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전 의원은 2010km를 넘게 걸었다. 지난해 7월부터다. 이 전 의원은 서울의 밑바닥을 훑었다. 걸으며 생각했고 그 생각이 핵심 공약으로 모아졌다. ‘이계안 2.1 연구소’도 걸으면서 떠오른 이름이다. 서울을 걸으면서 골목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들었다. 합계출산율 0.96명. 출산율을 2.1까지 끌어올리고 아이와 노인이 행복한 서울을 만들겠다는 이계안 전 의원. 그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그는 ‘진짜 경제 전문가’를 내세우며 출마했다. 그러나 당은 차가운 반응이다.

‘정책통’으로 유명한 그가 요즘 ‘파이터’로 변신했다. 친정인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가감이 없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도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경선을 거치지 않고 한명숙 전 총리를 추대하려다, 이 후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민주당은 경선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후보가 경선 방식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100% 여론조사 방식을 채택했고, 이 후보는 텔레비전을 토론도 없는 여론조사 방식은 흥행 참패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후보는 26일 “말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사IN 조남진서울시장 후보에 나선 이계안 전 의원
민주당 경선 방식을 두고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당이 처음에는 경선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한다고 했다가 다시 후보자간 합의사항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한 전 총리에게 합의하자니깐 답을 안 하고 당에서 정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당과 한 전 총리 측이 서로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줄이고 있다. 지금 시점에 토론도 없이 100% 여론조사라를 하면 불공정하다. 한 전 총리는 터무니없는 사건(5만 달러 뇌물 수수 의혹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울시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정책을 외워서 말하는 건지 체화한건지 아무 것도 검증된 바가 없다. 그래서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유권자의 알 권리에 봉사하자는 거다.

또 토론을 하면 한 전 총리가 생채기가 난다고 하는데, 토론을 피하는 것 때문에 이미 생채기가 나고 있다. 경선을 없어도 되는 과정처럼 말하는데 경선을 통해야 본선 경쟁력도 높아진다. 걸작은 오늘부터 내가 걸작을 그리겠다라고 해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습작을 하다보면 걸작이 나오는 거다. 국가대표팀이 시합을 앞두고 평가전을 하는 건 뭐가 부족한지 확인하는 거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워낙 치열하게 싸우다보니, 정작 본선 가서 정동영 후보가 BBK니 도곡동 땅 의혹이니 다 꺼내도 유권자들 지겨워했다. 한 전 총리가 이계안이 토론 나와서 무슨 이야기할지 걱정한다던데, 정책 이야기를 하지 않겠나. 지금까지 낸 ‘메니페스토2.1’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데, 토론을 거치다 보면 내 정책이 한 전 총리의 공약이 되고 당의 공약이 되어 서울시민에게 내 보일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그걸 안하나. 한나라당 경선은 이미 흥행하고 있다.

혹시 지도부가 TV 토론없이 여론조사 100% 방식으로 간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김성순 의원은 경선방식에 불복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답할 때는 아니다. 그러나 굳이 답을 하다면 서울시를 돌아보며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었는데 무대 위에도 못 올라가게 한다는 건데, 스스로 무대 위에 올라가겠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찾겠다. 직접 시민들에게 가서 지금 민주당이 하는 게 맞는 건지 내가 맞는 건지를 물어보겠다.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무소속으로도 출마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나?
그걸 무소속으로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한 사람이 무대 위에 올라서지도 못하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게 옳은 건지 따져보겠다. 토론을 끝까지 거부하면, 당 지도부와 한명숙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겠다. 토론을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이 무소속 출마 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당과 민주개혁세력의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 지도부가 끝까지 경선방식을 안 받아들일 줄 알았다. 여론이 조성되니깐 (지도부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희망을 가지고 (토론 실행에 대해) 들입다 말하면 또 상황이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지도부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소통의 문제를 제일 먼저 제기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하자는 주요 기조에는 소통의 문제가 저변에 깔려 있다. 불통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을 심판하자는 건데, 지금의 지도부의 모습도 그와 뭐가 다른가. 공정하지도 못하다. 한 전 총리 캠프 명단에 박주선 최고위원이나 장상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 이름이 올라가 있다. 경선 중에 지도부를 캠프 사람으로 데리고 있는 건 이계안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다. 그렇게 남을 배려하지 못하면서 (한 전 총리는) 따뜻한 사회나 복지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박주선, 장상 최고위원의 잘못도 있지만 한 전 총리도 그러면 안 된다.

