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독자들이 도전하는 ‘끊고 살아보기’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 소개할 도전기는 독자 공모 최우수상을 받은 ‘기고만장’님의 ‘온라인 서점, 끊고 살아보기’입니다. 평소 책을 아끼고 즐겨 사는 ‘독자’이자 ‘소비자’로서 책을 사는 행위를 되돌아보고 싶었다는 기고만장님은 최우수상 부상으로 〈시사IN〉 1년 정기구독권을 받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필자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 인적 사항은 밝히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약속인지도 모른다. 시장에서 가장 절대적인 선택의 기준은 가격. 어느 가게가 상품을 가장 싼값에 팔고 편리함과 신속함까지 갖추었다면, 더구나 그 상품이 어디에서 사든지 똑같은 상품이라면. 정답은 나왔다. 당연히 그 가게에서 구입하는 것이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 말대로라면 ‘온라인 서점 끊기’는 자청해서 바보가 되는 꼴이었다. 시쳇말로 ‘비합리적’ 소비자가 되는 일이라고나 할까(경제학 교과서대로 하자면 ‘비합리적 소비자’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겠다). 그럼에도 이 약속을 했던 건 무언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한 온라인 서점에 충성을 바치며 그 혜택을 누려왔다. 구매액에 따라 차등된 혜택을 받기 때문에 한 서점에서 구매를 지속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주어진 적립금과 쿠폰 덕에 내 책장에는 유독 책이 많았다. 그렇다고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한 것은 아니었다. 누리꾼 평가와 전문가 서평을 꼼꼼히 읽고 할인 혜택을 최대한 이용해 합리적으로 구매했다. 문제되는 건 없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는 주문한 책이 도착해서 책장에 꽂으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책장에 그 책과 똑같은, 표지와 부제만 다른 책이 꽂혀 있었다. 깜짝 놀라 돌아본 책장에는 읽고도 기억에 남지 않는 책, 읽다 말고 꽂아둔 책이 가득했다. 충격. 그동안 나는 어떤 착각 속에 빠졌던 걸까, 어떤 소비를 해왔던 걸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끊기 일주일째. 온라인 서점을 끊고 보니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일간지 주말 섹션이나 주간지가 있기는 하지만 몇몇 신간에 대한 요약 소개뿐이었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자연스레 온라인 서점 끊기가 아니라 책 끊기가 되어갔다.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얼마 전 생긴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동네 서점을 찾은 독자 ‘기고만장’씨. 동네 서점 책장에는 거의 문제집과 소설책만 꽂혀 있다.

전문 서점의 단점은 정가 판매?

평일인데도 도서관은 북적댔다. 그러나 정작 자료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근 관심을 둔 분야의 책 6권을 찾았다. 그중 어떤 책은 구미가 당기지만 찾던 내용이 아니었고, 어떤 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랐는데 괜찮았다. 두 권을 빌려 도서관을 나왔다. 두 권 중 하나는 온라인 검색에서는 보지 못했던 책이었다. 첫 도전치고는 괜찮은 수확이었다.

잘 고른 책은 읽히기도 잘 읽혔다. 꽤 두꺼운 책 두 권을 일주일 만에 읽었다. 한 번 읽고 말기에는 아까운 책들이었다. 그래. 끊기 2주째. 이제는 책을 직접 사보기로 했다. 내가 알기로 책을 소장하고 곁에 두며 여러 번 읽는 것만큼 좋은 독서 방법은 결코 없다. 학생 때 자주 들르던 동네 서점을 오랜만에 가보면 되겠다.

