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나오기 시작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당초 계획보다 늦추어졌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방중이 이루어져 국내외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동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6자회담 복귀 측면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주목되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북한과의 연관성이 공공연히 제기되는 상황 또한 김정일 방중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우선 논의에 대한 미국의 긍정적 반응이 북·미 추가 접촉을 통해 확인이 되면 중국 방문 기간에 6자회담 복귀를 공식 선언하고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5월3~7일 4박5일의 중국 방문 결과를 보면 이러한 그간의 추정과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천안함 사건으로 생긴 듯하다.

6자회담, 천안함 사건으로 모멘텀 잃었나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이 “오래전부터 준비된 비공식 방문인 만큼 천안함 사건과는 서로 관련이 없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중·조(북한) 협조 강화가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더 잘 수호하고 촉진하는 데 유리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중 양측은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의 가능성에 대비해 북·중 관계를 더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상호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결과에서 보듯이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경제 분야에서부터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전략적 소통의 강화’로 급속히 확대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동북아 지역에서 ‘대국으로서의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굳혀 나갈 호기를 맞게 된 것이다. 중국은 우리 정부에 사전 귀띔 없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미 동맹 강화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동시에 북한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도 예상을 깨고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감행함으로써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를 내외에 과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동시에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그 자체를 통해 천안함 사건과의 연관성을 차단하고 이후에 예상되는 한반도 정세 변화에 중국의 협력을 미리 확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과거 ‘혈맹 관계’로의 복원이 빈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국면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6자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천안함 사건으로 모멘텀을 잃었다고 보아야 하나?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을 연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 천안함 사건 해결, 후 6자회담’을 천명했다. 그래서 천안함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6자회담 프로세스를 중단해달라고 미국 등 관련 국가에 요청한 상황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어느 것도 바뀐 게 없다”라고 전제한 뒤 “북한은 6자회담의 각 당사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과거보다 진전된 입장 표명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을 재확인하고 있지 않은 점은 그나마 진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6자회담 참가국은 성의를 갖고 협의 추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화답했다. 6자회담의 지속 추진에 북·중이 호흡을 맞춘 것이다. 그동안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미국이 중국과 협력을 해왔던 과정을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은 현 국면에서 6자회담의 재개 문제를 중국에 상당 부분 일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 후 베이징에서 5월24~25일 열릴 예정인 미·중 고위전략회의에서 향후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으로 남북 관계는 일대 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대북 레버리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북한은 중국에 장래를 위탁하고 있다. 상당 기간 남북 관계의 경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나마 진행되어왔던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를 가동해 전환의 계기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모든 문제를 근본으로 돌아가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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