한명숙 후보를 비롯해 한나라당 후보들까지 평가하면?
한 전 총리는 삶 자체가 하나의 규범이 될 정도로 사신 분이다. 터무니없는 재판으로 고생하신 걸 보면 애틋하다. 그러나 그것과 별도로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서는 정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스태프가 써 준 거 읽기 바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보편적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산 부분에 있어서 보편적 복지로 가기에 부족하다. 한나라당에서는 다른 분은 모르겠고, 오세훈 시장은 안목도 없고 돈을 마구잡이로 쓰는 사람이다. 광화문 광장을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로 만들어 놨다. 가든 파이브도 1조3천억 들여서 호화판으로 만들어놨지만 지금도 입주가 안 되어 용도변경하고 있다. 서울형 어린이 집도 55억 들였다고 하는데, 거기에 25억은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간판 만드는 데 썼다.

민주당 경선에 대해서 질문 하나를 했을 뿐인데 10분이 넘는 긴 답이 돌아왔다. 처음보다 빨라진 말투로 한 전 총리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요즘 말이 세다고 참모들이 뭐라고 한다”라고 운을 띄웠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자 ‘참모의 조언’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 만큼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화제를 바꿔 함께 2.1 연구소장을 맡아 함께 일하는,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박사에 대해 물었다. 우 박사는 4월19일 자신의 블로그에 ‘풍찬노숙 노회찬’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진보신당에 입당할 때가 된 거 같다. 풍찬노숙 노회찬에게, 당원 수 한 명이라도 늘려주는 정도의 도움은 주려고 한다”라며 이계안 후보를 언급했다.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경선없이 ‘추대’한다면 이계안의 선택이 몇 개 없다‘라며 진보신당으로 이 후보를 데리고 가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대한 이 후보자의 생각이 궁금했다.

ⓒ시사IN 안희태2006년 서울시장 경선 당시 이계안 후보
우석훈 박사와 같이 책을 냈고 일도 같이 한다고 들었다. 최근에 그가 쓴 ‘풍찬노숙 노회찬’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나?
글쎄요, 서럽게 구박을 하는 민주당에서 찬밥 먹지 말라는 뜻이었던 거 같은데(웃음). 즉답하기 어렵다. 우석훈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부터 전경련 사람까지 친분을 맺는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인데 민주당에서 이런 확장형 인간인 이계안에게 땅을 잘 안내준다는 정도로 이야기하자. 민주당은 호남, 운동권 출신을 선호하다보니 그 두 가지 사항에 다 들어 맞지 않은 내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때 화제를 모았다. 진보정치운동을 해 장기복역을 살았던 아버지와 ‘한신대 운동권의 대모’로 알려진 여동생 등의 가족사 때문에 ‘진보적 DNA’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랬다. 현대가의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성공한 CEO인 내가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 한나라당을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17대 의정 활동 당시 근로장려세제와 같이 진보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가족 이야기는 많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편하고 잘 나가는 곳에만 계속 있지 않았던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있다. 최근에도 여동생의 흔적을 발견하며 깨닫는 바가 많다. 서울 영등포 역 근처 노숙자 센터를 방문했는데 9년 전에 죽은 여동생 이름이 기부자 명단에 있더라. 그걸 보니 ‘내 동생만큼도 못 살구나’ 싶더라. 경제란 게 차가운건데 여기에 따뜻함을 더하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또 어린 시절 엄청 가난했다. 가난 때문에 서울 입성도 재수를 했다. 경기도 평택에 초등학생 때까지 살다가,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2학년 2학기가 되니 입학식 때 샀던 동복이 안 맞는거다. 그걸 티내고 싶지 않아 그대로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삼촌 덕에 다시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래도 그땐 꿈이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서울은 그렇지 못하다. 역동성을 살리고 싶다.

그 점이 서울 시장에 ‘꽂힌’ 이유인가? 2006년에도 쉽지 않은 경선을 출마했고, 이번에도 밭이 좋지 않은데. 
맞다. 과거에는 나 같이 가난한 사람도 노력만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곳이 서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역동성을 되살리고 도시를 되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 남들은 서울시장 자리를 대선주자로 가는 징검다리로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비판적이다. 그래서 핵심 구호도 ‘삽질 8년을 삶의 질 8년으로’라고 정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재선 이야기하기가 그렇지만, 한 번 하면 연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다. 정치를 선거 때만 반짝하고 할 생각도 없다. 대안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2.1연구소’를 만들었다. 가능한 한 정치를 깊이 있게 오래하려고 한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나고 이 후보자는 서울 중구에서 열리는 주민 정책 간담회를 가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이 후보자 사무실 한 켠에는 주황색 서울시 전도가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지도에는 주황색 줄이 여러개 그러져 있었는데 그가 걸어다닌 길을 표시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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