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최고위원의 목소리는 꽉 잠겨 있었다. 감기가 한 달째 안 떨어진다고 했다. 도라지 달인 물을 연거푸 마시는 데도 별무소용인 듯했다. 그만큼 중책을 맡은 그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민주당 지방선거기획본부장을 맡아 밑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3월4일 만났다.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나? 국민의 MB에 대한 평가라고 봐야 한다. 투표로 권력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대통령 지지율이 50%에 이르는데, 심판론이  작동할까? 지난 보궐선거 때도 대통령 지지율이 높았지만, 선거 결과는 여권의 참패였다. 재?보선과 달리 큰 선거 때는 여권 지지층이  적극 투표에 나서리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여론조사에서 안 잡히는 ‘바닥민심’이라는 게 있다. 조순 서울시장 선거 할 때도 외국에 1년쯤 있다 들어와보니 밑바닥 바람이 ‘되는’ 쪽으로 불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분위기다. 크든 작든 요즘 사람이 들어오는 건 민주당뿐이잖은가?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선거는 뭐니 뭐니 해도 큰 민심의 흐름 속에서 결정된다.

김민석,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 대학 행정학 석사, 서울대 총학생회장. 15대 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국민통합21 선대위 본부장 역임. 현 민주당 최고위원
대통령 지지율하고 바닥민심은 별개라는 건가? 우리가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것이 진짜 좋아서 지지하는 것도 있지만, 잘하라고 채찍질하는 성격도 있다. 게다가 실제 투표에서 나타날 여권 내 분열이라든가 야권의 연합 같은 변수는 반영이 안 되어 있다.

정당 지지율 변수는 어떤가? 여전히 한나라당이 두 배가량 높은데. 민주당 지지율이 25~30%를 오락가락하는 게 최상이다. 여당일 때도 그랬고, 잘 나가는 야당일 때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10%대까지 내려갔던 당 지지율이 상당부분 회복됐다가 다시 조금 빠진 상태다. 회복을 위해서는 야권의 전열을 어떻게 정비하느냐가 변수다. 

지방선거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4년 전 워낙 참패해서 조금만 잘하면 되는 건가? ‘널널하다’고 할 수 있다(웃음). 승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소극적 기준, 적극적 기준, 비교적 객관적 기준. 소극적 기준은 한나라당 자리를 하나라도 빼앗아오면 이기는 거다. 호남 빼고 (광역단체장) 한 군데서만 이기면 된다는 건데, 그래놓고 이겼다고 하면 양심불량이다. 적극적 기준은 수도권 셋 중에서 2곳, 중부권 5곳 대전·충북·충남·강원·제주 중에서 2~3곳, 호남 석권, 여기에 영남에서의 바람인데, 이거면 어마어마한 거다. 객관적 기준은 언론에서 ‘이 정도면 야당이 이겼다’고 평가할 기준인데, 아마도 서울 포함해서 수도권 2개 이상 이기면 되지 않겠나. 내 감으로는 대략 중간 기준과 적극 기준 사이에서 저울이 왔다 갔다 할 것 같다.

수도권에서 최소한 2곳은 이겨야 한다는 얘긴데, 사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만만치 않은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다. 인물 경쟁력에서 어쨌든 현역이 아니라 밀린다. 현재 있는 후보군으로 조사해보면 수도권+중부권에서 안정적으로 이기는 데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야권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5% 정도 밀리는 선거는 해볼 만하다. 10% 정도는 숨어 있는 야당표가 여론조사에서 안 잡히는 경우가 있고, 5~6%는 선거를 얼마나 능숙하게 치러내느냐 하는 선거전략으로 만회할 수 있다.

현재 후보군의 경쟁력이 탁월하지 않다면 외부 영입도 고려해볼 만한데.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 정치가 (영입 인사에 대해)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했던 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나마 정치권에서 단련되고 검증된 사람이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외부 수혈은 없다는 얘긴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명숙 재판 결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모든 게 비상하게 움직여야 한다.

