명이 비슷한 식의 고문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국무총리실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민간인을 사찰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문제를 삼는 이도 드물다.

한국 월드컵 팀의 선전으로 많은 사람이 덕을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중 한 사람이다. 월드컵이 개막된 6월14일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 연설에서 “4대강 살리기가 생명 살리기이며 물과 환경을 살리는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정희준 교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국민들은 국격의 상승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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