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토론 좀 하고, 정리까지 한번 해봐라,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ZZZ….”

지난해 2월4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비공개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다. 참모들과 함께 진보·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뒤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린 그였다. 엄살로 던진 농담이었는데, 진짜가 되어버렸다. 노 전 대통령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남은 이들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퇴임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책을 쓰고 싶어했다. 진보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민주주의와 진보는 어떤 관계인지, 시민주권의 시대는 올지 따위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지고 함께 고민하고자 했다. 검찰의 수사 강도가 세진 이후에는  ‘민주주의 교과서’ 대신 ‘회고록’을 쓰려고 준비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시작한 일이었지만 역시 끝을 맺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열네 줄 짧은 글만 남기고 홀연히 세상을 떴다.
 

ⓒ노무현재단 제공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까지 책을 집필하려고 했다. 사진은 서재에 앉아 있는 노 전 대통령.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세상에 숱한 책을 남겼다. 2009년 5월23일 이후였다. 그의 농담처럼, 많은 ‘너거들’이 토론을 하고 정리까지 해서 책을 만들었다. 사후 1년간 ‘노무현 책’이 40여 권 나왔다. 그를 추억하는 추모집도 있고, 그가 던진 질문들을 곰곰이 연구한 학술서도 있고, 그의 인생을 재구성한 자서전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책을 구상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많은 책이 ‘인터넷 협업’ 방식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책들은 ‘노무현’이라는 저자 명을 달고 나온 것들이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기록물이 많았기에 출판이 가능했다. 미완의 회고록이 담긴 〈성공과 좌절〉(학고재)과 그의 진보주의 연구 기록들을 모은 〈진보의 미래〉(동녘)가 그 시작이었다. 두 책은 2009년 〈시사IN〉 선정 ‘올해의 책’에서 출판·편집자들이 가장 주목한 국내서 1·2위에 꼽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돌베개)가 출간되었다. 노무현재단에서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글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모으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것들을 일관된 문체로 재구성했다. 〈운명이다〉 안의 노 전 대통령 목소리에는 후회와 미안함이 많이 묻어 있다. 아내가 극구 말리는데도 기어코 정치에 입문한 일도, 변호사 개업 초기 몇 년을 제외하곤 집에 제대로 생활비를 주지 못한 것도, 말을 품위 있게 하지 못한 일도 모두 후회하고 미안해했다.

노무현을 ‘추억’하고 ‘계승’하는 책들

2009년 5월 이후, 많은 사람이 생전의 그처럼 후회와 미안함에 가슴을 쳤다. 서거 후 몇 달간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추모집이 쏟아져 나온 것도 그래서다. 특히 문인들의 참여가 많았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정희성 외, 화남출판사)와 〈당신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신경림 외, 트임), 〈탄생-바보 노무현 바보세상 바로보기〉(안도현 외, 작가마을)에서 작가 수백여 명이 시와 산문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홍세화 외, 책보세)과 〈노무현 부치지 못한 편지〉(박노해 외, 퍼플레인)에서는 정치·문화·시민사회·종교계 인사들이 추모 글을 하나씩 보탰다. 사진집도 있다. 노무현재단이 만든 공식 화보집 〈사람 사는 세상〉(학고재)과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사진가 박상문의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평민사)이 그것이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역사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만든 책들도 있다. 〈내 마음속 대통령〉(노무현재단, 한걸음더)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배경과 서거 후 7일간의 추모 현장을 ‘사실’을 토대로 기록한 책이다. 동호회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에서 자발적으로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전문작가 오정요·정형수씨가 대표 집필을 맡았다. 〈안녕, 나의 대통령〉(김향수 엮음, 흐르는강)도 ‘서거 이후’를 기록한 책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 근처의 돌담, 시청역 계단 벽, 인도 바닥, 공중전화 벽에 빼곡히 붙어 있던 시민들의 편지글이 책에 담겼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을 곱씹으면서 참여정부 5년을 되돌아보는 책도 많이 나왔다. 주로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이 그 일을 맡았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박정희의 나라 김대중의 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나남)에서 노무현의 시대를 ‘소프트웨어 혁명 시기’로 해석했고, 이백만 전 홍보수석은 〈불멸의 희망〉(21세기북스)에서 통계와 지표로 참여정부 5년의 성과를 논증했다. 행정관으로 일한 권오중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은 〈참여정부 인사 검증의 살아 있는 기록〉(리북)에서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을 소개하며 노 전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회고했다.

 

 

 

ⓒ시사IN 안희태노 전 대통령 사후 1년간 ‘노무현 책’이 40여 권 나왔다. 추모집과 사진집, 학술서와 자서전 등 분야도 다양하다.

 


서거 1주년을 맞은 5월을 전후해 출간한 노무현 관련 책은 크게 두 줄기로 모였다. ‘추억’과 ‘계승’이다. ‘추억’을 대표하는 책으로는 청정회(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정치인 모임)의 〈임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책공방 우공이산)와, 도종환 외 17인이 쓴 〈노무현이, 없다〉(학고재)가 있다. 특히 〈노무현이, 없다〉는 2001년부터 ‘노무현 마크맨’으로 뛰었던 연합뉴스 기자부터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건축가,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의 옷을 챙겨준 코디네이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밥상을 책임진 요리사, 훗날 영정사진으로 쓰인 초상화를 그려준 화가까지 노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추억담이 담겨 있다.

‘계승’의 뜻을 담은 책으로는 ‘노무현 시민학교:시민주권 강좌’에서 나온 내용들을 엮은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이해찬 외, 오마이북)와 〈진보의 미래〉 2탄 격으로 출간된 〈노무현이 꿈꾼 나라〉(이정우 외 38명, 동녘)가 대표적이다. 〈진보의 미래〉에서 노 전 대통령이 던진 질문들을,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서 학자들이 받아 답을 했다. 두 권을 한꺼번에 읽으면 생전 그가 완성하려던 책의 윤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녘출판사에서는 후속 작으로 노 전 대통령의 질문에 시민들이 답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외침〉을 올해 안에 내놓을 예정이다. 노무현이 없어도 노무현의 책은 ‘현재진행 중’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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