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5일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보복 성전’이 언급된 성명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가 처음으로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혔다는 점과 그것이 지니는 무게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북한이 현 시점에서 이례적이고 돌출적이라고 할 만한 강경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 정부가 준비하는 것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북한 급변 사태 대비 비상계획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민감하고 강력한 경고를 보냄으로써 논의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시에 주변국에 대해서도 추후 유사한 논의가 제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내용의 수위와 형식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회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내포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성명은 성명 그 자체로서 임무를 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난해 말 이후 전개되어온 북한의 유화공세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보인다.

북한, 북·미 관계 개선 못하면 체제 붕괴 위험

북한은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남 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려는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라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이어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걸리는 근본 문제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일관하다”라고 함으로써 대남·대미 유화공세를 지속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다만 새해에는 유화공세의 목표를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진전을 기초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동시에 실현해나가겠다고 구체화하고 있다. 연초 북한이 유화공세의 초점을 한반도 평화체제에 맞추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은 올해에 북·미 간 신뢰 조성을 핵심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지난 1월11일 발표한 외무성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핵문제의 기본 당사자들인 조·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는 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한 데서 잘 나타난다. 아울러 “조·미 간에 신뢰 조성을 위해서는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빠른 속도로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근원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시각은 지난해 12월8일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방북했을 때 미국 측에 전달한 것을 되풀이해 강조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러한 북한의 성명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비핵화를 위한 긍정적 조처를 취한다면 그다음에 광범위한 다른 기회가 열릴 것이다”라는 원칙적 태도로 대응했다.

북한은 1월14일 금강산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지구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 실무 접촉을 제의하고 1월15일에는 우리 측이 지난해 10월 제의한 옥수수 1만t 지원을 수용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미국과 우리 측에 잇달아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제의 내용이나 형식이 체면이나 격식을 떠나 매우 직설적이고 적극적이다. ‘보복 운운’ 했으나 1월19일에는 개성공단 실무회의에 호응해 나왔다. 북한은 현재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미 관계 개선을 ‘근본적 문제’로 보고 가능한 한 조기에 진전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할 상황이다.

북한이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내세우면서 선 비핵화 방침을 고수하는 우리 정부에 대화 제의를 계속하는 것도 실리 추구와 함께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여건 조성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선 평화협정’ 논의를 주장해 추가적인 북·미 대화 개최와 6자회담 참가의 명분으로 삼고 향후 협상에서 비핵화와 단계별 상호 조처와 관련해 좀 더 분명한 의견 접근을 이루려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한 해도 그러했지만 대화도 협박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밝힌 대로 올해는 남북 관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전해나가는 것이다. 2010년 대전환의 모멘텀을 여기서 만들어야 한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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