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에 눈뜬 뒤 밥상에 절하다
  • 노영민 (부산사직고 교사)
  • 호수 107
  • 승인 2009.09.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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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체험, 끊고 살아보기 3탄-식당 밥
‘독자 체험, 끊고 살아보기’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인공인 노영민씨의 목소리는 밝았다. 이 글을 응모할 때만 해도 두 명이던 도시락 도반(道伴)이 한 달여 지난 지금은 네댓 명으로 늘었단다. 덕분에 요즘은 ‘시린 등 보이며’ 혼자 도시락 먹을 일도 없어졌다. 식당 밥 끊기 반년 만에 거둔 수확이다. 저녁이나 주말 외식도 그전보다 더 자제하게 됐다. 현미밥을 먹어 버릇하니 위가 줄면서 식탐도 사라졌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하게 됐나 싶다’는 노씨의 체험담을 들어보았다.

2009년 3월 개학 무렵부터 식당 밥을 끊었다. 대신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다. 약 6개월, 방학을 빼면 실제 5개월 정도다. 식당 밥이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 학교 식당 밥은 값싸고 맛있다. 영양사가 칼로리 조절을 하고 특식과 후식도 다양하게 나온다. 이 학교로 전근 온 뒤 나는 대체로 만족했다. 그런데 왜 식당 밥을 끊고 도시락을 택하기로 했는가.

   
ⓒ노영민 제공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다보니 밥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곤란을 겪는다는 노영민씨(맨 왼쪽). 그래도 요즘은 동료들이 함께해 든든하다.
무엇보다 현미밥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올해 초부터 백미에 현미와 잡곡을 조금 섞어 혼식하던 것을 완전 현미로 바꾸었다. 현미 80에 현미찹쌀 20, 그리고 검은콩 조금. 아내의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내가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현미밥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다. 입이 까끌까끌하다, 씹기 귀찮다, 밥하기가 쉽지 않다 등. 그러나 아니다. 나는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현미밥 예찬론자가 되었다.

먼저 현미밥은 씹을수록 고소하다. 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다. 더 오래 씹고 싶다. 반찬도 많이 필요 없다. 현미밥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반찬을 되도록 적게 먹어야 한다. 우리가 백미밥을 먹을 때 반찬을 많이 먹는 것은 밥의 고소함이 현미밥에 비해 덜하고 또 열심히 꼭꼭 씹지 않으니까 밥맛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극적인 반찬으로 밥의 모자라는 맛을 보충하는 것이다.

‘반찬 맛’ 아닌 ‘밥맛’으로 밥을 먹다

밥을 먹고 난 뒤 ‘어 밥맛 좋다, 잘 먹었다’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밥맛으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반찬 맛으로 밥을 먹는지도 모른다. 밥맛이 아닌 반찬 맛에 감탄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현미밥이 워낙 맛있어서 밥을 먹을 때 밥알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먹고 싶을 정도다. 이러니 아침과 저녁뿐 아니라 점심도 현미밥으로 먹고 싶어졌고, 그래서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있음에도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학교 식당 밥을 끊고 현미밥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다. 현미밥은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 밥을 적게 먹고 반찬을 덜 먹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을 통해 체중조절에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적게 먹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영양이 부족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미밥의 영양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나는 그간 4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위장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나는 만성적으로 트림이 심하고 속이 더부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증상이 거의 없다. 꼭꼭 씹어 먹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 듯하다. 현미밥 맛을 알고 나면 현미밥은 자연히 꼭꼭 씹어 먹게 된다. 나는 현미밥을 먹기 전에는 밥맛을 거의 몰랐고 밥의 귀중함에 대해서도 머리로만 알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밥맛보다는 반찬 맛에 의존해 밥맛을 평가해왔고, 농부의 땀 운운하며 쌀과 밥의 소중함을 논했던 것도 관념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밥이 이토록 맛있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밥을 먹을 때마다 자연히 고개가 숙여지고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현미밥을 좋아하는 것하고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식당 밥을 끊는 것하고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렇다. 먼저 다니던 학교에는 김치를 비롯한 반찬 냄새를 풍기며 밥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무리 서로 잘 아는 곳이라지만 영업하는 학교 식당에서 도시락을 내놓고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다 나이 50이 넘어 시린 등을 보이며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자주 있다. 밥상 공동체라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큰데,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게 되면 이런 게 불가능해진다. 자동차로 이동하지 않는 나로서는 도시락 들고 다니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개중에는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아내의 수고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한겨울 식은 밥은 또 어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귀찮음과 우려에도 나는 식당 밥을 끊고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일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도시락은 내가 싼다. 아내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는다. 김치와 멸치볶음 반찬을 가져다 학교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며칠은 밥만 들고 오면 된다. 반찬 만드는 일은 아내가 주로 하지만 반찬을 그릇에 담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한다. 홀로 밥을 먹을 때의 외로움은? 밥 먹으면서 책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문 칼럼과 인터넷 언론의 기획기사 출력물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영혼은 따사롭다. 거기다 요즈음은 도시락 도반도 둘 생겼다.

가방에 책만 들고 다니라는 법이 있는가. 도시락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과 귀찮음은 내 먹을 것을 내가 들고 다닌다는 자부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겨울 식은 밥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현미밥은 식은 밥이 더 맛이 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보온도시락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도시락 싸갖고 다니기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학교 밥값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도시락이 안기는 절약의 기쁨은 의외로 크다. 나는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지 말고 돈을 규모 있게 잘 쓰는 것을 자랑하라’는 어머니 말씀을 경제에 관한 가장 귀한 가르침으로 가슴에 새겨왔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진짜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그만큼 허리를 많이 굽히고 삶의 가치 있는 원칙을 많이 포기하고 어긴다는 말은 아닐까. 삶의 여유와 향기 대신에 부지런함으로 포장된 번잡함과 굴종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닐까.

도시락을 갖고 다님으로써 시작된 작은 절약은 내 삶의 곳곳에 영향을 준다. 7년 전 자가용 출퇴근을 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식당밥을 끊고 도시락을 갖고 다니는 일은, 물질의 소유보다 삶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 더 가치 있고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내 삶의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의 양대 축이다. 밥 한 톨에 깃든 온 우주의 기운을 식은 밥 한 톨에서 매일매일 느끼고 감사할 수 있다니.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나는 오늘 점심도 밥에 절하면서 천천히 매매(‘공들여’라는 뜻의 우리말) 씹어 먹었다. 전에 보름 동안 뙤약볕 아래를 걷고 나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천천히 걷는 자, 깊고 멀리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이렇게 고쳐 적어본다. “밥을 천천히 매매 씹어 먹는 자, 깊고 멀리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 <시사IN> 연중기획 ‘끊고 살아보기’를 이번 주로 끝마칩니다. 그동안 관심 가져주고 참여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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