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4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시작된 국면 전환 움직임이 차츰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의 상황 악화 조처가 중단됐다. 비록 임진강 무단 방류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는 불행한 사태가 있었지만 남북관계에서도 변화가 모색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한 달 뒤인 9월4일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은 대화에도 제재에도 다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북한의 자주권과 평화적 발전권을 유린하는 데 이용된 6자회담 구도를 반대한 것이지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세계의 비핵화 그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계’와 이를 위한 당면 과제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6자회담에는 결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방침에서 한 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미 대화, 10월 초에 시작될 수도

미국은 9월 초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한·중·일 순방을 통해 관련국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9월11일 국무성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양자회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대화 방법과 시간·장소는 앞으로 2주 안에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6자회담 복귀 후 양자대화’에서 ‘6자회담 촉진을 위한 양자대화’로 전환한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태도를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은 그동안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공식화해왔다. 제재를 해왔으니 이제는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북한 핵문제 협상을 마냥 뒤로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재를 앞세워 계속 시간을 보낼 경우 북한의 핵능력은 증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2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질타했던 민주당의 논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동시에 미국은 내년 5월에 열리는 핵확산 금지조약(NPT) 검토회의와 3월의 핵 보유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그 이전에 북한 핵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루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지금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그때쯤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면 북·미 대화는 빠르면 10월 초에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양자대화에서 커트 캠벨 차관보가 밝힌 포괄적 접근법을 북한에 제시하리라 보인다. 포괄적 접근법은 2000년 10월에 합의한 북·미 공동커뮤니케와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선언을 기초로 북한의 비핵화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시키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즉 스마트 파워 외교를 적극 구사할 것이다.

이러한 협상 과정에 중국도 협력을 할 것이다. 지난 7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양국은 6자회담 개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에서의 평화·안정을 위해 협력할 것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이러한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해 3월 이후 남북관계와 관련해 그들이 일방적으로 취한 개성공단 통행제한 같은 일련의 강경 조처를 하나씩 원상회복시켰다. 그리고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일본 민주당 정부에 대해서도 대화의 손짓을 보낸다.

북한이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선언한 2012년은 한국·미국·중국·러시아의 정권교체 시기와 맞물려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한의 장래 그리고 이를 둘러싼 주변국의 협력과 견제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국면 전환을 촉진하리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통일기반 조성을 목표로 북한의 생존전략과 주변국의 한반도 정책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본 전략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우선해야 할 일은 남북 당국 간 대화의 재개이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은 한·미가 합의한 원칙이다. 미국이 대화에 나선다면 우리도 이제 새로운 남북관계의 질서 형성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의 병행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2년이라는 시한에 배수진을 치고 북한도 주변 4국도 암중모색을 계속할 것이다. 신중 모드는 현 상황에 적극 대처하는 상책이 될 수 없다. 진정성은 누구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키는 하이브리드(hybrid)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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