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도 적잖이 놀란 것 같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조선·중앙일보의 비판이 이를 방증한다. 김제동의 KBS 〈스타골든벨〉 하차는 보수 진영에 약이 아니라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하나. 인지도·호감도·영향력 면에서 김제동은 ‘좌우’ 상관없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김제동이라는 인물을 보며 ‘정치’를 연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서울시청 앞에서 노제 사회를 보고, 이런저런 사회적 발언을 해오긴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김제동을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방송인으로 기억한다. KBS 일부 간부의 ‘정치적 판단’은 존중해줄 필요가 있지만, 그들은 대중의 정서를 읽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조선·중앙의 KBS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 진영은 대중의 정서에 더 민감한 법이다.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웬만한 연예인과 정치인을 능가한다. 무엇보다 그는 영향력 면에서 다른 누구보다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손석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수년째 1위를 고수한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는 경쟁력 1위 언론인이다.

한나라당 의원마저 비판한 ‘손석희 교체’

이런 두 사람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병순 KBS 사장과 엄기영 MBC 사장은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이유가 뭘까.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상투적이다. 김제동과 손석희를 적으로 돌리는 건 MB 정부에게도 득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권력에 대한 언론의 자발적 충성으로 보는 게 타당한 듯하다. 이병순 사장은 오는 11월 임기가 끝난다. 연임을 노리는 이 사장 처지에서는 사활을 걸어야 한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로부터 압박을 받는 엄기영 사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라이트 성격이 짙은 방문진의 시선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MBC 보수화’라는 카드를 어떤 식으로든 관철해야 한다. 김제동과 손석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가 아닐까.

이들의 선택, 성공할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에 대한 호감도와 영향력 면에서 이병순·엄기영 사장보다 김제동·손석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차라리 뉴스의 보수화나 시사 프로그램 연성화 쪽에만 집중했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은 시청률 잘 나오는 연예 프로그램 진행자를 ‘정치적인’ 이유로 끌어내렸고, 인지도와 영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언론인을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엄기영·이병순 사장(왼쪽부터)의 손석희·김제동 교체는 그들에게 부메랑이 될 확률이 높다.

사실 김제동·손석희 교체 논란은 한국 보수 진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잣대다. 우석훈씨가 지적한 것처럼 과거 유신 정권은 대중문화인들을 탄압했지만 그 이유라도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는 고사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와 달리 권력이 아닌 언론 스스로에 의해 ‘칼질’이 이뤄지는 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웃음에는 좌우가 없는데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좌우를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의 비판은 한국 보수가 아직은 희망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조선·중앙이 지지하지 않는 김제동 교체, 한나라당 일부 의원마저 비판한 손석희 교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렵다. 이병순·엄기영 사장의 이번 결정은 자충수이고, 결국 부메랑이 될 확률이 높다. ‘김제동·손석희 대 이병순·엄기영’의 최종 승자는 결국 김제동과 손석희가 될 것이다.

기자명 민임동기 (〈PD저널〉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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