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어느 주말 저녁,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 국가 재정이 드디어 파탄 위기에 몰렸습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관계국과 밀접한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미증유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야당과 거국일치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어 등장한 재무장관은 5% 이상의 세출 삭감을 5년간 계속한다는 재정 재건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재무장관은 또 1년 전에 20%로 올린 소비세(부가가치세)를 25%로 인상한다고 선언했다.

ⓒAP Photo3월24일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운데)와 장관들이 정부 예산을 승인받기 위해 참의원에 출석했다.

총리의 긴급 회견이 끝나자 외환시장에서는 ‘일본 팔자’ 주문이 쇄도해 엔화 시세가 크게 떨어졌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채권시장에서는 국채 투매 현상이 일어나 장기 금리가 급등했다. 지폐가 휴지가 된다, 예금 인출을 봉쇄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은행 앞에는 인파가 장사진을 쳤다. 귀금속점에서는 금괴나 보석을 사려는 사람들 사이에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엔 시세가 달러·유로를 비롯한 각국 통화에 대해 대폭락한 결과 휘발유 등 수입품 가격이 치솟았다. 채소와 고기, 생선 값도 두 배 이상 뛰어 올랐다. 동네 슈퍼에서는 신용카드와 전자 화폐 사용을 거절한다는 안내글이 나붙었다. 은행·보험회사·연금기금을 비롯한 금융기관도 큰 손실을 입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그럼에도 누구도 감히 대혼란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것은 아사히 신문이 최근 보도한 ‘일본 파산’ 시나리오다. 천문학적 인플레이션 상태에 돌입한 짐바브웨나 연간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를 넘어선 그리스처럼 일본이 10년 안에 거덜난다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는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하토야마 정권은 올해 예산안에서 세입을 약 37조 엔, 세출을 약 92조 엔으로 책정했다. 적자액은 국채를 발행해 충당할 계획이다. 적자 국채 발행액이 이렇게 나라 전체의 연간 수입을 초과한 것은 전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망라한 일본 정부 전체의 공적 채무 잔고는 2010년 말에는 949조 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GDP의 2배(약 1.97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또 국민 한 사람당 750만 엔씩 빚을 지게 된다는 얘기이다. 채무 잔고에서 자산을 공제한 순채무 비율에서도 이탈리아의 1.05배를 능가하리라 보인다. 

일본 국채 신용도 계속 추락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추가로 찍어낼 수 있는 적자 국채 발행 규모를 569조 엔으로 내다본다. 일본 정부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매년 50조 엔씩 적자 국채를 발행한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국채 소화 여력이 소진된다는 얘기이다. IMF도 일본의 공적 채무 잔고가 2019년에 개인 금융자산을 웃돌게 된다고 예측했다. 현재 일본의 개인 금융 자산, 즉 가계가 예금이나 주식 등으로 보유하는 금융자산은 1400조 엔에 이른다. 그러나 가계의 주택 할부금융 등 부채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개인 금융자산은 1000조 엔 정도이다.

ⓒAP Photo도쿄 공원에서 점심을 줄 자원봉사자를 기다리는 노숙자들.

공적 채무 잔고가 국내의 금융자산 규모를 웃돌게 되면 국내에서는 더 이상 적자 국채에 대한 수요를 기대할 수 없어 해외에 내다 팔아야 한다. 그러나 올해 1월 미국 신용평가 회사가 일본 국채에 대한 평가 전망을 낮추었다. 또 한 보고서는 일본의 채무 불이행 위험이 중국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일본 국채의 신용이 국제적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국가 파산을 막을 대안은 없는가. 당연히 정부 지출을 대폭 억제하거나 세금을 올리는 길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소비세, 즉 부가가치세를 현행 5%에서 15% 이상으로 끌어올려 만성적인 세수 부족을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토야마 정권은 “앞으로 4년간 소비세 인상 논의를 동결한다”라고 선언한 상태이다. 증세 정책을 취하면 극심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진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다음 총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토야마 정권은 그 대신 정부 지출을 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즉, 불필요한 댐 건설과 공공사업을 축소·폐지하거나 정치 개혁과 관료 기구 개혁을 통해 국가 전체의 낭비를 근절한다는 구상이다.

〈2014년 일본 파탄〉이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 재정이 이처럼 나빠진 것은 정치가들이 도로를 만들어달라, 다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자기 선거구에 세금을 대량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또 350만명에 이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국가 전체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권익에 집착해왔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일본 외무성은 3년 전 모스크바에 6층짜리 일본 대사관을 신축하면서 지하에는 온수 풀장과 사우나, 옥상에는 테니스 코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공수하는 벚나무로 대사관 앞뜰에 일본식 정원까지 꾸밀 계획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외무성은 모스크바 대사관의 호화 단장 공사를 마지못해 중지했다. 그러나 당초 건설 예산 100억 엔에서 겨우 7억 엔을 삭감했을 뿐이다.

ⓒAP Photo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10년 안에 파산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게재했다. 위는 하락하는 일본 주식시장 모습.

국가 파산을 막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미즈호 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씨는 아사히 신문에 인구 대책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처방전을 제시했다. 즉, 아이를 적게 낳는 이른바 ‘소자화 현상’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프랑스처럼 자녀 수에 따라 ‘세금 누진공제 제도’를 도입하라는 얘기이다. 외국인 관광객 7~8명을 유치하면 일본인의 연간 소비액에 필적하는 돈을 벌 수 있다며 ‘관광 입국’을 제시했다.

우에노 씨는 또 외국인 이민과 외국 기업을 적극 받아들이는 ‘문호개방 정책’을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즉,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IT 전문가, 과학기술 전문가, 법률 전문가들을 적극 유치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지방 참정권을 인정하는 법률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극단적인 폐쇄 사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5년 내 파산할 수도 있다”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재정이 파탄한다면 인류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대공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대다수 일본인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한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른다. 예컨대 일반 시민은, 국채를 인수할 민간 금융기관이 없다면 일본은행이 엔화를 마구 찍어서 국채를 인수하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또 일본이 해외에 보유한 채권 규모가 세계 제일이라는 점을 들면서 “10년 안에 일본이 파산한다는 주장은 기우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짐바브웨나 그리스의 국가 재정이 파탄한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하토야마 정권이 특단의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일본이 파산하는 시점은 2020년께가 아니라 2015년쯤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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