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세상을 춤추게 한다. 심지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인접 국가인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 때문에 실제 전쟁을 벌였다. 양국은 1970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 예선전에서 맞붙었는데 응원단의 유혈 난투극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축구에서 엘살바도르가 승리하자 온두라스는 무력 침공을 감행했다. 두 나라는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순간 잠시 휴전했다가 우주선이 지구 궤도를 벗어나자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 축구에 이어 전쟁까지 패했던 온두라스가 이번 남아공 대회에 출전한다. 전쟁 이후 두 번째다.
그 무렵의 일이다. 한국이 낳은 축구 스타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가 되돌아오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국보급 선수를 해외로 넘길 수 없다는 국민 정서의 중심에는 비델라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박정희 정권이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봉쇄하며 군사정권이 홍보용으로 개최한 축구대회가 바로 박스컵 또는 박대통령컵이었다. 웃지 못할,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리스는 최근 세계 자산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유럽발 경제 위기의 진원지다. 방만한 재정지출과 무분별한 외채 도입으로 국가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1997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국제통화기금(IMF) 원조를 받기에 이르렀다. 치솟는 청년실업률과 시위대에 대한 과잉 대응도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나라 빚을 갚겠다며 금 모으기에 나섰다면, 그리스 인들은 여전히 저축보다 소비에 치중한다. 한국에서 외환위기의 고통이 사회 약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것과 달리 그리스에서는 이 와중에도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현 대통령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다. 남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세계 최초의 부부 직선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아르헨티나도 모라토리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와 비슷하다. 국가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전·현직 대통령 부부의 재산은 계속 늘어나 언론의 빈축을 산다. 불법 치부 논란, 부동산 거래 의혹, 해외 재산 소유 등도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내전이 한창이다. 1999년 이후 집계된 분쟁 희생자만 1만명이 넘는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10여 차례 쿠데타가 발생했고, 2004년에는 종교 분쟁으로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됐다. 나이지리아는 미국의 최대 석유 공급원으로 파격적인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석유를 팔아 사들인 무기가 내전을 확산시키는 악의 축이다.
대통령이 신병 치료차 3개월씩 해외에 머무르는 사이 부통령이 내각을 해산한 나이지리아. 한국은 바로 그 나라와 16강 진출을 가리는 B조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축구광들이 4년마다 축제를 즐기는 동안,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수많은 이의 삶은 잊히거나 왜곡된다. 승자의 환호 속에 패자의 상처는 조용히 묻혀버린다.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1년에 2000만 달러(약 230억원)를 버는 동안, 월드컵 공인구를 만드는 동남아시아 노동자의 월급은 채 200달러(약 23만원)가 안 된다.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는 남아공의 11개 공용어 중 하나인 줄루어로 ‘축하한다’는 뜻이다. 누가 무엇을 축하할 것인지, 자블라니는 답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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