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가 권력을 쥔 건 2008년 벽두지만, 집권자의 미감(美感)이 가시화된 건 2009년 초로 보는 게 타당하다. 미술 동네도 권력 이양의 태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08년 말 해임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자리에 각각 ‘탱크주의’로 유명해진 CEO 출신 배순훈씨와 원로 미술평론가 오광수씨가 내정된 시점도 올해 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 후 첫 외부 강연의 일성,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의 귀결로 해석들 한다.

미지의 신호탄 한 매체 인터뷰에서 임기 1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로 유 장관은 서울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가칭)을 조성한 것을 꼽았다. 연초에 이명박 대통령은 기무사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을 짓겠다고 공식화한 바 있다. 2012년 개관 예정인 서울관을 기념하는 전시회 〈신호탄〉도 12월 초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 걸림돌처럼 지목된 국군서울병원의 이전 약속까지 받아내며 연면적 3만3000m²의 광활한 공간을 거머쥐었으니, 서울관은 일견 ‘본관을 능가하는 분관’으로 거듭날 모든 채비를 마친 듯하다.

그러나 서울 분관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인사들이 국외의 선례로 곧잘 비교한 테이트 모던이나 오르세 미술관의 위상에 맞추려면 넘어서야 할 근본 장벽이 있다. 올해로 40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역사와 함께한, 유서 깊은 관료주의다. 예산과 행정의 전권을 쥔 관내 행정 관료가 전문 학예직보다 직급상 우위인 현 위계가 미술관의 본질적 문제점이라는 점은 줄곧 지적되었다. 기존 미술관과 차별화를 꾀한 서울관은 미학적 지향점과 그에 걸맞은 건축 리노베이션까지, 할 일이 태산 같다. 전문 학예사의 견해가 행정 이기주의에 밀려 사장되지 않도록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맞다. 서울관 추진을 ‘관내 권력 조율’과 나란히 병행해야만 ‘세계적 미술관’이라는 배순훈 관장의 이상도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 

올해 초 기무사 터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장관(오른쪽).
쌈지스페이스 폐관과 연장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를 덮친 ‘경제 공황’의 여파는 한국 미술판도 뒤흔들었다. 폐허로 변한 미술 동네에 새 벽돌을 쌓아올린 공로는 대안 공간들에게 돌아간다. 국내 1세대 대안 공간 쌈지스페이스가 2008년 폐관 선언을 한 뒤 올 3월 결국 문을 닫았다. 오늘날 여러 대안 공간은 외관상 현상 유지는 하고 있으나 예전의 위상은 사라졌다. 대안 공간이 수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국공립·사립 미술관들이 느지막이 ‘정상 업무’ 차원에서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잘된 일이다. 덕분에 한국 미술계에서는 매머드급 미술 행사와 입주 작가 프로그램이 셀 수 없을 만큼 열리고 또 열린다. 작가에게 이보다 좋은 시절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경기도미술관의 약진 돋보여

그러나 양적 풍요가 과연 입 찢어지도록 기뻐만 할 일인가 싶다. 풍성한 작가 풀에 버금가는 질적 다변화는 관측되지 않는다. 또 소재 고갈 때문인지 기획 주제전도 전체적으로 공동화된 인상이다. 한 해를 대표할 전시를 꼽아달라고 요청받으면 초대형 행사나 국제적 미술 축제 외에는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역 미술관의 약진은 돋보인다. 2006년 개관한 경기도미술관은 쌈지스페이스 김홍희 전 관장을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와 올해 여성주의, 생태와 의상, 정치 미술 등 ‘학술적 가치’에 비중을 둔 기획전을 연이어 개최해 고만고만한 지역 미술관을 향한 항간의 기대치를 넘어섰다. 대안 공간의 내공은 해체 직후 이렇게 빛을 발하기도 한다.

현발의 ‘빛바랜’ 30주년 경기도미술관은 현재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 미술을 점검하는 〈악동들 지금/여기〉를 열고 있다. 미술(인)의 정치·사회적 개입을 심각히 고민하고 실천에 옮긴 1980년대 민중미술 이후, 한국 정치 미술의 계승자를 살피는 전시회다. 때마침 올해는 민중미술의 신호탄 격인 ‘현실과 발언’(현발) 창립 30주년을 맞는 해였다. 현 정부가 점찍어 밀어낸 김윤수·김정헌 두 기관장은 바로 구세대 민중미술의 수장으로 간주되기에, 30주년이라는 기념비성과 대표 인사들이 오늘 처한 형편은 극단으로 대비된다. 현재의 삶을 조형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입장을 광의의 민중 미술이라 규정한다면, 보통명사 민중미술은 여전히 유효하게 미술 현장에서 목격된다. 그렇지만 ‘덩어리 같은’ 실체로 민중미술은 공중분해된 감도 없지 않다.

광장이 아니라 공원에 가까운 광화문광장은 서울시의 미학을 가늠케 한다.
현발 30주년 콜로퀴엄이 매달 모처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적다. 이는 현 정부의 문화 정책 때문도, 전 정부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내놓는 데 실패하고 안주한 민중미술 내부에 문제가 있다. 광장에서 미술을 시작한 그들은 제도 권력의 정점까지 치고 올라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가려니 낯설어하는 이가 적지 않다. 거기에 광장의 주인마저 다른 이로 교체되었지 않나. 

광화문광장의 미학과 정치학 ‘정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광장을 논하긴 어렵다(그러고는 싶지만). 올 8월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공공 디자인을 바라보는 서울시의 미학을 가늠케 해준다. 세로로 길게 늘어선 꽃밭을 시민이 따라 거닐며 즐기도록 유도했다. 지침을 던져주고 어떻게 놀지 가이드라인까지 정해준 격이다. 심지어 사진 촬영 자리까지 지정해놓았다. 집회는 불허한다고 들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시민이 느낄 정치 피로증을. 나들이차 꽃밭을 거닐다가 이해가 상이한 정치 구호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양새에 걸맞게 광장이 아니라 ‘공원’ 조성이었노라 실토하든지.

2009년 한국 사회의 미학과 정치학의 수준은 광장에서 아고라의 구실을 기대하는 시민사회와 화려한 볼거리 및 행락객이 얽힌 도심 경관을 추구하는 서울시 사이의 대립으로 첨예화된다. 때문에 광장을 둘러싼 논의는 미학과 정치학의 결합을 빼놓고서는 불가능한 듯하다.

결국, 미술 게이트 하나 한 해가 조용히 지나 싶더니, 결국 11월 안원구씨 그림 강매 사건이 터졌다. 단순한 미술품 게이트인가 했는데 권력형 비리의 실마리마저 제공할 태세다.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때 ‘행복한 눈물’이 놓인 상징적 위치와 유사하다. 미술은 통상 세간에서 무관심의 대상이다. 이처럼 악역을 도맡아 등장할 때, 현대미술은 괴이한 존재감을 과시하곤 한다.

기자명 반이정 (미술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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