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0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켠 가수 타블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신작 앨범 〈에필로그〉가 애플 사의 온라인 콘텐츠 구매 사이트 아이튠스에서 힙합 부문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이튠스는 아이폰 아이팟터치 등 애플 사 제품을 쓰는 이용자 수천만명이 콘텐츠를 다운로드받는 곳으로 이곳의 음반 다운로드 순위는 흔히 ‘모바일 빌보드’에 비유된다. 

타블로에게 이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트위터(@blobyblo)에 “자는 동안 〈에필로그〉 앨범이 아이튠스 미국 힙합 앨범 차트 1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언젠가 아이튠스 메인을 내 음악으로 장식해야지’라고 꿈꿔왔는데 해냈습니다. 이 기분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제 음악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입니다”라고 올렸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 과정을 복기하면 이해할 수 있다. 전날 점심 무렵 타블로는 트위터에 “리트윗(전달) 부탁. 부끄러움 없이! 에픽하이 새로운 앨범 나왔습니다. 한 장씩 사주세요”라고 글을 올렸다. 이 과감한 도움 요청에 많은 트위터 이용자가 호응해서 그의 앨범 출시 소식을 알려주었다. 타블로의 트위터 팔로워(구독자)가 4만4000명이 넘기 때문에 소문은 금방 퍼졌다.

유튜브 라이브 콘서트 '뮤직데이'에서 공연 중인 에픽하이
기적을 부른 것은 타블로의 “우리 〈에필로그〉 앨범이 미국 아이튠스 힙합 차트 20위랍니다. 아이튠스가 연락해줬음. 와우 고마워요 여러분”이라는 글이었다. 그의 새 앨범이 아이튠스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20위에 랭크되었다는 사실이 전파되었고 그와 ‘사이버 친분’을 맺어온 누리꾼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밤새 리트윗(전달)과 다운로드가 진행되었고 그가 아침에 깰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에필로그〉가 아이튠스 힙합 부문 1위에 오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는 아직 아이튠스에 한국계정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다운로드받기가 불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타블로는 자고 일어나서 세계적 스타가 되었고 CNN 인터뷰를 하는 등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타블로는 이 과정을 신문 방송을 통한 홍보도 아니고, 큰돈을 들인 이벤트를 통해서도 아니고, 대형 기획사의 힘을 빌려서도 아니라 뉴미디어 활용으로 해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뉴미디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타블로의 ‘미디어 용병술’이다. 타블로가 활용한 뉴미디어는 SNS(Social Network Service) 혹은 소셜 미디어,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smart phone) 스트리밍(streaming 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 이 3S였다.

현행 음반 제작과 유통 관행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맵더소울닷컴(www.mapthesoul.com)’이라는 독립기획사를 차린 타블로는 두 번의 실패를 맛보았다. 그 뒤 트위터(SNS)와 아이튠스(애플 사 콘텐츠 허브)와 유튜브(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는 그가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개척한 ‘음악 실크로드’였다. 그는 유튜브라는 온라인 무료 음악 채널에 뮤직비디오를 올려 그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게 했고 트위터를 통해 이를 알렸으며 아이튠스를 통해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타블로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 영어가 익숙했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취한 전략이다. 소셜 미디어 전문가인 에델만코리아 이중대 이사는 “타블로의 맵더소울은 단순한 홈페이지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다. 블로그와 트위터, 플리커와 유튜브 같은 사진 및 동영상 사이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해놓았다”라고 평가했다.      

타블로의 성공을 본 연예기획사들은 아이튠스와 유튜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 것이다. 그동안 음악산업의 중심은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옮아갔다. 이 와중에 연예인과 기획사는 방송에, 포털사에, 이동통신사에 종속되었다. 그런데 아이튠스와 유튜브로 인해 이 종속구조가 깨지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간부는 “아이튠스를 통해 우리 음악산업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수익구조 때문이다. 음반 유통이 테이프나 CD였을 때는 대다수 수익을 가수와 제작사가 가져갔지만 모바일에서는 대부분 유통사인 이동통신사 서비스업체가 가져가는 구조다. 그는 “음반산업 전체는 성장했다. 관건은 그 수익을 누가 가져가냐는 것이다. 100만 장 정도 팔리면 100억가량 수입을 올렸다. 지금은 국민가요가 될 만큼 초대박이 나도 가져갈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 수익이 10억원 내외다”라고 말했다. 반면 아이튠스는 제작자의 몫(70%)을 충분히 보장한다. 

