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상급식’과 ‘복지국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 두 용어는 절묘하게도 진보·개혁 세력의 의제이자 ‘보편주의’를 원칙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이 주도해온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공격적인 신자유주의 선진화 의제에 끌려다니며 반대만 외치는 피동적 구도였던 이른바 ‘MB 대 반MB’ 프레임을 벗어나서, 이제 진보·개혁 진영이 무상급식과 복지국가를 주창함으로써 비로소 ‘보편적 복지 대 선별(시혜)적 복지’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짠 것이고, 이에 보수 진영은 당황하여 쩔쩔매고 있다.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무상급식 프레임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초등학교 5~6학년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며 관련 예산을 경기도 의회에 상정했지만, 의회가 이를 전액 삭감해버렸다. 대신 경기도 의회는 월 소득이 4인 가족 기준으로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가정의 초·중·고교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한 별도의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급식 예산은 오히려 늘어났다. 선별적 무상급식이다.

‘선별주의 의료복지 국가’ 미국의 비극

그럼에도 여론의 지지는 김상곤 교육감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나섰다.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해 “북한식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허사였다. 그럴수록 무상급식 프레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지도부도 나섰다. 이들 중 일부는 무상급식을 좌파 포퓰리즘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좌파 정책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다음으로 복지국가 프레임이다. 3월15일 여의도에서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 400~500명이 몰려들었다. 민주당과 진보 정당의 유명 정치인, 노동·시민사회 인사와 학자들이 ‘복지국가’ 깃발 아래 몰려든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복지국가’를 매개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다. 왜 그럴까?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를 선진화로 포장해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한 현 집권세력의 실체가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과 기득권층 옹호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 부진, 만연한 청년실업, 민생복지의 상대적 축소 등으로 선진화 집권세력의 실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민생 불안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보수의 선진화는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역동적 복지국가는 ‘보편적·적극적 복지’와 ‘공정·혁신적 경제’를 통해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넘어서려는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이다. 분명한 대비가 도드라진다. 이제 선진화 세력이 주도하던 ‘성장 대 분배’의 프레임은 진보·개혁 세력이 주도하는 ‘복지국가 대 시장만능국가’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위의 두 프레임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보편주의’다. 미국 의료제도와 유럽 복지국가 의료제도 간의 본질적 차이는 ‘선별주의 대 보편주의’다. 미국의 선별주의 의료복지는 지속가능성이 낮고, 선별된 빈자들을 위한 공적 의료서비스의 질은 형편없다. 중산층 이상의 미국인은 시장에서 자신을 위한 민간 의료보험을 구입하기에도 빠듯한 조건에서 빈자들의 공적 의료보장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사실상 무상인 의료복지를 위해 중산층이 세금을 열심히 낸다.

중산층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는 ‘질 높은 의료’를 제공받기 위해서다. 보편주의 사회연대성의 원칙에 따라 빈자들도 덩달아 질 높은 의료혜택을 누린다. 이것이 보편주의의 위력이다. 중산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삶에서 안정감이 배가되고, 사회는 통합되며, 인적 자본의 확충과 복지를 통한 성장은 경제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무상급식을 관통하는 보편주의 원칙은 정확하게 역동적 복지국가와 연결되어 있다. 한편, 무상급식을 의무교육의 구성요소로 보고, 이를 근거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논리는 대립의 축이 의무교육의 ‘완전성 대 불완전성’이 된다.

따라서 최근의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그 초점을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의 대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올바른 프레임 설정이다. 그럴 경우에만 보편적 무상급식이 장차 의무교육의 울타리를 넘어 보육, 의료, 요양, 소득보장 등의 보편적 복지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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