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시내 동부 외곽에 있는 퀸즈로드 104번지는 모슬렘 거주 지역이다. 거리 한쪽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있고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지나가는 광경이 우리가 흔히 본 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파키스탄인들이 자주 가는 미용실 바로 옆집에 런던발 항공기 폭파 음모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와히드 자만 가족이 산다. 와히드는 파키스탄계 이민 2세로 의대를 다니는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항공기 폭파 음모 용의자라는 사실은 영국 국민에게 큰 충격이었다. 와히드의 친구인 아민은 “그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는 성실하고 조용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이었다. 그와 테러를 전혀 연관 지을 수 없다.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2005년 7월7일 56명의 생명을 앗아간 ‘런던 7·7 테러’ 범인 중 최소한 4명이 파키스탄계 영국인이었다. 그 가운데 3명은 영국 웨스트요크셔 주 리즈 시 출신으로 리즈 시는 인구의 15%가 이슬람계이다. 그런 지역에서는 상가 2층을 임차해 이슬람 기도회나 임시 모스크를 만들기도 한다. 그동안 이슬람 출신 이민자들을 적극 포용해온 영국은 이제 이민자나 이민 2세들이 새로운 위험 요소로 등장하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 주 포트후드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계 니달 하산 육군 소령이 신병훈련소에 모인 미군에게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콜로라도 주 덴버 공항 셔틀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나지불라가 뉴욕 시내 지하철 자살폭탄 테러를 모의하다 붙잡혔다.

ⓒReuter=Newsis2005년 7월7일 56명이 사망한 런던 폭탄 테러(위) 범인 중 4명이 파키스탄계 영국인이었다.
‘테러 유학생’으로 넘쳐나는 파키스탄

뉴욕 타임스퀘어 폭탄 테러 미수 용의자 파이잘 샤자드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성공한 파키스탄계 이민자였다. 1998년 학생 비자로 미국에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이수한 후 유명 화장품 회사 엘리자베스 아덴의 품질관리 분석가와 마케팅 업체 오피니언의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한 전문직 종사자이자 미국 시민권자였다. 지난 3월에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데이비드 헤드리가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 공격을 모의하고 지원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지난해 12월에도 파키스탄계 미국인 2명을 포함해 버지니아 주 출신의 미국 청년 5명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파키스탄에서 체포됐다.

앞서 예를 든 와히드는 이슬람 이민 2세로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 국적자이며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축구와 팝에 열광하는, 영국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젊은이이다. 뉴욕 테러 용의자 샤자드도 평범한 직장인이며 가장이다. 이런 평범한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어떤 경로로 테러리스트로 변신하는 것일까?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파키스탄계나 이슬람 국가의 이민 2세들로 의대생이나 엔지니어 같은 촉망받는 엘리트이고, 테러 실행 전에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런던 7·7 테러 실행범인 시디크 칸과 세자드 탄위르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파키스탄 이슬람 종교학교(마드라사)를 다녔다. 또 항공기 폭파 음모 용의자 와히드도 파키스탄에 있는 마드라사에서 공부했다. 뉴욕 타임스퀘어 폭탄 테러 기도 용의자 샤자드는 제 발로 파키스탄 와지리스탄의 테러 기지를 찾아가 폭발물 제조 훈련을 받았다.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 테러를 도운 혐의로 지난해 10월 기소된 데이비드 헤들리는 파키스탄 출신 미국인으로 북와지리스탄에 두 차례 찾아가 알 카에다 조직과 접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최근 테러를 저지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파키스탄을 찾은 외국인 전사와 가족이 북와지리스탄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필자가 2008년 국경 지대에서 만난 무장 전사들 중 현지 언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파키스탄 우르두어나 파슈툰어가 아닌 아랍어 통역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전사도 있어서 통역이 필요 없는 때도 있었다.

미국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자생적 테러범’ 나지볼라 자지·파이잘 샤자드·니달 하산(왼쪽부터).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납치되었다가 7개월 만에 탈출한 뉴욕 타임스 기자는 “우즈베키스탄·아랍·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민병대 등으로 이 지역이 넘쳐난다”라고 증언했다. 파키스탄 현지 ‘AAJ TV’의 인티사르 울 하크 기자는 “파키스탄이 이른바 ‘테러 유학’을 온 서양 사회 이민 2세로 테러 메카가 되고 있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한다. 이들은 파키스탄 테러 캠프에서 폭약 제조 기술 등을 포함한 단기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잠재적 아마추어 테러리스트로 사회에 섞여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겉으로야 서양 사회에서 멀쩡하게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들이 자생적 테러범으로 가는 과정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이민 2세들이 느끼는 차별과 사회에서의 소외감을 들 수 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서양인들이 이슬람을 보는 시각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이것은 그들을 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킨다. 또 다른 이유는 높은 실업률이다. 실제로 영국 내 모슬렘 청년의 실업률은 25%에 이른다. 같은 또래의 영국 젊은이 실업률이 2.8%인 데 비하면 매우 높다. 기왕이면 모슬렘 청년보다는 영국 젊은이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러니 인터넷이나 모스크에서 급진적 이슬람 사상을 접하면 자신들이 차별당하는 근본 원인이 서양 사회의 모순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책에 적개심을 가진 이들은 더욱 빠르게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모슬렘 20% “자폭 테러범 심경에 공감”

런던 7·7 테러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모슬렘 160만명 가운데 20%는 자폭 공격을 가하는 범인들의 심경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필자가 2006년 런던에서 만났던 런던 대학 의대생 페리드는 팔레스타인계 영국인이었다. 그는 “인터넷과 뉴스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느껴온 소외가 왜 시작되었는지 의문이 확 풀렸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영국 런던 7·7 테러나 미국 타임스퀘어 폭탄 테러 기도 등 자생적 테러가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자국민에 의한 테러나 독자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공격이 증가하면서 지난 3월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알 카에다만큼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흑인 대통령 당선 이후 생겨난 긴장감과 경기 침체가 자생적 테러리즘이 늘어난 원인이며, 인터넷도 이 같은 현상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한국도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그들의 자녀가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들은 뿌리 깊은 유교 문화가 자리한 한국에서 차별당한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최근 탈레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파키스탄 이슬람 성직자 사건이나 밀입국해 한국에서 검거된 간부급 탈레반 사건은 한국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미 사회와 마찬가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한국 사회의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이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성장하는 것을 방지하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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