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남아공일까
  • 문정우 대기자
  • 호수 140
  • 승인 2010.07.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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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팬들의 피가 서서히 뜨거워져간다. 세계 축구의 제전인 남아공 월드컵이 열릴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축구 실력은 이미 월드컵을 개최하고도 넘친다. 그렇더라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점이 있다. 왜 하필이면 개최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일까? 

2010년 월드컵 개최지가 남아공으로 결정된 것은 정치와 돈에 한없이 약한 듯 보이는 축구가 아직도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 미주리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척 코어와 희곡 작가인 마빈 클로스가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More than just a game)〉(생각의 나무, 2009)은 축구가 가진 힘에 의지해 혹독한 수형생활을 이겨내고 조국의 민주화를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변방 중의 변방’ 취급을 받은 남아공에서 어째서 이번 월드컵이 열리게 됐는지 잘 설명한다.

   
미국의 역사학 교수 척 코어와 희곡 작가 마빈 클로스는 로벤섬 정치범들이 기록한 수십년간의 자료를 뒤져 이 책을 썼다.

넬슨 만델라는 로벤섬에 도착하기 전까지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수감자들에게 축구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면서 그는 스포츠에 사람들을 통합하는 힘이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그는 축구에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아프리카너(남아프리카 태생의 백인을 가리킨다. 특히 네덜란드계가 많다)가 그들의 인종차별 정책으로 말미암아 국제 축구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뼈아프게 생각한다는 점을 정치투쟁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만델라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흑인이 백인 스포츠라고 해서 지독하게 싫어했던 럭비를 거꾸로 좋아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흑백 화합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는 백인인 럭비 국가대표팀 주장을 불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어달라고 주문한다. 세계 최고 수준과는 한참 차이가 있었던 남아공 럭비 국가대표팀은 그로부터 2년 만에 월드컵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루어낸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빅터스〉가 바로 이 얘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60년대 초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정권은 로벤섬에 정치범 수천 명을 가두었다. 정치범들은 이곳에서 영양가라고는 없는 옥수수죽을 먹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노예처럼 일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독방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들에게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내용은 로벤섬을 투쟁의 대학으로 변모시키자는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저녁마다 감방 전체가 많은 종류의 교육과 여가 활동으로 활기에 넘쳤다.

반목했던 운동권 세력이 축구 통해 단합

 
어느 날인가부터 수감자들은 셔츠를 뭉쳐서 만든 임시 축구공으로 경기를 했는데 ‘대박’이었다. 간수가 제지하러 오면 원상태로 풀어놓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로벤섬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은 72시간 이상 감방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할 수 있도록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교도 당국에 야외에서 축구를 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축구 투쟁을 통해 우리나라의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처럼 갇혀서도 반목했던 운동권 세력이 단합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1967년 12월 초 3년간의 끈질긴 요구 끝에 마침내 매주 토요일 30분 동안 축구하는 것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수감자들은 단순히 축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구협회를 만들어 세계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운영했다. 체계적인 축구 리그를 운영할 수 있다면 미래에는 국가도 올바르게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교도 당국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카나 축구협회(MFA)가 결성되었다. 마카나는 1819년 식민주의 세력에 맞서 영국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가 로벤섬에 갇혔던 코사족 지도자 이름이다.

   
ⓒReuter=Newsis
2004년 5월15일 2010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이 FIFA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MFA의 체계는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이상에 기초를 두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완전히 뒤집은 본보기였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의 말을 빌리면 MFA는 그 뒤 20여 년간 이 악명 높은 섬 위에 존엄과 민주주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축구를 이용했으며 FIFA의 규정·원칙·정관을 따랐다. 그리고 그 공로로 MFA는 국가나 개인이 아니면서도 최초로 FIFA 회원이 됐으며 남아공은 월드컵 개최를 따냈다.
놀랍게도 MFA의 주요 관계자들은 나중에 자유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들보가 됐다. 현 대통령 제이콥 주마는 레인저스 FC의 주장이었다. 국토부 장관 겸 월드컵 조직위원인 토쿄 섹스월레는 로벤섬 리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미드필더였다. 헌법재판소 부소장인 딕강 모세네케는 MFA 초대 회장이었다. 남아공 국제아동센터 센터장인 마커스 솔로몬은 MFA 심판위원이었으며, 국제의료정보학협회 부회장인 세딕 아이잭스는 MFA의 응급치료위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의 저자들은 책 말미에서 이 정도라면 스포츠 이야기라도 세상에 잘 알려져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던데,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나라 진보 진영에도 권하고 싶은 얘기가 떠오른다. 정치를 하기 전에 먼저 축구 리그를 운영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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