다음 날 찾은 서점 자리에는 부동산 중개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분이나 떨어진 옆 동네 서점에 갔지만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거의 문제집하고 소설이죠. 소설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말고는 안 들여놔요.” 주문해 볼 수는 있지만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아예 못 구할 수도 있다 한다. 익히 알려진 저자 K의, 전문서도 아닌 교양서를 찾는 내 불찰이려니 했다. 예상은 한 터라 억울한 건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 햇살은 정말 뜨거웠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도 하나 남았다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찾았다(대형 서점은 온라인 서점은 아니지만 일단 최후의 수단으로 보류하기로 했다). 넓지는 않았지만 전문 분야에 대해 제대로 구색을 갖춘 것은 물론 저자 특강을 알리는 안내문 등 다양한 정보도 눈에 띄었다. 동네 서점에 그렇게도 많던 문제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 아저씨는 단번에 책을 찾아주시고는 책에 대한 질문에도 자세히 답해주셨다. 마음에 쏙 들었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은 가격이었다. 전문 서점에서는 책을 정가에 판매했다. 정가 도서를 사는 것은 큰 부담이다. 아니 부담이라기보다는 솔직히 아까웠다. ‘온라인에서 사면 더 싼 것을 정가에 사는 건 바보 아닌가.’ 주인 아저씨께는 죄송하지만 계산하면서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온라인 서점과의 가격 차는 상당했다. 온라인에서 신간 도서의 기본 할인율은 10% 정도이며 구간(舊刊)은 15% 정도이다. 적립금과 쿠폰까지 포함하면 할인 폭은 그보다 더 늘어난다. 게다가 난 골드 회원이었으니 적어도 5% 추가 할인이다. 고민 끝에 나는 그나마 싼 책 한 권을 사서 가게를 나왔다.

어느 하나 완벽히 온라인 서점을 대신할 수 없었다. 도서관은 책을 고르기에는 좋지만 서점 구실을 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컴퓨터와 DVD가 주였지 책은 많지 않았고, 독서나 토론보다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 할 만했다. 또 동네 서점은 더 이상 ‘동네’ 서점이 아니었다. 이제는 많이 사라져버렸고 무엇보다도 구경할 책 자체가 없었다. 제대로 된 책 구경을 하려면 서울까지 가든지 아니면 우리 지역에도 ‘OO문고’가 들어오기를 무작정 기다릴밖에. 그렇다고 전문 서점이 생기는 건 한 몇 억원 정도 떼이고도 좋은 데 썼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씨 좋은 부자가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고민을 계속했지만 뚜렷한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해를 감수해가며 바보 같은 소비를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온라인 서점은 쉽게 포기하기 힘들 정도의 메리트를 가지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 신속하고 편리한 배송, 방대한 검색 서비스와 독자 서평, 최근에는 커뮤니티 기능까지 활성화하면서 온라인 서점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더 나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온라인 서점에 의존하는 나의 소비방식에는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온라인 서점의 ‘합리성’ 뒤에 숨은 문제

그렇다면 생각을 완전히 바꿔보는 건 어떨까. 가격이나 서비스가 아닌 소비의 기준은 없을까? 온라인 서점의 문제점은 정말 없을까?

온라인 서점은 그 특성상 책을 공평하게 노출하기 어렵다. 몇몇 책에 대한 집중 홍보는 유리하지만 메인 페이지나 순위에 들지 못한 책은 검색을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평평한 책장과는 다른 점이다. 결국 잘 팔리는 책 중심으로 노출이 되어 비주류 책은 좋은 책일지라도 주목되기 어렵다. 신인 작가들의 진출이 어려움은 물론이다.

문제는 할인제도에도 있었다. 온라인 서점은 대량 구매를 통해 출판사에 공급가 인하를 압박해 할인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출판사는 손해를 볼 만한 책을 출판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할인으로 가격이 낮아질 것을 출판사가 미리 반영하는 바람에 거꾸로 도서 정가가 올라가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서점 때문에 중소 규모의 순수 종합 서점이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문화공간으로서 구실할 수 있는 소형 서점의 폐업은 지역 사회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 나는 온라인 서점의 ‘합리성’ 뒤에 가려진 또 다른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가치의 문제였다.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며 책 소비자는 소비자라기보다 독자이다. 책의 이런 특수한 가치는 시장원리와 동시에 문화적 시각에서 서점을 사고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지역 공동체 사회에서 작은 가게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이 각자 영역에서 함께 존재해야 하는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약속이었다. 시장이 정한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과감히 버리고 그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한 개인으로서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게 강요되던 것의 정체와 그 뒤에 숨겨지고 지켜야 할 가치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문제는 너무나 명확히 드러났다.
 
우리에게는 무작정 더 싼 가격의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도서 시장과 성숙한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은 물론 우리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가치 있게 책을 소비하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즐거움은 단순히 할인된 가격에 책을 사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 온라인 서점 끊기는 비합리적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책 읽기의 즐거움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되는 일이었다.

기자명 기고만장 (독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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