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지난해 6월부터 〈시사IN〉이 다섯 차례(옛 시사저널 포함)에 걸쳐 보도했던 휴전선 전자경계시스템 도입 시범사업(일명 GOP 사업)에 대해 검찰과 국방부 조사단의 수사가 한창이다. 올 들어 국가청렴위원회는 GOP 사업을 둘러싼 〈시사IN〉의 기사를 토대로 6개월여에 걸쳐 철저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그 결과 삼성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된 과정에 문제가 컸고, 시범 설치된 장비의 성능이 허점투성이이며, 그 과정에 부패 연루 의혹이 있다는 혐의를 잡고, 조사 결과를 지난 9월 하순 검찰과 국방부 조사단에 이첩해 정식 수사 의뢰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GOP 사업 과정의 로비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최근 주력 사업자인 삼성 에스원 이우희 사장(지난 10월7일 사임) 자택을 전격 압수 수색하는 한편 에스원과 방위사업청 관련자를 상대로도 소환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국방부 조사단 역시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점과 시범 설치한 장비가 애초 방위사업청과 삼성 컨소시엄이 장담한 군 요구 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 소재를 파악하는 등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군내 성능 평가 전문기관에서는 지난해 전방 5사단 지역 15km 구간에 시범 설치한 삼성 컨소시엄의 장비에 대해 1년여의 평가를 거친 결과 성능 및 규정 미달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지난달 이를 국회 국방위에 보고했다.

국방 국방위, 삼성·방사청에 끌려다녀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위사업청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내년도 계속 사업으로 전방 28사단에 삼성 컨소시엄의 탈 많은 제품을 추가로 설치하겠다며 39억원의 예산 승인을 요청했다가 국회로부터 거부당했다. 국회 국방위는 대신 ‘계속 사업’이 아니라는 전제 아래 5사단에 이미 시범 설치한 삼성 컨소시엄 전자철책 장비 성능을 요구조건에 맞도록 개선하는 비용에 쓰라는 명목 으로 지난달 국방부예산 26억원을 승인해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뉴시스GOP 사업을 따낸 삼성 에스원 이우희 전 사장(왼쪽)과 그의 부산고 3년 후배로 기획예산처와 청와대 재직 때 이 사업을 적극 챙긴 변양균씨(오른쪽). 이씨는 변씨의 부탁을 받아 신정아씨가 근무하던 성곡미술관에 1억5000만원을 건넨 사실이 확인돼 대가성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실패한 삼성 컨소시엄의 GOP 시범사업에 국회 국방위원회가 이처럼 추가로 예산을 승인해준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점, 시범 설치 후 성능 미달, 그리고 이 과정에 부패 연루 혐의가 드러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잘할 때까지 예산을 밀어달라’는 방사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방위가 방사청과 삼성 컨소시엄에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방사청은 삼성이 애초 제안한 제품과는 다른 장비를 현장에 설치하도록 허용해왔고, 그래도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군 요구 성능 기준을 낮추면서까지 사업을 밀어주고 있다. 따라서 국회 국방위를 통과한 내년도 GOP 사업 추가 예산 26억원은 예결위 본회의 과정에서 철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예결위원인 김양수 의원은 “GOP 시범 사업비 26억원은 예결위 본안 심사 때 승인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삼성 컨소시엄의 전방 전자철책 사업이 이토록 힘을 받고 계속 추진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군 주변에서는 배후에 실세가 있다는 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시사IN〉은 지난 10월8일자 보도를 통해 삼성의 GOP 사업에 청와대 비서실까지 나서서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문제 제기한 바 있다. 그 근거로 이 사업에 대한 국가청렴위원회의 조사가 한창이던 지난 8월23일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명의로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방위사업청장 앞으로 비밀 공문을 내려 보내 ‘GOP사업 테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한 관련 대외비 문건 사본을 제시했다. 이 비밀 문건에 대해 방사청은 “합참과 육군을 통제하기 어려운 방위사업청의 처지를 감안해 청와대가 국방부 중심으로 GOP 사업을 추진하도록 조정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긴급한 국가 안보 현안도 아닐뿐더러 잡음이 끊이지 않는 삼성 컨소시엄의 개별 방위사업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점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시사IN 안희태방위사업청은 지난해 GOP 시범 사업자로 삼성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가 부실·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시사IN〉은 추적 결과 구설이 끊이지 않는 전방 전자철책 사업에 처음부터 적극 관심을 기울이고 밀어준 사람은 신정아 사건에 연루돼 구속 중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이 사업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삼성 에스원의 이우희 사장과 부산고등학교 3년 선후배 사이이다.

