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으로 재개발 지역이 흉악범 소굴로 도매급 취급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 동네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토건족 배만 불리는 개발이 아닌, 진정 사람을 위한 개발을 꿈꾸는 달동네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울의 대표적인 재개발 동네인 서울 성북구 삼선4구역 장수마을 사람들. 그런데 사람 중심의 대안 개발이 늦춰지면서 빈집이 흉물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흉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국판 스쾃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쾃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이다. 스쾃 운동으로 사람중심의 대안개발을 바라는 장수 마을 사람들의 꿈은 이뤄질까?

글 싣는 순서
1)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2)빈집을 스쾃하라!


서울 성북구 삼선 4구역, 장수마을은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설사는 손을 놨다. 사적10호인 서울성곽이 지나가고 시유형문화제인 3군부 총무당(조선시대 육군본부 같은 곳)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건축에 여러 제약이 많다. 또 높이 지어봐야 7층 건물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돈을 벌려는 건설회사로서는 개발이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건설업자들이 손을 떼자,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개발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근대주거형성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 밝은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녹색사회연구소, 성북주거복지센터,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등이 2008년부터 장수마을의 대안 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주민들을 만나고, 건축법 등을 검토하며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나갔다.

ⓒ시사IN 장일호
빈집을 '스쾃'하는 장수마을 대안 개발 모임 사람들

하지만 서울시와 성북구청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뚜렷한 진척은 없다. 그나마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장수마을 주민이면서 대안 개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박학룡씨를 만날 때 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인사보다 먼저 물었다.

 마을의 '거점공간'으로

관의 협조가 없는 상태에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에 대안 개발 연구모임은 좌절만 하고 있지 않았다. 장수마을 대안 개발 연구모임이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도 마을 곳곳에 방치된 10여개의 빈집이다. 마을의 ‘거점공간’으로 빈집을 활용하고자 했다. 한국판 스쾃 운동인 셈이다. 스쾃은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되었는데,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이 소유한 빈집에 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후 스쾃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이다.

ⓒ장수마을 대안 개발 모임
장수마을 대안 개발모임이 만든 삼선4동 전경

대안 개발 연구모임도 빈집에 주목했다. 10여 개 빈집 중 두 군데 빈집의 가옥주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한 곳은 지난해 11월부터 집을 수리해 ‘장수마을사랑방’으로 만들었다. 대안 개발 모임의 회의가 진행되기도 하고, 주민과 만남의 장소로도 이용할 예정이다. 

다른 한 곳도 요즘 한창 '공사'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아 구가도시건축연구소와 공공미술팀이 295-18번지 2.5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미술관 295'라는 이름의 미술관을 열어 4월3일 제막식을 가진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 소품 등을 모아 여는 삼선동 다시보기 전(展), 동네 만들기 계획놀이 전(展), 작은 제안들 전(展)이 열릴 계획이다. 

대안 개발 모임의 박학룡씨는 “여전히 방치 돼 있는 빈집들도 마을의 훌륭한 거점 공간이 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박씨는 “대부분의 빈집 주인들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연락이 되도 세를 들이면 재개발 추진이 더뎌질지 모른다는 등의 이유로 빈집을 내어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수차례 접촉을 시도하지만 집 주인 대부분은 직접 수리도 하고, 필요하면 월세도 내겠다고 제안해도 요지부동이다.

ⓒ시사IN 안희태
장수마을

지난 3월23일 장수마을 미술관이 들어설 295번지 일대를 지나는 주민들은 빈집의 ‘변신’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집은 생명력을 잃는다. 박학룡씨는 “빈집은 사유재산권과 공익의 우선순위 문제다. 공공의 영역에서 관리되지 않는다면 소유자의 지상권을 인정해주고 차라리 헐어버리는 것이 주민들을 위한 차선이다”라고 말했다. 개발은 멀쩡한 집도 망가뜨리지만, 마을과 주민공동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은 빈집마저 살린다.  마을 미술관을 바라보는 장수마을 사람들은 변화의 ‘희망’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잡습니다

시사IN Live가 2010년 3월 25일자 사회문화면 “빈집을 스쾃하라”라는 기사에서 빈집 스쾃 사례로 소개한 ‘작은 미술관 295’는 빈집 스쾃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 확인돼 해당 기사를 바로잡습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아 구가도시건축연구소와 공공미술팀이 '작은 미술관 295'라는 이름의 미술관을 열어” 라고 보도를 하였으나 이는 공공미술가 김아무개씨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아 '작은 미술관 295'라는 이름의 미술관을 열은 것으로 확인돼 작품 저작권자를 바로잡습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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