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월드컵을 거부한다”
  • 정희준(동아대 교수·스포츠과학부)
  • 호수 140
  • 승인 2010.06.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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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개최한 거대 스포츠 이벤트로는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이벤트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88올림픽은 국민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손님 접대’에 내몰린 총동원 체제였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국가와 독재자가 있었다. 그러나 2002 월드컵은 ‘국민의 정부’ 아래서 온 국민이 뛰쳐나가 신명나게 놀아젖힌 한바탕 난장 같은 축제였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FIFA 부회장으로 있는 재벌 총수가 있었다. 노무현이 말했던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이는 스포츠에도 통렬하게 적용되는 대명제인 것이다.

‘2002 월드컵’ 맛을 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정작 2002 월드컵의 참맛을 본 이들은 따로 있다. 우선 정몽준이라는 정치인과 붉은악마라는 축구 국가주의자들, 그리고 윤도현이라는 가수가 대박을 쳤다. 그런데 가장 큼직한 ‘건더기’를 챙긴 쪽은 현대자동차·SKT 같은 재벌이었고, 그래서 기업들은 월드컵을 돈으로 보기 시작했다. 2006년 월드컵 마케팅에 나섰던 기업군을 보면 이동통신, 전자, 금융, 제과·음료, 의류, 주유소, 신용카드, 화장품, 제화 등 사실상 모든 산업 분야였고, 헤어드라이어 제조업체와 오가피 회사 같은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양돈협회와 우체국까지 여기에 뛰어들었다. 한마디로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다.

   
ⓒ시사IN 자료
국가와 재벌은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마디로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기업이야 원래 돈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니 그렇다 치겠지만, 한국의 월드컵 광풍에 편승해 정신 나간 짓을 해댄 또 다른 집단은 바로 지상파 방송 3사였다. 2006년 월드컵 한국의 첫 경기였던 토고전이 있던 날 SBS는 하루 24시간 중 21시간, MBC는 18시간30분, KBS 1TV는 14시간30분을 월드컵으로 싹쓸이 편성했다. 또 〈9시 뉴스〉는 ‘축구 뉴스’로, 〈뉴스데스크〉는 ‘축구 데스크’로 변신했을 뿐 아니라, 같은 경기를 3사가 동시에 중계하는 초유의 몰지각한 행태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방송을 월드컵으로 ‘도배’를 한 셈인데 벽면과 천장뿐 아니라 방바닥과 문, 거기에 유리창까지 도배해버린 것이다.

올림픽처럼 월드컵도 사회의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을 구석으로 밀어버린다. 2002년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병원노조 파업, 월드컵 때문에 철거당한 노점상과 철거민의 시위, 역대 최저 투표율의 지방선거, 서해교전, 미군기지 고압선에 감전된 전동록씨 사망, 그리고 온 국민이 무시했던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 등이 월드컵 광풍에 날아가버렸다.

왜, 응원조차 재벌 없이 못하나?

2006 월드컵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니, 지은 죄가 크다. 5월부터 시작된 한·미 FTA 협상이 무풍가도를 달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게 바로 월드컵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새해 첫날 아침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등장한 진행자가 “월드컵의 해가 밝았습니다”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국민에게는 월드컵 16강 진출이 중요했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이른바 ‘4대 선결 조건’을 미국에 거저 갖다 바친 굴욕 협상의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월드컵은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말뚝 박는 데 확실히 기여한 것이다.

2010년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4년 전 붉은악마를 앞세웠던 KTF는 이번에는 황선홍을 내세워 광고전에 나섰다. “상철아, 애들 모아라” 하는 조폭스러운 명령에 황선홍 밴드가 결성되어 열심히 국민을 호객하고 있다. 역시 4년 전 윤도현을 선봉에 세웠던 SKT는 이번에는 싸이와 김장훈을 불쏘시개 삼아 4년 전의 추억을 들쑤시며 우리를 거리로 내몰려 한다. 서울시는 월드컵 거리응원 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SKT에 넘겨주려다 시민단체와 현대자동차·KTF 등이 반대하자 원하는 기업 모두에게 개방하겠다고 한다.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대기업 자본을 확실히 끌어들인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응원조차 재벌 없이는 못하는가.

   
ⓒAP Photo
한 통신사는 2002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을 내세워 열심히 ‘호객’하고 있다.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마디로 ‘안간힘’을 다하는 재벌들. 공적 공간인 서울광장마저 재벌에 넘기겠다는 서울시. 서울광장에서 응원에 나서는 시민은 결국 재벌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이 재벌인데 이들 재벌은 거리응원까지, 그리고 응원에 나선 국민까지 가져가겠다는 것 아닌가.

월드컵을 코앞에 둔 5월, 이렇게 사방이 어수선한데 지상파 3사는 월드컵 중계를 놓고 한쪽은 ‘혼자 먹겠다’고, 다른 쪽은 ‘나눠 먹자’고 싸움질이다. 그래서 결국 KBS는 SBS를 고소했단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월드컵이란 전쟁(錢爭)의 공간이요, 재벌들의 공간이며, 또 싸움질의 공간이다.
나는 이런 지저분한 월드컵을 거부한다. 재벌 냄새 가득한 거리응원을 보이콧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이브 미쇼는 상업주의로 타락한 현대미술을 개탄하면서 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절명케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월드컵,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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