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사이에 국민들 수준이 ‘퇴보’한 걸까. 지난 2004년 8월 참여정부는 공무원노조 설립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공무원노조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향상됐고, OECD 등 국제기구에서 공무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하고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기본권의 제약은 물론이고 아예 존립 자체를 뿌리 뽑을 태세다. 가능한 수단은 다 동원하려는 듯, 간부 징계, 사무실 회수, 단체협약 해지, 조합비 원천징수 제한, 민중의례 금지, 정부 정책 반대 금지, 상급단체 가입 금지, 설립신고 반려 등 셀 수 없이 많은 강공책을 쏟아내고 있다.

발단은 지난 9월22일 탄생한 통합공무원노조(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의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민주노총 가입이었다. 부결을 예상했던 정부는 약 70%의 높은 지지율로 통과되자 적이 당황한 듯 보인다. 곧바로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정치투쟁 노선을 유지해온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엄중 대처하겠다”라고 선포했다.

정부의 강경대응을 주도하는 두 주역인 임태희 노동부 장관(왼쪽)과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
한국노총은 되고 민주노총은 안된다?

이 대목에서 노동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과연 한국노총에 가입했어도 정부의 반응이 저러했겠느냐”라는 것이다. 쌍용자동차·비정규직법·최저임금 등 각종 노동 현안에서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해왔던 민주노총이다. 마침 최근 정부는 이런 ‘눈엣가시’ 같은 민주노총을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를 무기로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일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소식을 속보처럼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합원이 무려 11만명에 달하는 거대 공무원 노조가 느닷없이 민주노총 품에 안긴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다른 누구도 아닌 공무원이 민주노총을 살리겠다고 나선 꼴이니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정부 측도 적극 근거를 제시한다. 핵심은 “정치세력화 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민주노총에 정치적 중립성을 전제로 하는 공무원노조의 가입은 부적절하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정책연대를 통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 행보’에 대해선 전혀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같은 공무원 노조 조직인 한국노총 산하 한국공무원노조와 체신노조도 상급단체 가입 문제와 관련해 전혀 문제제기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민주노총과 통합공무원노조가 공무원들의 ‘무한한’ 정치활동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구체적 시기에 특정 선거 지지운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안에 따라 판단하면 될 일이다. 전교조도 같은 경우지만 지금까지 실정법을 위반한 적은 없다”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만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곳이 없다”라는 목소리도 높다. 통합공무원노조 이상원 대변인은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OECD 국가 가운데 공무원과 노조의 정치활동을 무조건 불허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라고 비판한다.

민중의례와 국민의례가 상극인가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 절정은 지난 10월23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민중의례 금지’ 조치였다. 행안부 측은 “공무원이 주먹을 쥔 채 민중가요를 부르고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행위는 헌법의 기본질서를 훼손하고 공무원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다”라며 관련자를 엄중 조치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나 통합공무원노조 측은 “노조의 활동에 개입·간섭하는 부당노동행위이자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법행위다”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나아가 민중의례의 ‘역사’를 살피면 정부가 시계를 30여년 전으로 돌리려 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의 말마따나 “민중의례에서 애국가 대신 합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노래다. 민주열사에 대해 묵념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다. 왜 이걸 문제 삼는가. 왜 이걸 ‘애국’(국민의례)의 맞은편에, 반대가치로 설정하는가”라는 것이다.

정부의 공무원노조 탄압은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보복’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 9월22일 열린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축하 기자회견.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의 이번 ‘강공 드라이브’는 그 비일관성과 불법·탈법성, 권위주의 시대적 발상 때문에 결국 여론만 나빠져 오히려 정부가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미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자유선진당 쪽에서까지 문제제기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상급단체 가입과 정부 정책 반대 금지 등은 국민기본권·자주적 단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24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사회동향연구소가 국민 1,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공무원노조가 정부 정책에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 ‘정당하다’(44.9%)라고 보는 시각이 ‘부적절하다’(40.2%)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정부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기섭 노동부 대변인은 10월26일 정례브리핑에서 공무원노조 관리를 행안부로 옮기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노사관계의 당사자인 행안부가 노조를 관리하게 되면 심판이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공무원노조의 소관 부처가 애초 행정자치부에서 노동부로 바뀐 이유 자체가 다름 아닌 ‘노사관계의 공정성’ 때문이었다.

통합공무원노조 측은 정부의 공격 강도에 비해 비교적 차분하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11월7~8일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와 12월 공식 출범식에 조합원들의 힘을 모으는 한편, 법적 대응과 국제노동기구 제소 등을 통한 여론전도 병행하고 있다. 현 국면은 ‘강경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정부의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때문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수법 또한 과거 정부가 숱하게 써먹던 것 그대로다. ‘파업 유도’ 사건, 이젠 좀 사라져야 할 용어가 아닐까?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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