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밤 11시10분.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수신음이 울렸다. 보통 이런 밤중에 오는 문자는 부음처럼 뭔가 다급한 일을 알리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이런. ‘조전혁 의원의 조폭 판결에 대한 공동 대처는 어설픈 수구 좌파 판사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결연한 대응행위입니다.’ 보낸 이는 ‘정두언 의원실’이었다. 한때 정치부를 맡은 적이 있어 의원실에 내 휴대전화 번호가 남아 있었나보다.

한밤중에 받은 문자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떠올랐다. “형님 우리 애가 맞고 왔습니다. 한판 뜨시죠.”

‘조폭 판결’이라 부르르 떤 조전혁 의원(사진)은 법원이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 공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매일 3000만원씩 전교조에 지급하라’고 한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스’로 따르는 친이 의원들이 엄호에 나섰으니, ‘행동대장’ 정두언 의원이 한밤중에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낸 것도 당연한 행동강령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친이 의원 김효재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명단을 똑같이 공개하는 우정을 과시했다.


‘조폭’이라는 단어를 정치 사회적으로 쓴 저작권자는 정연주 전 KBS 사장. 그는 조폭처럼 보스(사주)와 자기네 영역, 이른바 ‘나와바리’를 지키기 위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언어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조·중·동’을 조폭 언론이라 불렀다. 누리꾼들은 법원의 판결을 두고 입법권 나와바리를 침해했다고 방방 뜨는 한나라당 의원들이야말로 조폭 의원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의원들도 조폭 행세를 하려면 돈 좀 있어야 한다. 전교조뿐 아니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조전혁 의원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계획이다. 당장 조 의원은 법원 결정문을 송달받는 순간부터 매일 전교조에 3000만원씩 빚을 진 신세가 된다. 여기에 교총까지 가세했으니 잘못하면 하루 6000만원 빚쟁이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조폭스럽기’는 공영방송 사장도 엇비슷하다고 누리꾼들은 꼬집었다. ‘큰집 가서 조인트 까였다’라는 수모를 당한 김재철 MBC 사장. 조인트 발언 당사자인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고소하지 않고 파업 중인 이근행 노조위원장 등 직원 1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형사 고소했다. ‘형님’한테 뺨 맞고 ‘동생’들에게 눈 흘긴 격이다. 

조폭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양아치’인데, 충남 당진 민종기 군수는 마지막까지 조폭이 보기에도 민망한 엽기 행보를 했다. 민 군수는 시속 200km로 곡예운전을 하며 도망가다 붙잡혔다. 누리꾼들은 ‘1도 2부 3빽’(우선 도망가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힘 있는 배경을 내세우라)의 ‘달인’으로 민 군수를 치켜세웠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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