변 전 실장이 전방 전자철책 사업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한 때는 그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있던 2005년. 전방 GP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인 그해 7월14일,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례적으로 전방 사단을 방문했다. 이날 그는 병영시설 현대화 사업에 대한 장병의 의견을 듣기 위해 철책선을 방문했다면서 휴전선에 첨단 전자경계 장비를 도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변양균씨가 GOP 사업 직접 챙긴 까닭

전방 시찰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1월4일 변양균 장관은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휴전선 전자경계 사업에 41억원의 국방 예산을 책정해 적극 밀 것이라는 구체적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사업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이미 개발 완료된 만큼 41억원 전체를 전방 1개 사단 전자장비 시범 설치에 투입할 계획이며, 이 사업은 10년 넘게 생각해온 숙원 사업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까지 휴전선 전자철책 사업은 사전에 국방 중기 계획에도 올라 있지 않았고, 육군 일각에서 소요의 필요성이 비로소 떠오르던 때였다.

에스원을 주간사로 한 삼성 컨소시엄이 관련 업계의 특혜 시비 속에 GOP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직후인 2006년 7월 변양균씨는 기획예산처를 떠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에서도 삼성이 따낸 GOP 사업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앞으로 군 복무에서 점차 인적 초병 경계를 첨단 장비 경계로 전환해나가도록 무인 전자감시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지난해 8월 하순 기자의 특혜의혹 제기로 국회에서 이 사업의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오르자 이례적으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헬기 편으로 삼성 컨소시엄에서 전자철책을 시범 설치한 전방 5사단 지역을 방문해 사업을 독려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8월23일 청와대 비서실장 명의로 국방부와 합참 등에 ‘GOP 사업 테스크포스팀’ 구성을 지시하는 비밀 공문이 내려갔다. 청와대 내부의 이런 일련의 움직임과 변 전 실장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때까지는 시기적으로 그가 아직 청와대에 재직하던 때였다.

ⓒ뉴시스GOP 사업은 병사들이 서는 휴전선 경계 임무를 전자장비로 대체한다는 구상 아래 추진됐다.
그러나 9월 들어 신정아씨 사건이 확대되면서 변양균 전 실장도 끝내 낙마했고, 고위공직자 신분임에도 직권을 남용해 국가 예산과 정책을 사적으로 주물렀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다.공교롭게도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이우희 에스원 사장이 신정아씨가 몸담았던 성곡미술관 지원 비용으로 변양균 전 실장에게 1억5000만원의 검은돈을 건넸다는 사실을 적발해냈다. 그러나 이 돈의 대가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에스원 이우희 사장은 10월8일 전격 사임했다. 에스원 측이 표면적으로 밝힌 그의 사임 이유는 직원의 강도 성폭행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군 주변에서는 국가청렴위원회가 9월 하순 에스원 이우희 사장의 GOP 사업 로비 의혹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불똥을 미리 차단하려는 삼성의 꼬리 자르기 인사였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따라서 검찰 GOP 사업 수사팀은 변양균 전 실장이 에스원 이우희 사장에게 요구해 받은 1억5000만원의 자금이 전방 전자철책 사업에 대한 대가성이 아닌지, 이 돈과 별도로 로비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시범 운용 결과 큰 허점이 드러난 삼성 컨소시엄의 GOP 사업에 청와대에서 이례적으로 비서실장 명의의 공문까지 내려 보내며 테스크포스까지 꾸린 데 대해서도 그 경위가 타당했는지, 그 배경에 누가 있었는지 등 철저히 의혹을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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