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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경제 모두 살리는 ‘식판혁명’, 무상급식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2010년 03월 04일 목요일 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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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가 꼭 석 달 남았다. 4년 전 5·31 지방선거를 돌이켜보면, 변화는 뚜렷하다. 그때는 도리가 없었다. ‘참여정부 심판론’이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강타했다. 열린우리당은 서울 강금실, 경기 진대제 등 비정치인 ‘뉴 페이스’를 내세우며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막판 박근혜의 ‘부상투혼’, 그 유명한 발언(“대전은요?”)으로 충청도까지 휩쓸었다. 정책은 실종되고 ‘반노무현’ 바람만 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대한민국 정치가 진일보한 것일까? 정책이 전선을 가르고 있다. ‘무상급식’이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로 급부상했다. 특히 야권은 4대강 문제와 함께 학교급식을 정책연대의 최우선 공약으로 삼는 분위기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선거연대는 정책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무상급식을 꼽았을 정도다.

   
메주 담그기 체험 학습에 참여한 경남 합천 초등학교 학생들
무상급식은 ‘위’에서 던져진 의제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친환경 우수농산물 사용과 직영 전환을 골자로 하는 급식조례제정운동이 결실을 맺은 사안이었다. ‘아래’로부터 생성된 풀뿌리 의제인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학교급식 공약은 꽤 많은 지자체에서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였다. 천안의 장기수 시의원은 급식운동가로 시의회에 입성한 대표 사례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처럼 학교급식이 정치권의 주요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분루가 결정타였다. 지난해 김 교육감이 도의회에 제출한 경기도 내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이 한나라당 도의회 의원들의 반대로 전액 삭감되면서 무상급식 논쟁에 불이 붙었다. <분노한 대중의 사회> 저자 김헌태씨(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인하대 겸임교수)는 “과거에도 민생정책에 대한 저변의 흐름은 있었지만 그걸 건드려주는 정치인이 없었다. 무상급식은 ‘김상곤 효과’가 컸다.

일상적으로 만연한 먹을거리 불안을 타고 전국적 이슈로 증폭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책중심의 정치, 생활정치가 지방선거에 전면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여전히 거대 담론과 이념 소재가 선거판을 가르고 있지만 “반MB 전선도 정책과 만나야 불이 붙을 것이다”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무상급식이야말로 풀뿌리 의제

이명박 대통령이 전면적인 무상급식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야권의 무상급식 연대는 탄력을 받았지만 여권 내부 사정은 더 복잡해졌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원희룡 의원은 단계적으로 초등학생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고, 당내 중도그룹인 남경필 의원,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 등도 초등학생 무상급식에 대해 당 지도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왜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표’가 되는 공약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상급식은 80, 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찬성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압박하고 있다.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배옥병)는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공약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물어 공개하겠다며 낙선운동을 검토 중이다.

   
무상급식을 시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보평초등학교
한나라당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급식 문제를 좌우 이념의 문제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온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의원은 “여론의 지지율이 80%가 넘는 정책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하면 한나라당은 어떤 국민을 상대로 하겠다는 것이냐. 잘못하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관권 선거’ 논란을 일으킨 교과부 문건에는 무상급식에 대한 정부여당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난 2월8일 교과부 학생건강안전과 명의로 작성돼 한나라당 보좌진 간담회 자료로 사용된 이 문건에는 ‘무상급식 반대’ 이유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들었다.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부담능력이 있는 사람까지 일률적으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발언과 통하는 얘기다.

서울 예산 20조원, 무상급식 지원금 0원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가르는 핵심 논점은 저소득층에 한정해 지원하는 시혜적 복지냐,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교육복지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전자에 맞춰져 있다. 무상급식 반대입장을 밝히며 “북유럽 나라처럼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소신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 찬성하는 측에선 헌법 제31조 8항의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조항을 들어 무상급식은 국가의 의무다라는 입장이다. 의무교육인 초·중등학교에서 수업료와 교과서 대금을 받지 않듯이, 학교급식 역시 국가가 부담해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이해영 교수(상지대 식품영양학과)는 “학교급식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교육의 교재, 그 자체이다”라며 복지가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또 하나의 무상급식 반대 논리는 재정문제이다. 교과부는 ‘부자에게 공짜 밥 제공’은 교육재정의 형편에 비추어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역시 궁색하게 들린다.

