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몇 개 대학에 기독교 계열 후보가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들 배후에는 청년 기독교 단체가 있다.” 올해 초 광운대학교 학생들은 신입생 새로배움터 행사를 맡았던 기획사 간부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십자군’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광운대 학생들은 기획사 간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광운대 총학생회장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출마하기 전에 “이슬람 세력이 광운대에 몰려오고 있다. 기도의 힘으로 그들을 막아야 한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신앙 문제로 생각했다. 뒤에 기독교세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광운대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기획사 간부의 고백이었다. 그는 자신의 업체는 하청업체이고 원청업체와 총학생회가 특수관계여서 올해 총학생회 사업을 그 원청업체가 도맡아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원청업체가 여러 이름으로 사업을 계약해서 다른 회사처럼 보이게 하겠지만 같은 회사라며 회사 이름을 일러주었다.

기획사 간부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총학생회는 기획사 간부가 언급한 기획사들과 계약을 했다. 광운대 학생들은 그 기획사들을 조사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이화여대도 광운대와 마찬가지로 그 기획사들과 계약한 것이다. 그리고 광운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청년 기독교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결의 끈은 아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상민씨였다. 총학생회 행사 기획을 도맡았던 기획사들의 대표인 윤 아무개씨와 김씨는 ‘새벽나무’라는 기도모임을 함께 하고 있었고 광운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 간부들은 김씨가 이끄는 ‘KUL’이라는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렇게 얽힌 학생들이 연세대와 세종대 총학생회 선거에도 출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사IN 고재열이화여대·연세대·세종대·광운대의 선거 포스터 속 ‘기독교권’ 후보들의 포즈가 거의 비슷하다.
새벽나무 김상민씨가 기독교권 이끌어

‘새벽나무’라는 기도 모임은 ‘새벽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해 무릎 꿇는 젊은이들의 모임’의 줄임말로 김씨가 현재 대표로 있다. 2007년 대선에서 ‘터치코리아’라는 기독교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여 주목받았던 김씨는 2008년 ‘한국 교회의 미래와 기독학생운동’이라는 세미나에서 “기독학생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이 아직 없다.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바람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2009년 김씨는 청년 기독교 단체인 ‘예수의 군대’에서 주최한 콘퍼런스에 연사로 섰다. 뉴라이트기독연합 상임고문이던 고 김준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 뉴라이트기독연합 고문을 맡은 길자연 목사, 조갑제닷컴의 김성욱 기자 등이 이 콘퍼런스의 연사였다.

김씨의 인터넷 미니 홈페이지 제목은 ‘한국 대학생 자원봉사 원정대V’이다. 그런데 올 여름방학 때 광운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농촌활동을 대신해 ‘한국 대학생 자원봉사 원정대V’라는 이름으로 캄보디아와 국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김씨와 두 총학생회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연관성에 대해 김씨는 “나는 특별히 조직 활동을 한 적이 없고 단지 멘토로서 조언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뉴라이트에 대해 부정적이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과연 이들 대학의 기독교 계열 후보들은 어느 정도 밀접할까? 광운대 학생들은 이들 대학을 직접 방문해 이들이 어느 정도 동질성이 있는지 실제 후보들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이들이 동일한 세력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네 대학 후보의 선거 포스터 디자인이 완전 똑같았기 때문이다. 네 대학 후보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포즈를 취했다.

포스터 문구도 거의 비슷했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총학, 광운인이 주인된 총학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세종대에서는 ‘소통하고 공감하는 총학, 세종인이 주인 된 총학이 되겠습니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선거 공약도 거의 똑같았다. 단지 순서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심지어 선거운동원들이 입는 단체복까지 완전 판박이였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새로 등장한 ‘기독교권’은 올해 네 곳의 대학에서 출마했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연세대·광운대·세종대에서는 운동권 후보에 완패했다. 상대 후보들이 선거를 보이콧한 이화여대 선거에서는 단독 출마했지만 학생들이 선거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선거가 무산되었다. 현재까지는 이들이 대학 사회에 큰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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