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얘기가 나오면 민주당은 부르르 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연차 수사’의 시발이 결국 한상률 국세청장 시절의 ‘기획된 세무조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보 기근에 시달리던 민주당은 ‘안원구’라는 굵직한 내부 고발자를 만나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조배숙․이종걸․박영선․이춘석 의원 등이 포함된 TF팀을 꾸려 이른 바 ‘한상률 게이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발품팔기에 들어갔다.

구치소에 있는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을 두 번이나 직접 면회하고, 안 전 국장의 부인 홍씨, 백용호 국세청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등을 잇달아 면담한 송영길 최고위원을 11월27일 아침 7시30분에 만났다. 이른 시간인데도 기자들의 전화가 잇달았다. 민주당이 몽땅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안원구 파일(녹취록)’의 내용을 확인하려는 전화다.

하지만 정작 송 최고위원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기색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문제 등은 현 정권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폭발력이 큰 사안인 만큼 자체 확인을 거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위)은 ‘도곡동 땅’ 문제 등 현 정권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사안이 불거진 만큼 신중하지만 끈질기게 접근하겠다고 말한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과 연관이 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의 비밀, 하나는 국세청이, 하나는 법무부가 가지고 있다. 부산에 있는 태광실업 박연차 세무조사를 왜 서울지방국세청이 나섰겠는가. 한상률 전 청장이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했던 거다. 그런데 MB 정권 출범 과정에서 서로 필요에 의해 협력했던 내부 인사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그 한 사례로 한상률과 안원구 전 국장 사이가 어느 순간 틀어지면서 그 치부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안원구 전 국장이 내부 고발자 격인데, 어떤 사람인가?
대구 영신고 출신으로 DJ 정부 때 김중권 비서실장에 의해 청와대로 발탁됐고, 참여정부 때도 이정우(정책실장)·이강철(정무수석) 등 TK 인사들을 통해 고속승진했다. 그러다보니 급이 너무 올라가 서울청으로 돌아갈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2007년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가 있었고, 그때 도곡동 땅이 이명박 소유라는 문건을 발견했다고 한다. 자기가 직접 찾은 게 아니라 그 밑에 조사 1국에 있던 사람이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서) 찾아서 보고한 건데, 그걸 그냥 덮으라고 했고, 그 이후 박영준(이상득 의원 보좌관 출신, 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지형(이상득 의원 아들, 외국계 투자회사) 등 현 정권 인맥을 통해 한상률 청장 유임 등을 논의했다는 거다.

도곡동 땅이 이 대통령 소유라는 문건은 확보한 건가?
(안 전 국장 말이) 그때는 카피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담당자에게 폐기는 하지 말고 보안을 유지하라고 했다는데, 그게 지금 남아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만 그때 담당했던 조사국 간부가 지금 옷을 벗고 나와 세무사로 일하는데, 그 사람과 안 전 국장이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 어제 백용호 청장 만났을 때 도곡동 땅 자료를 찾아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안씨와 현 정권 실세들과의 관계는?
박영준 차장과는 같은 1960년생 대구 출신으로 자기는 79(학번)고, 박영준은 재수해서 80이라 친구의 친구 사이라고 하더라. 이상득 의원 아들과는 (지난 정권 때) 이지형 회사가 정부 투자를 유치하는 데 도움을 주곤 해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국세청장을 했던) 이용섭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청장 되면 한 건씩 가져오는 애들이 많다는데, 안 전 국장도 그런 식으로 한상률 청장에게 접근해 “내가 유임을 도와주겠다”고 했을 것이고, 한상률은 고맙게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안씨는 (이지형을 통해)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을 만나서 한상률이 전 정권 가신그룹과 별 관련이 없다고 옹호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막역한 사이였는데 한 전 청장이 승진 대가로 3억원을 요구하면서 틀어진 건가?
한상률과 안 전 국장이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세 차례 만났는데, 세 번째 만났을 때 3억원 얘기를 했다고 한다. “현 정권 실세에게 10억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7억은 내가 만들 테니 3억을 내라고, 그러면 차장 시켜준다”라고. 실세가 누구냐니깐 모르겠다고 하던데, 암튼 안 전 국장은 행시 서열상 자기가 차장이 되는 건 옳지 않아 거절했고, 얼마 후 박연차 조사가 본격화됐을 때도 베트남 국세청장에게 태광실업 베트남 법인의 계좌추적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는 등 나름으로 노력을 했는데, 갑자기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사퇴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사퇴를 종용했다고 보는가?
본인은 ‘MB 뒷조사를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결국은 내부 권력 쟁투 과정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서로 살아남으려고 줄을 대다 밀리는 것 같으면 가진 정보를 흔들며 협박도 했을 것이고, 그런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결국 사퇴를 종용하다 긴급 체포까지 가지 않았을까? 특히 안 전 국장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미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가 안 나갔고, 다시 〈신동아〉 인터뷰를 앞둔 상황에서 지난 11월18일 긴급 체포됐다. 현직 국세청 간부를, 사전에 구두 통보도 없이 흉악범 잡듯이 끌고 간 것은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 사건 담당이 BBK를 수사했던 김기동 검사인데, 제대로 수사가 될까 싶다.