단적으로 서울시는 연간 예산이 20조원이 넘는다. 전국 16개 시·도 중에서 재정자립도 1위지만 무상급식 지원예산은 0원, 전국에서 꼴찌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각당 후보는 무상급식은 단체장의 의지 문제라며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겨냥했다. 원희룡 의원은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은 한해 1900억원의 예산이면 된다며 예산 낭비를 줄이면 당장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중학교까지 확대한 무상급식 예산을 3795억원으로 제시하며 “서울시에서 매년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금이 8000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2월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운동본부는 무상급식 지원금 0원인 서울시를 상대로 5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전국 지자체의 예산 편성 실태를 보면 무상급식 반대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는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표 참조). 16개 시·도 중 재정자립도가 각각 9위와 15위인 경남과 전북이 무상급식 지원예산은 211억원대로 1, 2위를 차지해 서울·대구·울산·인천 등 대도시와 대조를 이뤘다. 이 정도면 재정자립도와 무상급식 예산은 거의 거꾸로 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친환경 급식 식재료 지원비까지 합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주민들이 발의한 각 지자체 급식지원조례에는 학교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할 경우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해당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각 지자체의 연간 친환경+무상급식 지원금을 학생 1인당으로 환산해보면, 일등과 꼴등의 차이는 200배에 달한다.

전북 13만8000원, 전남 12만8000원, 경남 9만8000원, 충남 9만1000원, 제주 4만9000원, 충북 4만1000원, 경기 3만9000원, 경북 3만3000원, 강원 1만3000원, 광주 1만3000원, 대전 1만2000원, 인천 1만2000원, 부산 5000원, 울산 4000원, 대구 3000원, 서울 700원 순으로 나타났다. 거주 지역 교육감이나 시·도지사의 ‘의지’에 따라 학생 1인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은 이처럼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단체장의 재정 투입에 대한 의지가 단지 ‘교육복지’에 대한 신념만으로 가능했을까? 재정자립도와 상관없이, 아니 어쩌면 낙후된 지역에서 무상급식 지원이 더 활발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무상급식+친환경·직거래가 중요

2월25일 국회 귀빈식당. 이종걸 민주당 의원 주최로 무상급식 관련 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이 의원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시·도교육감이 연대해 무상급식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최영찬 교수(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단지 무상급식이 아니다. 친환경·직거래 무상급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역 생산자 단체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전라북도가 62.8%의 무상급식 지원율을 기록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인 진안군이 100%를 기록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다. 친환경 식재료가 생산자 단체와 직거래로 학교에 공급되고, 그 결과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 동석한 김선희 학교급식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이 활발한 지자체는 투자가 소득으로 이어진다는 지역 내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초등학생들과 텃밭 가꾸기를 하며 학교 급식에 지역산 농산물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친환경급식 지원으로 농가소득이 향상된 전국 사례를 취합해 분석 중이다. 경기도 여주시의 사례를 보자. 쌀 생산지로 유명한 여주의 경우 관내 모든 초등학교가 급식으로 여주에서 생산된 친환경 쌀을 쓰고 있다. 당초 여주에는 친환경 쌀의 생산량이 부족했다. 하지만 판매처가 생기자 일반농업을 하던 농가가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했고 지난해 162t의 친환경 쌀을 생산했다. 일반쌀은 40kg 1가마당 5만8000∼6만원 수준인 데 비해 학교급식용 친환경 쌀은 1만3000∼1만4000원이 높아 그 차액은 모두 농가 소득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여주에서 학교급식용 친환경 쌀을 제공하는 29개 농가가 추가로 얻은 수익은 총 5300만원이고, 농가당 182만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김 사무처장은 “친환경 농업기반도 확대되면서 동시에 농민소득도 증가한 의미 있는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쌀 수매가의 하락 속에서 학교급식으로 달라진 이 같은 생산-소비 방식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최영찬 교수는 무상급식 논의는 교육적 차원을 넘어 농업의 산업적 기반을 지속가능한 모델로 바꿔낼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 “학교-농가 직거래를 통해 계약 재배와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다면 가격과 품질의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먹고사는 길을 터주면 매년 농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학교급식을 통해 경쟁력이 확보되면 회사·공공기관·병원 등의 급식이나 식품가공, 외식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의 무상급식 운동에 생산자 단체가 적극 결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급식지원조례에는 친환경 우수농산물에 대한 지원규정과 함께 학교와 생산지를 연결하는 공적 물류시스템으로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둘 수 있다’는 점이 명문화되어 있다. 현재의 학교 단위 개별 구매가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한 공동구매로 이어진다면 최저가 입찰제도가 품질 기준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3월4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급식지원센터가 개장식을 가졌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가 가락동 도매시장 내에 연면적 6100㎡(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물류센터를 열었다. 일선 학교 식단에 맞춰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느라 하루 평균 300통 이상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서울의 지원센터가 관 주도의 물류 기능을 담당한다면 강원도 원주는 보다 진일보한 사례였다. 이 지역 생활협동조합 등 12개 지역단체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원주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학교뿐만 아니라 농촌지역 어린이 집, 상지대 구내식당 등에도 원주에서 생산되는 무농약 쌀을 공급하고 있다. 민간이 주도해 원주시의 지원을 끌어냈고 사회적 기업 인가도 받았다. 물류 기능을 넘어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 운동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무상급식이 식판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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