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보수가 빨갱이로 몰린 까닭
  • 사진 조남진·글 이종태 기자
  • 호수 116
  • 승인 2009.12.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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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대낮,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빨갱이 사냥 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는 ‘이분도 빨갱이, 저분도 빨갱이, 빨갱이가 판쳤다.’

보수 성향 민간단체인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는 11월26일 오전, 서울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반국가 활동을 한 증거가 명백한 친북?반국가 인사 중 1차로 100명을 다음 달 발표하겠다”라고 밝혔다.

   
친북좌파사전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빠졌다며 강하게 항의하며 단상을 점거한 보수단체 회원들
단상에는 공안통 검사 출신인 고영주 위원장. 단하에는,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행사장을 뒤엎은 바 있는 백발성성한 ‘애국’ 시민들. 이른바 ‘친북좌파’뿐 아니라 산천초목도 전율케 할 만큼 장엄하고 삼엄하게 애국가가 제창되고 국민의례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친북인명사전에 전직 대통령이 포함되느냐”라는 질문에 “1차 대상자에는 돌아가신 분은 포함하지 않았다”라는 고영주 위원장의 답변이 화근이었다. 순간 뒤쪽에서 일어선 노인이 “김대중도 빠진 친북 명단은 필요 없다. 저 놈들도 빨갱이다”라고 외치자 장내는 온통 술렁였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위 오른쪽 네번째)가 친북반국가 인사 100명을 발표했다.
여기저기서 “너 간첩이지” “북한에서 공작금 얼마 받았냐” 따위 ‘의혹’이 제기되더니, 기자석 앞은 이내 단상의 ‘간첩’들을 잡으려는 ‘애국’ 인사로 가득 찼다. 고영주 위원장은 “좌파 쪽에서 방해하려 온 것 아니냐”라며 노인들에게 도리어 ‘친북 의혹’을 제기했다. ‘친북좌파’ 잡으려고 모인 분들이 서로에게 ‘좌파’ ‘간첩’ 딱지를 붙이는 광경은 마치 ‘친북인명사전’ 제작의 예행연습처럼 보였다.

서로를 빨갱이라고 부르면서 장내가 진정시키기 어려울 만큼 소란스러워지자, 고 위원장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런 그에게 누군가 외쳤다. “빠져나간다. 빨갱이들 다 잡아라!”

   
"빠져나간다. 빨갱이들 다 잡아라"는 보수인사들의 항의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고영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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