수익구조 외에도 기획사들이 아이튠스에 환호하는 이유는 더 있다. 가격 정책과 공정경쟁이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임의로 정한 음원 가격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국내 서비스와 달리 아이튠스에서는 제작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서비스에서는 사업자가 추천곡으로 걸어주느냐 안 걸어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기 위해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튠스에서는 오직 콘텐츠만으로 승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보다도 더 큰 매력이 있다. 바로 아이튠스를 통해 간단하게 ‘음원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방송이나 한국의 포털이나 한국의 이동통신사가 절대로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 한국 공식 계정이 없는 상황이어서 주로 해외 유저들이 다운로드받고 있는데 아이튠스를 통해 쉽게 국경을 넘은 것이다.

유튜브 역시 같은 이유로 뮤지션과 기획사들로부터 주목되고 있다. 3월21일 멜론악스홀에서 유튜브가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라이브 콘서트 〈유튜브 뮤직데이〉가 열렸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탑재폰을 이용해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이 공연은 지난해 10월 록 밴드 U2의 로스앤젤레스 공연 실황을 중계한 것과 지난해 12월 팝 가수 알리샤 키스의 뉴욕 공연을 생중계한 것을 연상시켰다. 일본과 타이완에서 동시에 생중계된 이 공연에는 타블로가 리더인 에픽하이를 비롯해 2AM, 클래지콰이, 국카스텐 등이 참석했다.

해외시장 진출에 유리하다는 것 말고 뮤지션과 기획사가 유튜브를 선호하는 데는 기술력도 한몫 한다. 유튜브는 ‘오디오핑거프린트’ 기술과 ‘비디오핑거프린트’ 기술, 즉 음원과 영상의 지문을 인식하는 기술로 원저작자가 아닌 사람이 올린 해적 음원 및 해적 동영상을 쉽게 잡아낸다. 이때 원저작자는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광고를 거는 것이다.

해적판이 돌 때 관련 동영상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유행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밴드 OK Go는 복제 뮤직비디오를 소속사인 EMI가 막아 조회수가 급격히 줄어 이익이 급감했는데, 이 내용을 멤버 중 한 명이 뉴욕 타임스에 기고해 문제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막기도 애매하다. 오리지널 동영상을 통한 광고 수익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이에 대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해적판에 원저작자가 광고를 걸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재주는 해적이 구르고 돈은 원저작자가 벌 수 있는’ 것이다. 해적판은 홍보만 해주고 수익은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SM엔터테인먼트 안수욱 이사는 “소녀시대 동영상을 올려보았더니 이탈리아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세운다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글의 ‘글로벌 영업력’이다. 동영상을 올린 나라의 광고가 아닌 동영상을 보는 나라의 광고가 탑재된다. 즉, 뮤직비디오를 한국에서 틀면 한국 기업 광고가 붙고 미국에서 틀면 미국 광고가 붙는 식이다. 유튜브의 모회사인 구글은 매출의 90% 이상이 글로벌 기업 광고이다. 막강한 광고 영업력을 가진 구글이 그 나라 실정에 맞는 광고를 연결해준다.

여기에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분석력’이다. 올린 동영상을 어느 나라에서 주로 다운로드했는지 분석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미국의 경우 주별로도 분석 가능). SM엔터테인먼트 안수욱 이사는 “소녀시대 동영상을 올려보았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세운다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구글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올해는 절호의 찬스다. 구글코리아 서황욱 부장은 “실력 있는 국내 뮤지션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플랫폼이 되는 것이 올해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직데이 콘서트도 타이완과 일본에도 중계했는데 구글 본사도 적극적이다. 본사가 예정에 없던 미국 중계까지 결정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아이튠스와 유튜브를 적극 활용한 뮤지션들은 해외 팬의 팬덤을 체험하고 있다. 그룹 2NE1의 ‘Try to copy me’를 비트박스로 리믹스한 흑인이 있는가 하면 타블로의 곡을 다양한 방식으로 편곡한 곡이 오르기도 한다. 타이거JK는 저 멀리 브라질에서 팬들이 단체 응원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기도 한다.  
해외시장 진출과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대형 기획사에만 문호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시장이 걸 그룹 위주의 댄스음악 시장인데 반해 세계시장에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음악 팬들이 두루 존재한다. 밴드 ‘넬’의 경우 유튜브에 올린 ‘기억을 걷는 시간’이 47만 페이지 뷰를 기록했는데 외국인이 대부분 댓글을 남겼다. “가사를 이해는 못하겠지만 뭔가 아련한 옛 추억을 상기시킨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 이 3S는 이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화두다. 이 뉴미디어를 통해 '취향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블로가 맛본 신세계를 다른 연예인들도 경험할 수 있을지, 3S의 활용도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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