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내게 비자금 10억 줬다”
  • 신호철 기자
  • 호수 11
  • 승인 2007.11.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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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는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 무마를 위해 삼성 법무팀이 뛰었다고 말한다. 당시 임창욱씨의 로비스트였던 최승갑씨는 삼성 법무팀 사람이 임창욱 회장을 만나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시사IN 신호철
최승갑씨(위)는 2003년 임창욱 회장의 도피 생활을 도왔고, 정·관계 로비 자금을 전달해주었다고 폭로했다.
 
 
“2003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이 비자금 10억원을 주며 구속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회장님 뜻을 받아 정·관계 인사들에게 구명 로비를 했다.” 지난 10월23일 최승갑 전 NKTS 사장(50)이 <시사IN>에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를 ‘재벌의 로비스트’라고 털어놓았다. “임창욱 회장을 위해 개처럼 일했다. 불법도 저질렀다. 이제 다 고백하고 싶다.”

양심선언의 계절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재벌의 돈 봉투 명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이용철씨는 재벌이 자기에게 돈 봉투를 주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최승갑씨는 자신이 재벌의 돈 봉투를 날랐다고 말한다.

이용철 전 비서관이 스스로 받은 돈 봉투 사진을 찍었듯, 최승갑 사장은 임창욱 회장이 건네준 수표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신설동 지점에서 발행한 1억원짜리 수표 10장 사진을 보여줬다. 인출일은 2003년 2월12일, 일련번호는 바다14549848부터 바다14549857까지 이어져 있다. 신설동 지점은 대상그룹 본사 옆에 있는 은행이다. 최씨는 “일련번호를 추적하면 수표 출처가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문을 닫은 경호업체 NKTS의 사장이었다. 대상그룹과는 원래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왜 자칭 ‘비자금’ 10억원을 받은 것일까.

최씨의 설명으로 재구성해본 당시 상황은 이렇다. 2002년 말 인천지검이 대상그룹 위장 계열사 ‘삼지산업’ 비자금을 추적하자 임창욱 회장은 2002년 11월께부터 잠적했다. 인천지검은 소환에 불응하는 임 회장을 잡기 위해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였다. 임창욱 회장은 간절했다. 구속만 되지 않는다면 뭐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구명 활동을 대상그룹 직원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었다. 삼지산업 비자금을 폭로한 사람이 내부 고발자였기 때문이다. 임창욱 회장은 주변 지인들에게 비선으로 로비를 할 수 있는 브로커를 찾았다. 바로 이때 임창욱 회장 지인의 소개로 최승갑씨가 임 회장을 만났다.

재벌 회장의 위기는 주변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최씨는 임창욱 회장을 만난 걸 좋은 기회라 생

   
  위는 그가 임 회장에게 받았다는 10억원어치 수표. 맨위는 그가 변호사 선임을 중개했던 영수증.  
 
각하고 충성을 다했다. 그는 임창욱 회장에게 로비 자금 수십 억원을 받아 로비 자금으로 뿌렸다고 말했다. “2003년 1월 초 르네상스 호텔 23층 라운지바에서 강남세브란스 병원 김○○ 박사가 나에게 양도성 예금증서(CD) 5억원을 줬다. 이 돈을 노무현 정부와 친분이 있는 정치인 ㅇ씨 등에게 전했다.” 그는 “영수증이 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 자료를 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 법무팀이 임창욱 도왔다"

최씨는 2003년 2월12일 인출한 한빛은행 수표 10억원은 다른 ‘특별한 용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임 회장 스스로도 검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유명한 ㅇ검사와 수배 와중에도 룸살롱에서 만나 술을 마시곤 했다. 하지만 인천지검 송해은 특수부장은 어쩌지 못하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 회장은 ‘송해은 부장이 영웅심에 나를 괴롭히고 있다’면서 나에게 송해은 검사를 막기 위한 ‘무리한 주문’을 했다.” 최 사장은 이 ‘무리한 주문’을 결국 실행하지 않았고 착수금을 임 회장에게 되돌려 줬다고 말했다.