김 최고위원은 유시민 전 장관의 경기도지사 출마에 대해 "대구 시장에 나가는 게 노무현 스타일이다"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유시민 전 장관의 경기도 출마설이 나온다. 나는 차라리 대구 시장 나갔으면 좋겠다. 지난  총선 때 대구에서 나갔었고, 대선을 겨냥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그게 그토록 강조하는 노무현 스타일 아닌가? 아무튼 경기에서는 김진표-이종걸 싸움에 유시민 변수가 생긴 거고, 인천은 지금 5명이 뛰는데 송영길 변수가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이 인천에 나갈 가능성이 큰가? 본인은 서울시장을 염두에 뒀었는데. 본인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데, 당에서는 인천을 적극 권유하는 쪽이다. 송 최고위원이 나가면 경쟁력이 상당하다. 게다가 송 최고위원이 인천에서 출마하면 서울 경기 선거에도 도움이 된다.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를 받쳐줄 수 있으니까.

중부권 전망은 어떤가? 충청권은 상당한 선전을 기대한다. 충북의 이시종, 충남의 안희정 둘 다 후보가 좋고, 바닥도 좋고, 최근의 (재?보선) 성적 역시 좋고, 거기에 세종시라는 대형 이슈까지…. 그 어느 때보다 해볼 만하다. 특히 안희정 후보의 경우 4박자가 딱 맞아떨어진다. 노무현의 핵심 브랜드인 세종시가 이슈인 상황에서, 노무현의 후계자 안희정이, 제일 강력한 상대(이완구 전 지사)가 빠진 자리에, 충남에서도 세대 교체를 바라는 시기에 출마한다.제주도는 최근 입당한 우근민 전 지사가 경쟁력이 있고, 강원도는 이광재 의원 아니면 엄기영 전 MBC 사장인데 둘 다 경쟁력이 있다.

엄기영 전 사장이 출마할 가능성이 있나?

영입 노력을 안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고, (엄 전 사장이) 정치를 한다면 야권에서 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엄기영·이광재 다 강원도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후보다. 이광재 의원도 상당히 준비된 후보다. 2심이 아직 안 끝났는데, 2심에서 일부 유죄가 나와도 돌파해야 한다고 본다. 그 정도로 움츠러들면 여당은 계속해서 검찰을 통해 발목잡기에 나설 거다.

호남의 개혁 공천 여부가 민주당 이미지를 좌우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결국은 시민배심원제나 국민경선제 같은 제도로 돌파해야 하지 않겠나. 지난 총선 때 도입했던 ‘박재승 케이스’는 실패한 제도로 판명이 나서 정치권에서 그런 방식은 다시는 안 쓸 거다.

국회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엄기영 전 MBC 사장.
호남 세 곳 가운데 한두 군데 바꾸면 개혁 공천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걸 숫자로 어떻게 이야기하겠나. 정세균 대표 스타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인위적으로 사람 딱 정해놓고 날리고 이런 거 싫어한다. 합리적인 제도로 해야지. 한 명이냐 두 명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 제도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시민배심원제의 적용 범위는 얼마나 될까? 광역은 광주·대전이 많이 거론된다. 너무 권역이 크면 적용하기가 좀 애매하다. 나머지는 기초단체장이다. 많으면 한 20군데.

시민배심원제도는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어떤 단점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우리도 예측을 못하겠다. 다만 모의 배심원제를 해봤더니 바닥이 좀 약한 신인이어도 상대적으로 참신해 보이고 토론 능력이 있으면 점수를 따는 것 같더라. 그래선지 신인이 많은 지역에서 배심원제를 해줬으면 하는 요구가 많다.

당내 일각에서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선거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내 입장에서는 돈싸움, 조직싸움 안 붙는 경선을 하자는 게 대원칙이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조직 동원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핸드폰으로 착신시킨다든가, 대기시키는 노하우가 워낙 발달한 모양이더라. 그래서 신뢰가 높지 않다.

