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7일, 김헌동 단장(경실련 아파트거품빼기운동본부장 및 국책사업감시단장)을 만나러 서울 혜화동에 있는 경실련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마침 그의 방으로 서류 상자가 무더기로 도착됐다. 서울시를 상대로 2년여간 벌인 정보공개 청구소송 끝에 따낸 성과물이었다. 서울시산하 SH공사가 발주한 장지·발산·상암 지구 22개 단지 아파트 분양원가의 세부 내역서들이었다. 그동안 서울시는 부분적으로 원가 공개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하도급’ 단계(51개 공사 항목)까지 공개한 것은 처음. 아파트 분양가의 ‘실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김헌동 단장은 “앞으로 2, 3주에 걸쳐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그동안 공개된 ‘도급’ 단계의 분양원가도 10∼20% 부풀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경실련이 자체 조사(미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 민간택지 중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사례는 단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장동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만리동 ‘서울역리가’(LIG건설), 상봉동 ‘프레미어스 엠코’(현대엠코)가 그곳이다. 김헌동 단장은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그마저도 폐지될 상황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김헌동 본부장
맞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가 여론의 무관심을 틈타 은근슬쩍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와 여당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2007년 4월이 되어서야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살 때 원가가 얼마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주택공사(현재 LH공사)는 전국 88개 단지의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철석같이 약속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 상암7단지 아파트의 원가를 공개해 SH공사가 분양원가 대비 40% 정도의 폭리를 취한 사실을 공개해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데다, 대선 공약으로도 분양원가 공개를 내세웠던 터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발 더 후퇴해 국회에선 폐지 법안이 계류되어 있고, 이미 경제자유구역과 관광특구에 한해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지난달에 처리되었다.

김헌동 단장은 기가 찼다. 2004년 출범한 경실련 아파트거품빼기운동본부의 책임자로서 지난 6년의 운동 성과를 고스란히 원점으로 되돌릴 판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2년이 그에게는 공백기였다. “지쳤었다”라고 한다. 새벽 2시 이전에는 잠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건설회사에서 20년 동안 일하면서 익힌 현장의 ‘동물적 감각’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경실련에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빼기 운동에 헌신해왔다. 또한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를 펴내 건설사·관료·정치인·언론·전문가로 이어지는 ‘개발 오적’을 지목했으며,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토건 대통령을 뽑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를 출간했지만 결과적으로 효과는 없었다. 그 뒤 ‘백수’로 지내며 “이명박 정부를 지켜봤다”라고 한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는 격앙되었다. ‘민주정부 10년’의 부동산 실기(失機)를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분에 못 이겨 책상에 있던 책을 바닥에 메다 꽂기도 했다. “노무현이 아파트를 투기도박 상품으로 만들었다” “민주 정부가 더한 토건 정부였다”라는 등의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합리적 시장주의자, 급진적 주거복지론자”(〈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우리보다 더 과격하다”라(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는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성격에도 통하는 듯싶었다.


폐지 위기 처한 ‘분양원가 공개’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그의 진단 역시 도발적이었다. 높은 분양가 등의 이유로 수도권 민간 분양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버블 붕괴설’까지 나오는 상황에 대해 김 단장은 “이명박의 보금자리주택 효과”라고 단언했다. “이명박이 규제 다 풀어주고 부동산 폭등시켜놨지만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지 보금자리 정책을 내놨다. 8·15 경축사에서 ‘집 없는 서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인 주택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뒤 실제로 수도권 곳곳에 ‘반값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금자리 주택은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이다. 강남의 평균 집값이 평당 3500만원인데 내곡·세곡동 보금자리 분양가가 1000만∼1200만원이다. 강남에도 이 정도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걸 이명박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북은 평당 2500만∼2000만원인데 800만∼900만원짜리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이런 걸 3년 동안 60만 채를 쏟아내겠다지 않나. ‘노무현의 판교’를 20개 더 짓겠다는 소리다. 보수 꼴통도 하는데 노무현은 왜 못했나. 파주 교하가 1500만원, 판교는 1600만원, 갯벌을 메운 송도를 1700만원에 분양했다. 노무현은 자기 지지자들은 가정불화에 시달리게 했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부자로 만들어줬다. 그 결과 ‘고소영·강부자’ 정권이 탄생한 것 아닌가.”

ⓒ뉴시스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의 사전예약에 접수창구마다 청약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요인을 물었다. 집값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에는 인구감소랄지, 공급과잉이랄지, 가계부채랄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 아닌가 라고 물었더니 그는 보금자리 외에는 다른 변수가 없다고 확신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부터 2009년 1월까지 부동산 가격이 30%가량 하락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갖가지 부양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친 결과, 2009년 2월부터 다시 반등해 원상회복되었다. 올 초 부동산 전문가들이 어떻게 전망했나 급격한 하락은 없고 물가상승률 이상은 오를 것이라 하지 않았나. 불과 두세 달 전 얘기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보금자리 외에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 이후 보금자리 주택 관련 소식이 부동산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위치 선정→분양가 발표→경쟁률 발표 식으로 거의 2주 간격으로 내 집 마련이 간절한 실수요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 결과 미분양은 쌓이고 거래는 끊겼으며 보금자리 주변 시세는 떨어지고 있다는 게 김 단장이 말하는 ‘보금자리 효과’였다. “이명박이 ‘두 달 간격으로 새집을 싸게 내놓을 테니 업자들의 말에 속지 말라’는 ‘사인’을 시장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인지 ‘보금자리 흔들기’도 감지된다. 보금자리가 주택 시장의 침체를 부채질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비판 보도가 속속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단장은 “잘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나. 무조건 비판하고 흔드는 건 반대 세력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재벌 건설사들은 이명박이 (대통령) 되고 부동산이 엄청 뛸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명박이 2009년 6월부터 재벌에게 투자를 촉구했다. 그런데 안 했다. 우리나라 건설 재벌들 외환위기 거치면서 250만 채 아파트를 1억씩 바가지 씌워 팔았다. 그렇게 벌어들인 250조원을 쌓아두고 있다. 아파트 사업은 노조도 필요없고, 공장도 필요가 없고, 돈 없어도 짓는다. 그런데 일자리 투자? 왜 하겠나.”

‘김헌동의 집값 잡기’는 간단하다. 원가를 소상히 공개하면 된다. 그럼,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아파트를 반의 반값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LH공사)와 서울시(SH공사)를 상대로 끈질기게 분양원가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끝으로 그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55점’쯤 된다며 몇 가지를 당부했다. “더 이상 토건족들에게 아파트 도박비를 대주지 마라. 대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시작하고, 10∼20년 전세로만 살 수 있는 장기 임대주택 확대하고, 보유세 올리고 금융 규제하면 85점 될 수 있다. 서민에게 한 달에 20만원씩 ‘주거급여’를 지원하는 주택 바우처 제도까지 하면 90점이다.” 20대 토건 말단으로 시작해 70대 토건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김헌동 단장의 ‘토건 종식’ 메시지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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