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장에서는 별로 재미없겠는데요~.”

여론조사 전문가의 일성을 듣고 힘이 쭉 빠졌다. 그의 말마따나 기사를 쓰는 처지에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박빙일수록 흥미진진해진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는 여야 유력 후보 간의 지지도 차이가 20% 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다. 여권에서는 한껏 긴장하고 야당에서는 한껏 기대했던 ‘한명숙 무죄’ 변수도 판세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오세훈, 민주당 한명숙, 민주노동당 이상규, 진보신당 노회찬 네 후보가 맞붙는 가상 대결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49.5%로, 30.8%를 얻은 한명숙 전 총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5.9%, 민노당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이 0.8%를 얻어 야권 후보의 표를 다 합해도 1위에 12% 포인트나 뒤진다.

 

ⓒ시사IN 안희태21일 출마를 선언한 한명숙 전 총리

오 시장은 연령·직업·학력 구별 없이 모든 계층에서 한 전 총리를 앞섰고, 서울의 서북·동북·서남·동남권 등 전 지역에서 우위를 나타냈다. 일반적으로 야당 지지세가 강하다고 알려진 20~30대와 서울의 서북권에서는 한 전 총리와의 차이가 오차 범위 안이었고, 나머지 계층과 권역에서는 오차 범위를 벗어났다.

 

이 가상 대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지지층의 선택이다. 민노당 지지층은 오세훈 16.6%, 한명숙 38.3%, 이상규 14.5%, 노회찬 26%로 지지 후보가 갈렸고, 진보신당 지지층은 오세훈 21.8%, 한명숙 42%, 이상규 0%, 노회찬 36.3%로 나뉘었다. 민노당 지지층은 민노당 후보보다 민주당과 진보신당, 심지어 한나라당 후보를 더 지지했고, 진보신당 지지층은 진보신당 후보보다 민주당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진보신당 지지층이 민노당 후보는 단 한 명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한나라당 후보는 20% 넘게 지지했다는 결과도 흥미롭다. 여론조사에서부터 ‘될 사람’ 쪽으로 표 쏠림 현상이 있다는 건 실제 투표장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21%에 이르는 무당파에서는 오세훈 36.4%, 한명숙 25%, 이상규 0%, 노회찬 2.6%로, 전체 지지도에서보다 1, 2위 간 격차가 줄었다.

오세훈, “교육·복지 캠페인으로 우세 이어갈 것”

오세훈 시장 측은 이런 압도적 우세를 ‘현직 프리미엄’으로 분석한다. 캠프 대변인을 맡은 이종현 전 서울시장 공보특보는 “만약 오 시장이 현직이 아니라 새내기였다면 천안함 침몰이나 한명숙 무죄 같은 외생적 변수에 지지율이 크게 출렁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할수록 안정된 지도자를 찾고자 하는 유권자의 심리, 또 지방정부는 내 생활과 더 밀접하기 때문에 정치적 변수와는 별개로 생각하려는 유권자의 판단이 작동하면서 오히려 현직인 오 시장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 캠프가 자체 조사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오세훈 55.6% 대 한명숙 40.0%(양자 대결의 경우), 오세훈 54.4% 대 한명숙 33.2% 대 노회찬 9%(다자 대결의 경우)의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시사IN〉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 시장 측은 이런 추세가 경선 돌파를 거쳐 본선 투표로까지 이어지리라고 기대한다. 이종현 캠프 대변인은 “당내 경쟁자들이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디자인 서울의 경우 관련 예산이 서울시 전체 예산의 0.7%(21조원 중 10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대신 오 시장이 지난 4년간 가장 잘했다고 평가를 듣는 건 쉬프트(장기전세주택)와 서울형 어린이집 같은 보육·주거 관련 정책이다. 서울시장 출정식 때 오 시장이 복지와 교육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한 것도 서울시민의 욕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 캠페인에 집중할 경우 현재의 지지도 흐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추격자인 한명숙 전 총리 측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일단 현재의 여론조사가 실제 바닥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본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지난 몇 차례의 재·보선을 예로 들었다. “수원 장안의 이찬열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24% 포인트 지고 시작했지만 결과는 7% 포인트 승리였다. 경남 양산은 민주당 후보가 30% 포인트 지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3% 포인트 패배였고, 인천 부평의 홍영표 의원도 여론조사에서는 10% 포인트 졌지만, 투표에서는 10% 포인트 이겨 당선됐다. 순전히 선거 캠페인만으로 20~30%씩이나 좌우될까? 그보다는 여론조사에서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야당 표가 최소한 10~15% 정도 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 표가 한 전 총리 무죄 선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잠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잠복한 것이다. 우리가 여당이었을 때도 7% 포인트 이상 앞서지 않으면 나중에 지는 걸로 나왔는데, 지금은 더 벌어져 있다. 지금 20% 포인트 정도 뒤지는 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우 대변인은 1995년의 조순 서울시장 승리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전범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포청천’이라는 깨끗한 이미지를 앞세워 여론조사에서 17% 포인트 지던 선거를 막판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한명숙, “판 뒤집을 변수 많다”

야권은 한 전 총리가 도약할 수 있는 세 가지 변수를 꼽았다. 첫 번째는 4월21일깨로 예정된 공식 출마 선언과 본격적인 캠페인의 시작이다. 오세훈 시장이 정책 선거를 표방하고 나선만큼 한 전 총리와 맞붙으면 장관·총리를 지낸 경륜과 무게감으로 금세 비교 우위가 드러나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야권 연대다. 한 전 총리 측의 한 인사는 “진보 정당의 후보들이 텔레비전 토론까지 다 끝나고 막판에는 연대에 동참할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그렇지 않으면 야권 패배의 책임을 진보 진영이 떠안게 될 것이고, 연대가 이뤄지면 상당한 시너지가 발생하리라는 예상이다.

세 번째는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다. 야권은 대체로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불리라고 내다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보복’ ‘정치검찰’에 대해 ‘투표로 심판하겠다’던 1년 전의 다짐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 것으로 예상한다. 야권이 특히 20~30대 지지층의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조사에서는 MB 정부의 검찰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게 수치로 확인됐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무리한 수사’라는 응답이 46.9%, ‘비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정당한 수사’라는 응답이 35.4%였다. 한나라당과 오세훈 후보 지지세가 강한 40대와 강남에서조차 ‘무리한 수사’라는 평가가 더 많았다.

 

한 전 총리 무죄판결 후 “그래도 수사과정에서 한 전 총리의 도덕적 흠결이 드러났다”라며 공세를 폈던 여권의 주장에는 35.3%만이 공감했다. 그보다는 야권의 ‘검찰 심판론’에 공감하는 사람이 43.8%로 더 많았다. 이 수치로만 보면 검찰에서 한 전 총리를 건들면 건들수록 오히려 한 전 총리에게는 유리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모든 서울시장 경선 후보가 검찰의 별건 수사에 대해 ‘자제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둘 중에 한 명(47.2%)은 이번 ‘한명숙 무죄판결’이 서울시장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대답해 한 전 총리 무죄판결이 야권은 물론 보수층의 결집도 이끌어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거판의 변수는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고 해서 꼭 다른 쪽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변칙성’이 또다시 확인된 셈이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경원·원희룡 후보를 대입한 가상 대결에서는 한 전 총리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거나 오히려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여긴 탓인지 한명숙 대신 노회찬 후보를 찍겠다는 ‘소신파’도 늘었다.

이번 〈시사IN〉 조사는 결국 6·2 서울시장 선거가 오세훈 대 한명숙 정면대결로 흘러갈 공산이 커졌음을 방증한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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