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털렸다. 정확히는 인턴기자의 신상정보가 털렸다. ‘네티즌수사대’를 취재하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인턴기자의 이메일 주소가 빌미였다. 네티즌 한명이 곧 이름과 소속을 알아냈다. 4년 전 한 포털사이트에 카메라 제품에 대한 질문을 남긴 것과 특정 커뮤니티에서 아이디OO로 활동한 기록, 심지어 시사IN의 지원경력도 밝혀냈다. 이메일 주소 하나로 가능했다. ‘K캅스’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다행히’ 중요부분은 XX 처리했고 여기까지만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네티즌수사대는 검색하거나 해킹을 하는 사람, 각종 게시판으로 나르는 사람 등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져 있다.

힘들여서 한 일이 아니다. 오래되고 자주 쓰는 아이디일수록 방문한 흔적이 웹페이지에 남아 검색이 용이하다. ‘네티즌수사대’의 수사는 보통 그렇게 시작된다. 1월24일 부천중부경찰서는 한 고등학생을 일반교통방해죄로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 8월, 술을 마시고 인형뽑기 경품으로 받은 물놀이용 튜브를 휘두르며 차로의 달리는 차를 막아선 혐의다. 5개월이나 지난 사건해결의 단초를 얻은 것은 인터넷이었다.

피의자의 행동이 찍힌 동영상이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뒤늦게 확산되자 누리꾼 중 한명이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사의 결정적 실마리를 게시물 댓글을 통해 얻었다. 부천사이버수사지원팀 관계자는 “댓글에 쓰인 이름과 네티즌들이 추정한 나이대를 근거로 미니홈피를 추적한 결과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길 막아선 취객, 네티즌 수사대가 포착

NCSI 혹은 NSI. 일명 ‘네티즌수사대’다. 미국의 과학수사드라마 ‘CSI’에서 착안한 명칭이다.따로 수사대를 꾸리는 건 아니지만 불특정다수가 머리를 맞대 누군가의 정체나 정보를 캔다. 이들 수사의 핵심은 연예가십 속 A양, B군의 실명을 밝혀내는 것이다. 처음엔 추측이다. 곧 기사 중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방송자료가 있으면 실제 방송화면을 찾아 캡쳐해 올린다. 실증적 자료가 된다. 얼마전 성매매혐의로 구속된 가수도 그렇게 삽시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유명인을 넘어 이번 사례같이 일반 사람들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신상 추적도 늘고 있다. 2005년.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변을 치우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 ‘개똥녀’ 사건 이후 추적대상의 범주는 더 넓어졌다. 얼마전 고등학생의 교사 성추행 사건, 초등학생 로우킥 사건, 해부용 시체로 장난친 사건의 경우 신상이 공개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거나 실생활에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같은 범법자의 과거도 네티즌의 검색을 통해 공개됐다.

‘사이버 오지랖’을 넘어 때로는 신상정보를 토대로 사이버테러까지 감행하는 이들. 오프라인에서의 정체는 뭘까. 취재중 접촉한 네티즌은 다양한 군상이었다. 취업준비생과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 직장인, 방학 중인 중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한 직장인은 “오랜시간을 투자하진 않는다. 완전히 빠져서 추적하는 데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방학이라 서너시간씩 관련 게시판에 ‘상주’해 있다는 중학생인 아이디 ‘ksh개성’은 자주 가는 게시판에 수사의 단초가 될만한 것을 꾸준히 실어 나른다 그는 누리꾼들이 각기 전공분야를 살려 협업을 한다고 말했다. “사진 잘 찾는 사람, 모자이크 잘 지우는 사람 따로 제각각 잘하는 분야가 있다.” 각개전투를 벌여 획득한 아이템을 한데 모으는 방식이다. 아이디 ‘...’는 “불특정 다수다. 해킹에 능한 학생도 있고 실제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행정부처의 공익근무요원도 봤다.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각기 다른 게시판으로 실어 나르는 일반 네티즌들의 역할도 크다”라고 말한다. 실마리를 한 데 모아 하나의 ‘짤(그림파일)’로 정리하는 사람, 호기심으로 ‘클릭질’을 계속해 추천수를 높이는 네티즌들 모두가 함께한 결과라는 게 그의 10년 게시판 생활의 결론이다.

차를 가로막은 취객 동영상.
20대 네티즌 한명은 수사에 필요한 두가지로 ‘포털과 근성’을 꼽았다. “포털사이트 너댓개를 동시에 켠다. 가능한 모든 연관 검색어를 입력해본다. 추정 지역, 입은 옷 등 사소한 단서에서 시작한다.” 몇시간이고 웹페이지를 검색하는 근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검색엔진이 ‘정보의 바다에 떠 있는 구명보트’라고 말한 진중권의 해석은 네티즌수사대에게도 유효하다.

수사에 필요한 두가지, 포털과 근성

취재 중 접촉한 한 누리꾼은 기자도 네티즌수사대중 하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되는 신상정보의 확산에선 언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도 보도가 되면서 확대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을 관리하는 김지선 팀장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까봐 메일주소나 전화번호가 있는 글을 실시간으로 지우지만 언론이 금세 기사화 시킨다. 그걸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진다”라고 말한다. 인기 게시판엔 연예분야 기자들이 이른바 ‘눈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네티즌수사 1번지는 디시인사이드의 ‘코메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다. 내부에선 신상을 추적하는 코갤러들을 두고 ‘코정원’, ‘코갤특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시판엔 막말과 욕설 등 원색적 게시물이 난무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안에도 그들만의 문법이 있다. 이용자들 스스로도 안다. ‘옛 여자친구의 현재 남자친구 신상을 털어달라’는 게시물엔 욕설이 달린다. 공분할만한 사건엔 900개 댓글이 이어진다. “코갤이 정의를 외칠 정도면 레알(리얼=실제) 사회는 얼마나 썩은거냐”라는 댓글이 눈에 띈다.

사생활침해 논란은 늘 이들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주민등록번호 유출과 해킹 사건 때문에 연예인들이 누리꾼을 고소한 사건도 여럿 있었다. 조두순 사진이 잘못 유출돼 일반인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중국은 이를 ‘인육수색’이라고 부르며 지난 12월 법적으로 처벌규정을 마련했다. 

‘개똥녀’ 사건
강장묵 교수(세종대 정보통신공학과 사업단)는 이들의 순기능에도 주목한다. “네티즌들이 과거엔 단순히 여론주도의 성격을 가졌는데 최근엔 증거를 가지고 공공의 가치를 세우는데 일조하고 싶어한다.

수사기관이나 법같이 제도권에서 총괄하던 부분의 빈 공간을 신속하게 메꿔줄 수 있다.” 통제보단 프라이버시를 지키도록 유도한다면  이웃의 안녕을 살피는 ‘네이버워치’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네티즌수사대의 영역은 계속 확장 중이다. 지난 11월, 다리에서 강아지를 던진 리투아니아 남자가 동물학대죄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웹에 올린 동영상이 전세계 네티즌의 분노를 사 연합 사이트가 마련됐고 여기서 추적이 벌어지면서 남자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웹의 특성에 맞게 네티즌수사대 간에도 글로벌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취재도움: 박초롱 인턴기자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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