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에서 죽어가는 또 ‘하나의 가족’
  • 장일호 기자
  • 호수 132
  • 승인 2010.03.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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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삼성전자.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 그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2009년 12월까지 확인된 백혈병·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자만 22명.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2007년까지 기흥공장 14명, 온양공장 4명, 수원사업장 1명이 조혈계 암에 걸렸다. 기흥공장 6명, 수원사업장 1명이 사망했다.

집단 발병은 우연일까?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삼성. 삼성은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삼성이 침묵하는 사이 희생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 스물세 살 박지연씨가 또 다시 사경을 헤매고 있다.
(3월31일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박지연씨는 끝내 눈을 감았다)


“엄마, 나 오래 살꺼야”
박지연씨(23)는 그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어머니 황금숙씨는 “그래, 고생 한만큼 좋은 일 있을거야”라는 대답으로 딸 지연씨를 안심시키곤 했다. 그러나 현재 지연씨는 “엄마”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한다. 지연씨의 깡마른 몸과 퉁퉁 부어오른 얼굴 곳곳에는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수십 개의 의료기구들이 달려 있다.

   
ⓒ시사IN 장일호
3월28일 중환자실로 옮겨진 박지연씨를 면회하기 위해 기다리는 부모. 이틀 전 병원에서는 “할 만큼 다 했다. 가족들도 준비하셔야 할 것 같다”라는 천청벽력 같은 통고를 했다.
지연씨가 누워 있는 곳은 강남성모병원 20층 BMT(Bone Marrow Transplantation·골수 이식) 중환자실. 오전 11시, 오후 7시 가족들에게는 하루 두 번 20분간 면회 시간이 허락된다. 지난 3월28일 저녁 면회 시간이 끝나고 중환자실 밖을 나오던 어머니 황금숙씨는 “살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모습이 떠올라서…그게 너무 안쓰럽다”라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통 말이 없던 아버지 역시 뒤돌아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곤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그런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가슴을 쳤다. 불과 열흘 전인 지난 3월20일 박지연씨가 미니홈피를 통해 “저 오늘 퇴원 잘 했어요. 노무사님도 잘 지내시죠? 오늘 황사가 완전 심하네요. 언제 뵐 수 있음 뵈여^^”라는 안부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미니홈피를 늦게 확인 해 곧 보자던 인사에 대한 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박지연씨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박지연씨의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젊은 사람에게는 인구 10만 명 당 1~2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이다. 골수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어렵게 골수이식도 받았지만, 그 희망도 헛됐다. 박씨의 백혈병이 지난해 9월 다시 재발했다. 예닐곱 차례의 항암치료도 씩씩하게 견뎌내던 박씨가 갑작스럽게 중환자실로 옮겨온 건 지난 3월26일 밤. 병원에서는 “할 만큼 다 했다. 가족들도 준비하셔야 할 것 같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고를 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반올림
3월25일 이건희 회장이 복귀한 다음날 삼성전자 기흥공장 앞에서 벌어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집단 백혈병 책임 촉구 집회
“다시는 지연이처럼 아픈 사람 없어야지…”

지연씨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한 건 강경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4년 12월이었다. 어머니 황금숙씨는 취업한다던 지연씨에게 “빚이라도 내 줄 테니 2년제 대학이라도 가라”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라던 지연씨의 생각은 달랐다. 알코올 중독 증상이 있던 아버지, 급식소 보조로 일하는 어머니, 대학에 다니고 있는 오빠…집안 사정은 빤했다. 지연씨는 자신의 꿈을 접었다. 대신 식구들의 꿈을 택했다.

일이 많아 ‘1일 2교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130여 만원을, 일이 없어 ‘1일 3교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100여 만원을 벌어 가며 지연씨는 식구들의 꿈이 이뤄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입사한지 2년 7개월만인 2007년 7월, 속이 미식 거렸고 하얀 방진복에 하혈하는 일도 생겼다. 설마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더 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라는 진단에 이어 대전성모병원, 서울의 여의도성모병원까지 오는 사나흘 동안 가족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 한 번 안 다니고 자랄 만큼 건강했던 지연씨였다. 가슴 졸이며 도착한 여의도성모병원 의사가 지연씨에게 제일 처음 물었던 말은 “화학약품 만지다 왔느냐”였다고 했다.

온양공장에서 지연씨는 반도체 검수 일을 했다. 도금이 잘 입혀지도록 플럭스(flux) 용액과 고온의 납 용액에 반도체 본체를 핀셋으로 잡고 넣었다 꺼내는 작업을 했다. 방사선이 발생하는 엑스레이 기계로 제품검사를 하기도 했다.

   
반올림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박지연씨 미니홈피 모습. 지난 3월20일 박씨는 미니홈피를 통해 “저 오늘 퇴원 잘 했어요. 노무사님도 잘 지내시죠? 오늘 황사가 완전 심하네요. 언제 뵐 수 있음 뵈여^^”라고 메모를 남겼다. 열흘 뒤 박씨 상태는 악화됐다.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사람 중 백혈병으로 사망·투병 중인 사람은 박지연씨 혼자만이 아니다. ‘반올림’이 2009년 12월까지 확인한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생자만 22명이다. 알려진 사람 중 황유미, 이숙영, 황민웅씨 등 모두 7명이 사망했다. 탈모와 유산, 무월경 따위 증상은 수없이 발견됐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단 한 명의 산업재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한 역학조사는 ‘근로자들의 백혈병이 업무와 관련 없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삼성전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멀쩡하던 젊은 사람들이 백혈병이나 림프종 암에 걸린 게 우연일까? 아니면 백혈병 환자들만 채용할 것일까?

소송단이 꾸려졌다. 박지연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3명과, 투병 중인 노동자 3명은 지난 1월1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형식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이지만, 실제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 측은 피고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소송 참가 신청을 했다.

아직 변론준비기일로 제대로 소송은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지연씨는 자꾸만 쇠약해지고 있다. 부은 얼굴에 힘겹게 뜬 눈에서는 초점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저 늘 제 오빠보다 누나처럼 듬직했던 지연씨가 잘 견뎌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박씨의 어머니는 취재진과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박씨의 치료비는 삼성이 대주고 있다. 삼성은 어머니가 반올림에 도움을 청하거나 언론 인터뷰에 나오면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가족 처지에서는 삼성이 도와주지 않으면 비싼 병원비를 낼 수 없다. “지연이를 우선 살려놓고 봐야하는거 아닌가.” 그런 어머니지만 어렵게 소송에 참여했다.

“다시는 지연이 같은 사람이 없어야지. 다음 사람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일해야 할 것 아니야. 안 그러면 그 사람도 또 지연이처럼 아플 것 아냐. 그런 일 하는 애들 사는 게 다 우리랑 비슷하게 어렵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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