최승갑 사장은 임창욱 회장의 변호사 선임도 자기가 중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ㅊ변호사도 자신이 중개했다고 하며 변호사 수임 영수증을 보여줬다. 기자가 ㅊ변호사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ㅊ변호사는 “처음 임창욱 회장 사건을 맡던 날 옆에 최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수임료도 최씨를 통해 받았다. 임창욱 회장은 너무 쫓기고 있던 때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씨를 브로커로 생각하고 일을 맡겼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임창욱 회장이 검찰의 체포 영장을 피해 어떻게 도피 행각을 벌였는지 짐작할 만한 얘기가 있다. 경호업체 사장이었던 최씨는 임창욱 회장의 경호 역할까지 덤으로 했다. “NKTS에서 일하던 내 동생들을 뽑아 임창욱 회장 경호를 해줬다. 원래 임 회장은 삼성의료원에 있었는데 2월10일 인천지검에서 수사관들이 병원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도피했다. 그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삼성 법무팀에서 온 사람이 임창욱을 만나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봤다. 이후 2003년 2~3월 동안 내 이름으로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방을 얻어 임창욱 회장을 숨겨줬다.”

   
 
ⓒ시사IN 윤무영
임창욱 회장은 2003년 2월~3월까지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21층(위)에 숨어 지냈다.
 
 
그는 르네상스 호텔 숙박 영수증을 보여줬다. 2144호와 2121호를 최씨 이름으로 그 기간에 대여한 기록이었다. 2144호와 2121호는 호텔 21층 양쪽 끝에 있는 특실이다. 방 바로 맞은편에 비상구가 있어 유사시 도망치기 쉬운 구조다. “임 회장은 의심이 많아서 44호와 21호를 왔다 갔다 하며 숨어 지냈다. 나와 내 경호원들 6~7명은 21층 주변 방에 덩달아 합숙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임창욱 회장이 딸 졸업식장에 참석했던 일화는 흥미 있다. 임창욱 회장에게는 두 딸이 있다. 큰딸 세령씨는 대학 재학 중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와 결혼하면서 자퇴했다. 이 때문인지 임 회장은 둘째 딸 졸업식에는 꼭 가고 싶다며 최 사장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최승갑 사장은 ‘회장님 졸업식 참석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며칠 동안 이화여대를 현장에서 예행연습을 벌였다. “경호직원 11명에 차량 3대가 동원된 긴박한 작전이었다. 1진은 검찰 수사관을 막고, 2진은 임 회장을 호위하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나는 ‘동생’들에게 ‘누가 체포 영장을 들이밀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임창욱 회장을 보호해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지시했다.”

2002년 2월24일 마침내 임창욱 회장은 이화여대 졸업식에 무사히 참석했고 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이재용 부부도 동석해 조카와 동생의 졸업식을 축하했다.

그러나 최씨와 임창욱 회장 사이의 친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 3월 인천지검 수사팀이 전격 교체되자 임창욱 회장은 자수를 한다. 그리고 2004년 1월, 검찰은 임 회장 수사를 종결했다. 더 이상 겁날 게 없어지자 임창욱 회장이 최승갑 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 임 회장이 나를 피했다. 그리고 전화번호가 바뀌어 있더라.” 최씨는 쓸쓸히 말했다.

임창욱 회장의 연락 창구인 대상그룹 측은 최승갑씨의 이런 경험담에 대해 “녹취록이나 영수증 같은 증거가 있다면 그걸 공개하고 말해야 한다. 이미 비자금 사건은 재판이 끝나 종결된 사안이다. 재벌 회장 가운데 1년7개월씩이나 실형을 산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만약 회장님께 허물이 있었다면 그 죄값은 다 치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뇌물죄 공소시효는 5년이다. 내년 3월이 지나면 과거 임창욱 회장이 벌였던 로비 행각은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최승갑씨의 주장에 따르면 임창욱 회장은 자신 사건 수사가 종결되면 최씨에게 UTC벤처라는 자회사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최씨는 임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창욱 회장은 아마도 2004년 1월 수사가 종결된 고마움을 표현할 상대는 최승갑씨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통해 보건대, 일개 브로커가 할 수 없는 일을 삼성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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