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한국 말과 글이 서툰 이주노동자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위는 신문을 읽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2005년 10월 입국해서 연수생으로 일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 L씨는 이듬해 5월 평소 외국인들을 막 대하던 반장에게 철근 뭉치로 머리를 맞았다. 안전모를 쓰고 있어서 치명적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순간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아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의 통증이 심해져 현장 사무실에 이것을 알렸고, 이튿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심각했다. 각막혼탁 및 기타 질환으로 시력 회복이 불가능하고 결국 실명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원인이 외부 충격과는 전혀 무관하며 어렸을 적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주노동자 L씨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건강한 젊은 사람이 철근 뭉치로 머리를 맞은 뒤 이런 사태가 생겼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체는 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위험한 현장 작업을 하는 게 무리라고 판단해 L씨의 고용 해지를 신청했다. 직장에서 해고된 L씨는 더욱 힘든 나날을 보냈다.  처음 우리 센터에서는 반장의 폭력으로 인해 L씨의 시력에 문제가 생겼으므로 폭행 사건으로 고발을 준비했다. 그러나 특별한 외상도 없고, 시력 문제도 폭행이 직접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오지 않는 한 손을 써볼 방법이 많지 않았다.  직장을 잃은 환자 신세인 L씨가 비싼 수임료를 내고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최근까지 치료와 보상을 위해 노력해오던 L씨는 결국 포기했다. 더 이상 눈이 나빠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L씨가 베트남에서 출국할 때 보증금 400만원을 맡겨둔 베트남 연수 관리업체는 그가 불법 체류를 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L씨는 국제변호사를 선임해서라도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구제받고 싶어하지만,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민·형사 사건 착수금만 300만~500만원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 처지에서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그들은 막대한 수임료 부담 때문에 주로 무료 법률상담소를 찾기 마련이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변호사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법을 모르거나 수임료가 없는 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변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변호사 수임료가 극단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민·형사 사건의 경우 착수금으로만 300만원 내지 500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비싼 수임료는 곧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미국 변호사의 1인당 연간소득은 1인당 GDP 대비 3.7배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22.3배(2003년 통계청 자료)나 된다.

이주노동자가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호사가 늘어나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인당 변호사 수가 최저이다. 인구 100만명당 변호사 수는 미국의 50분의 1이고, 영국·프랑스·독일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2006년에 민사소송에서 ‘나 홀로 소송’의 비율이 96%나 됐고, 형사피고인 중에서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비율은 41%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서는 로스쿨 정원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 로스쿨 제도에 어떤 민감한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주노동자처럼 약자 처지에서는 더욱 많은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