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욱 대상그룹 회장(가운데)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003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특정 검사에 대한 로비가 사건 처리 결과까지 바꿨다.”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씨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1월12일 삼성에게 뇌물을 받은 검사들로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등 3인의 실명을 공개했다.

12일 사제단의 발표와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종합하면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5년 전 불거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비자금 부실 수사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인천지검의 봐주기 수사를 잡아내 검찰이 망신을 샀다. 그 사건의 주역이 바로 이종백 당시 인천지검장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임창욱 비자금 사건 때 삼성의 로비로 검찰 수사가 왜곡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영원히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봐주기 수사의 배후가 5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임창욱 사건은 2002년 대상그룹의 한 내부고발자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대상그룹의 위장 계열사인 인천 소재 폐기물업체 ‘삼지산업’을 통해 임창욱 회장이 비자금 72억여 원을 조성했다는 내용이었다. 제보를 받은 당시 인천지검 송해은 2차장검사는 의욕을 가지고 수사했다. 수사 기록을 보면 임창욱 회장이 자동차 안에서 실무 임원으로부터 비자금 통장을 직접 건네 받는 장면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송해은 검사는 임창욱 회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11월부터 검찰 수사를 피해 잠적해버린 임창욱 회장은 갖가지 로비를 벌이며 불을 끄려 했다. 구명 로비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하기도 했다(딸린 기사 참조). 그러나 송해은 검사팀에게 이런 식의 로비가 통하지 않았다. 2003년 봄까지 임 회장은 서울 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가슴을 졸였다. 이때 임창욱 회장을 구원해준 쪽이 바로 삼성이었다.

임창욱 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사돈지간이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가 임창욱 회장의 장녀 세령씨의 남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시사IN〉 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삼성그룹 ○○○가 직접 나에게 대상그룹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이후 2003년 초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스위트룸에서 임창욱·박현주 부부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임 회장에게 ‘다른 곳에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호텔 안에 있어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위)은 인천지검장 시절 임창욱 회장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용철 법무팀장은 이때 대상그룹 비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이 손을 쓴 사람은 이종백 검사였다고 털어놓았다. 이종백 검사는 2003년 3월 검찰 정기인사 때 인천지검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임창욱 회장의 뒤를 쫓던 ‘송해은 팀’은 전면 교체된다. 웬일인지 담당 검사가 바뀌자마자 임창욱 회장은 2003년 4월 순순히 검찰에 자수한다. 새 수사팀은 임 회장을 구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1월 인천지검은 임창욱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리고 수사를 종료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분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하는 당시 상황은 이랬다. “삼성은 ‘떡값’ 검사마다 담당자가 따로 있다. 이종백 검사의 경우는 제일모직 제진훈 사장이 맡았다. 이종백 지검장은 임창욱 회장이 구속되지 않도록 부하 검사들을 직접 설득하는가 하면 수사 상황을 밤마다 제진훈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재용 전무가 장인 문제 챙기라고 지시"

현재 국가청렴위 위원장으로 있는 이종백 전 인천지검장은 자신이 삼성과 결탁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11월12일 보도자료를 내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같이 근무하거나 만나본 사실이 없고, 통화한 사실조차 없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은 동향 선배로 알고 지내지만 삼성 로비를 받거나 부정한 청탁을 받은 일이 전혀 없다.” 국가청렴위는 〈시사IN〉이 제기한 이종백 위원장의 인천지검장 시절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11월23일 "위원장이 일주일 째 유럽 출장중이라 보도자료 이상의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한편 제일모직 제진훈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종백 검사의 장인이 진주고등학교 선배라서 오래전에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이후로는 너무 바빠서 본 적조차 없다”라고 로비를 부인했다.

임창욱 회장에게 인천지검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린 직후 이종백 지검장은 2004년 1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옮겼다. ‘영전’이라고 불릴 만한 인사였다. 이종백 검사 후임 인천지검장은 전 법무부 검찰국장 홍석조 검사였다. 홍석조 지검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이다. 홍석조 검찰국장과 이종백 지검장이 서로 자리를 바꾼 것이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 덕분에 임창욱 회장은 그토록 두려워했던 감옥 생활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창욱 회장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검찰이 파묻은 사건을 법원이 도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2005년 1월 서울고법 형사2부는 비자금 사건 관련 대상그룹 임원들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판시했다. “임 회장과 피고인들이 위장 계열사인 폐기물 처리업체를 통해 대상 자금을 빼돌리기로 공모한 뒤, 1998년 11월~1999년 7월 사이 모두 72억2000만원을 빼돌려 임 회장의 개인 계좌에 숨긴 사실이 인정된다.”
검찰이 기소도 하지 않은 임 회장의 범죄사실을 법원이 들춰낸 것이다. 이때부터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임창욱 회장 사건을 재조사라하라고 요구했고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2005년 4월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이 사건 재수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다음 달 인천지검은 원점에서 재수사하기로 결정한다.

2003년과는 달리 2005년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임창욱 회장은 결국 회사 자금 219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6년 4월 서울 고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임 회장은 1년 7개월을 복역하다 2007년 2월 사면으로 풀려났다.

우여곡절 끝에 임창욱 회장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정작 부실 수사에 책임이 있는 검찰은 아무런 조처를 받지 않았다. 여론은 임창욱 회장의 재조사와 함께 검찰의 부실 수사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대검 감찰부는 일주일 정도 내부 조사를 한 끝에 2005년 7월26일 “수사팀이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 때문에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근거 자료가 없다”라고 발표했다. ‘봐주기 수사’를 봐주기 한 셈이다. 당시 대검 감찰부는 이종백 전 인천지검장을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이종백 지검장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에 이어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06년 2월 천정배 법무부 장관 은 대상그룹 부실 수사와 관련해 그를 부산고검장으로 내보내 잠시 낙마하는 듯했으나, 천 장관이 물러나자마자 2006년 9월 서울고검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올해 8월부터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 검찰은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수사 대상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성, 삼성 비자금 조성 및 불법 로비의혹 등이다. 임창욱 비자금 사건 부실 수사는 검찰의 치욕으로 꼽힐 만한 대표적인 불명예 사건이다. 지금이라도 당시 인천지검 수사 라인을 재조사하면 김용철 변호사와 이종백 지검장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시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주진우,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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