송영길 의원이 지난 11월26일 백용호 국세청장을 항의방문했다.
안 전 국장의 주장과 녹취록 말고는 확증이 없다. 실체 규명이 쉽지 않을 듯한데.
파고 들어가다 보면 하나 둘 드러나게 되어 있다. 백용호 청장이 어제 내놓은 임성균 당시 감사관(현 광주국세청장)의 해명서만 해도 그렇다. 백 청장에게 “당신은 껍데기 아니냐. 실세는 (TK 출신인)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이고, 이 사람이 청와대와 직거래하는 것 아니냐”라고 다그치니까 “내가 다 파악하고 있다. 당시 사퇴를 종용했다는 감사관한테서 해명서도 받았다”라면서 그걸 내놓았다. 내용이 “새 청장 온다고 해서 조직을 위해 몇몇 국장은 물러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청와대를 팔았지만 사실이 아니고 실수한 거다”라는 건데, 결국은 녹취 내용을 다 사실로 인정한 셈 아닌가. 녹취록의 신빙성만 입증해줬다. 또한 미국에서 나온 한상률 전 청장의 반박 기자회견도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이 사건과 관련된 핵심 인사가 그 직전 출국했다는 제보가 있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 확인된다면 정권에 치명타가 된다.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수사 의지를 접은 것 아닌가?
안 전 국장이 조만간 한상률 등 몇 사람을 고소한다고 한다. 한 전 청장 퇴임식 날(2009년 1월19일) 안 전 국장이 감찰국 직원 4명에게 끌려가 11시간 동안 감금된 일이 있는데, 그걸 걸겠다는 거다. 그러면 한 전 청장이 피의자 신분이 되기 때문에 검찰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어느 정도까지 추적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정보력에도 한계가 있고 그동안 손을 댔다 흐지부지된 일도 적지 않다.
이 사건은 MB 정권이 국가 권력기관을 어떻게 오․남용하는지 보여주는 단초다. 전직 대통령이 죽고, 노건평·박정규·정상문 등 그 측근들은 다 감옥에 있는데, 정작 박연차는 병보석으로 나와 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나 한상률 전 청장은 다 전 정권 때 대검 중수부장, 국세청 차장을 한 핵심 실세이다. 근데 왜 건재할까? 한 사람은 효성 은폐, 한 사람은 박연차 수사 등으로 공을 세워서 아닐까?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게 4월30일인데, 김경한 장관이 5월 초 이란으로 출국하려다 하루 전에 취소했다. 이란 대사관에는 ‘국내 시위’ 때문이라고 했다던데, 그 때 시위는 없었다.
나는 이때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 직보하고 수사 지침을 받았을 거라고 믿는다. 한상률이 독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고는 ‘불구속 수사 방침이 섰다’는 국정원장의 발언 등 노골적인 노무현 창피주기가 시작됐다. 노골적인 정치보복, 권력 남용이다. 다행히 안원구 전 국장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민주당이 대충 하다 그만둘 거면 자기 찾아오지도 말라더라. 부인 홍씨도 ‘이 정권 3년 가겠냐’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다. 민주당도 이 기회에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야 한다. 대충 하다 끝내면 누가 이 당에 정보 들고 찾아오겠나.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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