지방선거를 가를 핵심 이슈는 무엇일까? 단일 이슈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세종시나 4대강이나 지역마다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 정권이 이대로 가는 게 좋은가 아니면 견제와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근본 물음이 기본 전선이 되고, 여기에 각 지역별 현안이 가세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최근 야권 단일화를 위한 합의문이 또 나왔지만, 여전히 추상적이다. 관건은 세 가지다. 민주당이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느냐, 경쟁력 없는 광역 후보를 가지고 있는 정당에서 완주 자체에 의미를 두는 데서 벗어날 수 있느냐, 그리고 야권 세력 전체가 협상력을 보일 수 있느냐. 이 가운데 우리는 최소한 연합을 위해 일정한 기득권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전략 공천이나 시민배심원제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놓았다. 특히 전략 공천은 기초의원까지 제도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더 큰 과제는 몇몇 후보가 완주주의 유혹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다. 그 분들 처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일이 되려면 결국 후보를 정리해야 한다. 어렵긴 하겠지만, (야권 연대는) 될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수도권 두곳은 이겨야 승리한 지방선거라고 말했다. 
광역단체장에서는 민주당의 양보가 쉽지 않다는 얘기로 들린다. 양보가 아니라 결국은 경쟁력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광역은 경쟁력 중심으로 가고 그 아래 수준에서 협상이 필요한데, 우리도 큰 걱정이다. 기초의원도 어디 한 군데 흔쾌히 양보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예전처럼 제왕적 총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호남에서 민주당이 광역단체장을 내놓으면 의외로 쉽게 풀릴 일 아닌가? 다른 당에 경쟁력을 가진 인물이 별로 없다. 울산 같은 지역은 진보 정당에 인물이 있지만. 

처음으로 지방선거와 같이 치르는 교육감 선거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육감) 후보에 따라 다를 거다. 교육감 후보가 정당 공천을 받는 건 아니지만 주요 정책에 따라 러닝메이트 성격을 띨 수도 있으니까. 이미 경기도에서는 지사보다 김상곤 교육감이 더 스타 아닌가. 나는 앞으로 선거 두어 번 하고 나면 단체장과 교육감 사이에 역전 현상이 나타나리라고 본다. 지방선거 처음할 때는 구청장들이 국회의원 앞에서 굽실굽실했는데, 요즘은 구청장들이 국회의원보다 먼저 축사를 하는 게 관행이 됐다. 그렇듯이 교육감과 단체장 사이에도 굉장한 위상 변화가 올 거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스타 교육감을 내세우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의 경우 박세일 전 청와대 수석이 보수 후보로 거론된다. 비교적 센 후보다. 우리 쪽에서는 김성재 전 수석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 본인이 ‘김대중 도서관을 잘 관리해달라’는 DJ 유지 때문에 고사했는데, 아쉬움이 가는 후보 중 하나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거론되지 않았나? 물론이다. 지금 국민참여당 대표가 아니라면 아주 좋은 후보감인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존재감 부재’는 어떻게 극복할 건가? 주요 이슈를 청와대와 친박 진영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계속되고 있는데. 남들 보기에 집안싸움·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는데, 여권 안에서 그런 싸움판이 벌어졌으니 관심이 쏠릴밖에…(웃음). 하지만 내분으로 이슈를 끌어간 만큼 내상도 깊을 거다. 민주당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재, 세력의 분산, 부족한 의석, 대선 패배 이후 큰 선거로 아직 회복이 안 된 상황 등 구조적 문제가 겹치면서 계속 고통을 받아왔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지방선거가 정치적 갈림길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기면 당장 유력한 차기 후보가 없더라도 후보 배출 가능성이 있는 세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일본 민주당도 상당 기간 존재감이 없었지만, 참의원 선거에 승리하면서 가능성이 생기지 않았나. 민주당이 대안인가 아닌가, 존재감을 만들어내느냐 아니냐 갈림길에 서 있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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