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는 ㄷ중학교 박 아무개양(16)은 “공부 잘하고 잘사는 아이만 챙기는 선생님에게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질문을 해도 꼭 그런 친구에게만 해요.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전해라’ 같은 말도 가끔 하고요. 우리 엄마는 한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는데….”
 
학업중단율은 전문계고에서 높게 나타나며, 자퇴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청소년들. 월 80여만원을 받고 요양치료사로 일하는 황 아무개씨(47)는 “전문계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두 달 동안 학교 급식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알고 보니 급식비를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부주의로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던 것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눈물을 훔치며 전하기도 했다.

학업중단율은 전문계고에서 높게 나타나며, 자퇴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청소년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과정’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자퇴에 별 문제의식이 없는 학교와 교사도 적지 않은 듯하다. 2008년 ㅅ공고를 자퇴한 뒤 올해 서울 은평구의 한 전문계고에 재입학한 박 아무개양(18)은 1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자퇴할 때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어요. 가출해서 학교에 안 나가고 있었는데 집에까지 찾아오고, 심지어 쉼터(청소년 보호기관)에도 연락을 해 저를 설득하려고 했거든요. 결국 자퇴를 하긴 했지만     
 
그런 선생님 처음 봤어요. 애정이 느껴졌죠. 하지만 지금 학교는 아니에요. 애들이 그만두든 말든 거의 신경을 안 써요. 가출한 지 한 3주가 된 애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설득은커녕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자퇴서 쓰라고 하더라니까요.”

 
경기도의 한 전문계고를 자퇴한 김 아무개군(18)도 “자퇴가 너무 쉬웠다”라고 말한다. “워낙 평판이 안 좋은 학교여서인지 애들이 입학하자마자 자퇴를 많이 해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자퇴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이지 전혀 말리지를 않아요.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별 소리를 안 하고요. 조금이라도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애들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는 학교죠.”

물론 교사들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이성주 서울공고 교사(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는 “가난한 아이일수록 더욱 집중해서 돌봐야 하지만 한 반에 30여 명이나 되는 현실에서 일일이 챙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계 쪽은 성적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가 많이 오다보니 면학 분위기 조성이 한결 힘들다”라며 자퇴를 막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휴학 제도의 활성화’를 제안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학교나 교사가 자퇴를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학교마저 손을 놓으면 아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 복지기관이나 상담소 같은 곳이 있지만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고 이용률도 낮은 것으로 안다. 학교에 다시 복귀하기 쉽고 어려울 때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도록 학교라는 ‘최후의 보루’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질병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고 있는데,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휴학 제도 같은 것을 활성화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

학교를 그만둔 아이는 거의가 홀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업 중단 청소년의 70%가량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이라는 신분과 아르바이트라는 노동 형태의 특성상 여건이 좋을 리가 없다. 한 교육단체의 조사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한 아이의 38.5%가 임금?노동시간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학교가 ‘버린’ 아이들의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세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냉혹한 생존의 세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한 뒤 지금은 부천의 한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박 아무개씨(24)는 “예전에 아는 사람들이 놀고 있으면 ‘그 나이 먹어서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심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력서를 쓸 때 설명할 게 없는 내 자신이 당황스럽다. 학력·자격증·경력란에 쓸 내용이 하나도 없고 더는 이력서를 쓰고 싶지도 않다”라고 토로한다.

“아버지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망하면서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 후 패밀리 레스토랑, 사무실 경리, 마트 계산원, 백화점 판매직원, 노래방 도우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한번은 친구 부모님 소개로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정규직 채용 제의를 받았는데 학력이 걸려서 무산된 적도 있었어요.”

이런 현실이 빤히 보이는데도, 국가 또는 학교가 학생들의 ‘자퇴 러시’를 현재처럼 나 몰라라 방치하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서두에서 인용한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눈길을 끄는 조사 결과가 또 하나 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도 일반 학생 못지않게 자신의 진로나 미래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꿈조차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라며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여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교사에서 ‘스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그마한 몸짓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앞서 자퇴를 했다가 복학한 박 아무개양에게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는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 학교라는 공간의 친숙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특히 자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던 한 선생님에 대해선 매우 각별한 인상이 남아 있는 듯했다. 가정 형편도 어렵고, 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아이들에게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 큰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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